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이 있다

묵호의 냄새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이 있다

1/4
  • 열차가 대진항을 지나면서 갑자기 익숙한 풍경과 냄새가 떠올랐고 그것이 곧 어달동임을 확인했다.
  • 나는 도계를 나중 일로 미루고 묵호에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이 있다

묵호역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 있다. 북한강변의 도로. 이 길을 따라 동북 방면으로 줄기차게 달려가면 청평을 지나 가평, 그곳을 지나 남춘천, 또 거기를 우회도 하고 직진도 해가며 달려가면 인제다. 그쯤이면 욕심이 더 난다. 동북방의 제법 큰 도시 인제를 지나 원통이며 용대까지 가면 큰 고개를 넘고 싶어진다. 미시령이든 한계령이든, 그것을 넘어가면 동해다.



열아홉 살 적 자전거 여행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 있다. 지금은 길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서울 동쪽의 미사리나 구리나 퇴계원에서 우편향(右偏向)을 지속하면 곧 동홍천까지 직진화한 고속도로를 달리게 된다. 그와 엇비슷하게 달리던 기찻길도 한 시간에 한 대 달리던 경춘선이 아니라 이제는 서울이 한 팔을 좀 더 길게 뻗은 듯한 느낌으로 변해버렸다. 구불구불, 북한강변의 낮은 자리로 달리던 열차는 사라지고 이제는 복선 전철로가 동북방의 산들을 관통하며 거의 직선으로 주파한다.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 있다. 그때도 뜨거운 여름이었다. 1986년이니 벌써 사반세기가 넘은 기억이다. 낭만적 시간 개념으로 오늘의 급변을 일부러 우중충하게 바라볼 마음은 없다. 변하는 것은 변해야 한다. 어쩌다 마음이 일렁거려 큰맘 먹고 경춘선 한번 타는 사람은 ‘느림의 미학’ 어쩌고 하면서 그것의 상실을 괜한 시름으로 여기겠지만, 서울과 춘천,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선 전철은 시급한 과제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재원과 에너지와 인력과 장비를 들여 이 동북방의 거친 산야를 직선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1986년의 여름도 무더웠고 2013년의 8월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무덥다.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 있다. 그때 중고 자전거포에서 낡은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해 별다른 장비도 챙기지 않고, 우선 집을 나서면 금세 돌아오기가 머쓱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대성리를 거쳐 가평으로, 또 그곳에서 춘천으로 양구로 인제로 그러다가 동해안의 양양, 울진을 거쳐 경북 내륙으로 들어가 상주, 대구 거쳐 경남의 마산이며 전남의 보성이며 끝내 목포까지 갔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나주 지나 광주에서 한 숨 고른 후, 모든 역에 다 정차하던 느리고 느린 비둘기호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는 사이 자전거를 두 번인가 바꿀 수밖에 없었고, 버스정류장이며 짓다 만 가건물이며 어느 농막에서도 설익은 잠을 자곤 했다. 열아홉 살 적 일인데 그때의 도로 사정이며 자전거의 성능이며 주머니의 용돈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인연도 없는 농가에 불쑥 들어가 점심이며 저녁을 얻어먹으면서 며칠 다니기도 했으니 요즘 같으면 신고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의 협곡과 산모롱이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 있다. 인제군 남면 신남리! 그때는 며칠 동안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인제의 신남리에서 용대리에 이르는 길은 비포장이었다. 산의 중턱을 깎아 만든 도로는 끝도 없이 휘어졌다. 바로 눈앞에 도로가 보이지만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소양호가 만든 물의 협곡 사이로 깊숙하게 들어갔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와야 했다. 그렇게 하여 다시 소양호에 가까이 다가서면 길은 산모롱이를 돌아나갔고, 그 길을 따라 돌고 나면 또다시 물의 협곡이 깊게 파여 있었다.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 있다. 소양호의 상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갈수록 길은 반듯해졌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소양호로 나왔다가 하는 고행의 페달링을 한나절이나 반복한 끝에야 겨우 용대리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거기서부터는 비교적 길이 직선에 가까웠다. 그러나 다행이랄 것도 없는 것이, 그 길은 두 개의 높은 고개를 지향하고 있었다. 좀 더 위쪽으로는 마침내 속초에 이르게 될 미시령이었고 그 아래쪽으로는 결국 양양에 다다르게 될 한계령이었다. 양양과 속초 사이에, 속초 쪽으로 더 가까운 곳에 물치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 ‘물치 삼거리’를 꼭 가보고 싶었다. 이제하의 소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에 그 지명이 나왔는데, 열아홉 여물지 못한 감각에 ‘물치 삼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꼭 가봐야 할 장소 같았다.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이 있다

강원 강릉시 안목해변

1/4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목록 닫기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이 있다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