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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로켓, 탱크, 핵무기, 레이저총…20세기 과학 발전 ‘상상력’ 원천

  • 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로켓, 탱크, 핵무기, 레이저총…20세기 과학 발전 ‘상상력’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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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받는 SF소설

허버트 조지 웰스는 1898년 ‘화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으며 운하도 있다’고 관측 결과를 발표한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의 주장에서 모티프를 얻어 바로 그해 이 소설을 썼다. 로웰은 구한말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로웰에 앞서 1877년 이탈리아 천문학자 지오바니 시아파넬리가 화성 표면에서 선(線)을 발견한 이래 화성은 외계인이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큰 행성으로 지목됐다. 로웰은 ‘이 선들은 화성인들이 도시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개설한 운하’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문명비평가이기도 한 웰스가 소설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건 단순히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가 초래할 수 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외계 생명체들의 행태를 빗대어 인간의 만행을 비판하려 했다. 그는 소설에서 과학 문명에 대한 맹신과 영국 같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도 비판하고 있다. 웰스는 당시 유럽이 전 세계를 약탈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화성인을 단순히 감정 없는 침입자로 묘사했다. 이 소설은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우주전쟁’의 개념이 처음 도입된 문학작품이다.

웰스는 이미 1895년 ‘타임머신’, 1897년 ‘투명인간’이란 SF소설을 발표해 일약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타임머신’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프랑스 작가 쥘 베른과 더불어 공상과학소설의 개척자로 불린다. 베른은 ‘80일간의 세계일주’ ‘해저 2만리’ ‘달나라 일주’라는 작품으로 이름을 떨쳤다. 두 작가는 ‘미래와 상상’을 소설 속에 그려내고 있는 공통점을 지녔다. 두 사람 모두 100여 년 전에 활동했음에도 20세기와 21세기의 작가들을 제치고 열독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는 흥미진진한 줄거리와 소설 속의 온갖 장치가 현대 소설을 읽는 느낌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두 작가가 소설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확연히 다르다. 베른이 인류와 문명을 낙관적으로 그린 반면 웰스는 인류 문명에 대한 지독한 비관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베른이 당대의 과학적 지식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 실현 가능한 발명품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킨 데 비해 웰스는 온갖 장치를 ‘상상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 꾸몄다. 베른은 “나는 그의 상상력 넘치는 천재성을 한없이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웰스를 격찬했다.



웰스의 ‘우주전쟁’은 발표되자마자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문어처럼 생긴 화성인, 긴 촉수로 인간을 휘어잡아 죽이는 외계 생명체, 바퀴 대신 발이 달린 거대한 로봇, 철제 무기를 녹이는 외계의 광선포, 열선에 의해 녹아내린 도시 같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지난 100여 년간 소설과 영화에서 수없이 변주돼왔다. 오늘날까지 SF 장르에서 가장 사랑받는 행성 간의 전쟁, 레이저 빔, 원자폭탄, 외계인의 습격 같은 소재는 이 작품에서 유래했다. SF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생김새가 대부분 문어와 비슷하게 그려지는 것은 ‘우주전쟁’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선 상상력

당시에는 생소하게 들렸을 최첨단 무기는 상당부분 현실화했다. 작가 웰스는 핵폭탄 이론이 나오기 훨씬 전에 원자폭탄 전쟁을 예견했다. 반전활동가로 평화적 세계 통합을 꿈꾸던 웰스는 자신의 예언이 태평양전쟁에서 비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생전에 목격했다. 웰스는 2차 대전 발발, 나치 독일 패망, 유럽연합, 프리섹스 등을 족집게처럼 맞혔다.

이 소설은 SF를 문학의 반열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된다. 문학 장르뿐만 아니라 발명가와 과학자가 되고 싶은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소설 ‘우주전쟁’은 1938년 오손 웰스에 의해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된 이후 1953년에는 조지 팰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해 2005년 개봉한 영화 ‘우주전쟁’ 역시 웰스 소설의 각본이다. 스필버그는 “웰스는 시대를 앞선 상상력을 가진 인물이다. 내 영화 ‘우주전쟁’은 그에 대한 존경과 헌사의 표현”이라고 숭앙했다. 1988년에는 TV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화성침공’이란 영화를 만든 팀 버튼 등 수많은 영화감독과 엔터테이너들은 가장 큰 영감을 받은 문학작품으로 소설 ‘우주전쟁’을 꼽았다.

‘우주전쟁’은 문화뿐 아니라 물리학, 생물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26년 세계 최초로 액체추진 로켓 발사 시험에 성공한 로버트 고다드는 이 소설에서 화성인들이 타고 온 물체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소설 속에 등장한 생물학 무기, 레이저 총, 탱크는 20세기 들어와 실제로 제작됐다. 미 항공우주국의 화성탐사선 발사 계획도 이 소설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과학적 상상을 통해 사회문제를 제기했던 웰스의 사상은 여러 후진 작가에게 이어져 SF가 단지 ‘공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데 이바지했다.

신동아 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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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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