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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해혼(解婚)과 혼자 사는 연습

  • 이주향│수원대 인문대 교수·철학

해혼(解婚)과 혼자 사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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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기보다 함께 살기 좋은 사람들이 결혼합니다. 그러면 함께 살기보다 홀로 살기 좋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겠지요? 물론 많은 이에게 이혼은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혼을 선택하는 건 그것이 함께 사는 일보다 낫기 때문일 겁니다.

최근 황혼이혼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20년 이상 부부로 살아온 사람들이 따로 살기로 결정하고 법적인 조치까지 취했을 때는 왈가왈부할 일이 아닐 겁니다.

마음이 맞지 않기 때문이든, 경제 상황 때문이든,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든, 자유를 주기 위함이든 제3자가 판관이 될 일은 아닙니다. 제3자는 그저 그들의 결정을 단지 존중해주면 될 일이지요.

‘이혼’이란 말 대신에 ‘해혼(解婚)’이란 말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이혼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지만, 결혼관계를 풀어준다는 뜻의 해혼은 ‘졸업’이란 말처럼 하나의 경험을 마무리한 후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있지 않나요?

해혼이란 말을 들은 것은 인도에서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 타지마할을 아시지요?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22년간 지었다는 그 묘지는 묘지가 아니라 대리석으로 빛나는 천상의 궁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샤자한과 그의 아내 뭄타즈의 이야기가 살고 있는 거기서는 이생과 내세가 둘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인연이기에 죽은 아내를 떠나보내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요. 아내와 함께 묻힐 묘지를 짓는 데 평생을 바치는 남자에 대한 상상으로, 마치 내가 전생의 뭄타즈였던 것처럼 사랑의 환상에 들떠 걸어 나오다가 그 앞에 있는 간디 아슈람에 들렀습니다. 거기서 간디의 해혼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간디는 해혼식까지 했습니다.

인도에서 해혼은 그리 낯선 문화가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결혼의 굴레를 풀어주고 자유인이 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겁니다. 샤자한과 뭄타즈처럼 영원한 사랑의 원형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해혼식을 하고 자유인으로 사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양이 아니라 내용이니까요.

인도는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힌두의 땅이고, 브라만의 땅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의미겠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인도 문화의 정수인 명상수행이 삶이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계층이기도 합니다.

브라만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는 충분히 배우고, 청년이 되면 좋은 가문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부모가 그랬고, 조부모가 그랬듯이 그들은 가정을 충실히 꾸립니다. 돈을 벌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브라만 계급에 맞게 잘 교육해 결혼까지 시키지요. 자식이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평생 동반자로 살아온 배우자와 해혼을 해도 되는 겁니다.

간디의 해혼식은 머리 좋은 사람의 기발한 착상이 아니라 인도 문화가 용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해혼식’이라는 형식이 필요했던 것은 그것이 결혼식만큼이나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겠습니다. 이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의무를 끝내고 자유인으로 돌아가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다는 의지를 낸 사람의 삶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니까요.

브라만의 남자들은 해혼 후 대부분 숲으로 들어가 수행을 합니다. 죽음이 멀지 않은 나이 든 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마주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반추하는 것입니다. 왜 인도가 매혹적인 곳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혼을 하지 않았어도, 해혼을 하지 않았어도 나이 들수록 필요한 것이 혼자 사는 연습입니다. 혼자 사는 연습이 되어 있어야 혼자 살지 않더라도 쓸데없는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고, 삶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연애할 때 우리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을 하지요? 그런데 진짜 당신 없이 못 사는 사람과는 결혼해선 안 된다는 것이 스캇 펙의 이론입니다. 진짜 당신 없이 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기생충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거지요. 아내 없이는 한 끼의 밥도 해결할 수 없는 남편은 아내의 짐입니다. 남편 없이는 경제적으로 한 달도 꾸려갈 수 없는 아내는 남편의 짐입니다. 만나면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야기만 하는 친구는 친구의 짐입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나라 가정은 남자들의 왕국이었습니다. 가정에서 남자들이 버려질 수 있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남자들이 하인인 집이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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