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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한류 대박에 묻어가기? 영혼 없는 ‘문화수출’ 정책

왜 싸이는 되고, 韓食은 안 될까

  • 전원경 │작가·문화정책학 박사 winniejeon@hotmail.com

한류 대박에 묻어가기? 영혼 없는 ‘문화수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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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화권 케이블TV 시장 열리며 값싼 ‘한드’ 히트
  • ● 한류를 저질문화 취급한 한국 정부
  • ● “韓 스타일까지 수출하자”? 문화국가주의 발로
  • ● ‘빅뱅’에 열광한다고 판소리에도 환호할까
한류 대박에 묻어가기? 영혼 없는 ‘문화수출’ 정책

미국 뉴욕에서 공연 중인 싸이.

#1 지난해 9월 화창한 토요일, 아이들 손을 잡고 영국 글래스고의 중심가인 뷰캐넌 스트리트로 나갔다(당시 글래스고대학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모처럼 비가 오지 않는 주말이라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런 날이면 거리 한 모퉁이에 묘기를 보여주거나 춤을 추면서 행인의 푼돈을 받는 버스커(Busker)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날도 서너 명의 젊은이가 현란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춤추는 음악이 귀에 익었다. “오빤 강남스타일!” 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구나. 젊은이들은 한국말 가사까지 제법 엇비슷하게 불러가며 춤을 췄다. 거리를 지나던 젊은이 서너 명이 함성을 지르며 합류했다. 삽시간에 영국의 북쪽 도시 글래스고의 중심가에서 ‘강남스타일’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 2 새 학기를 맞아 글래스고대 문화정책센터 박사과정에 신입생이 들어왔다. 어느새 박사 3년차가 된 나는 약간 심드렁한 표정으로 1년차 학생들과 인사를 나눴다. 프랑스에서 온 여학생 이본과 이란 국영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했다는 무하마드가 신입생.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하자 무하마드의 눈이 커다래진다. “한국? ‘대장금’과 ‘주몽’의 나라! 이란 사람들 한국 드라마 정말 좋아해. 우리 방송국 사람들도 다들 ‘대장금’ 얼마나 재미있게 봤는데….”

또 이런 반응이다. 아시아권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나 한국 드라마 정말 좋아해! 송혜교랑 권상우 팬이야!”라든지 “너, 한국에서 기자였다며? 배용준 만난 적 있니?” 하며 반색한다. 말레이시아 대학의 영문학 교수인 친구 자리나의 큰딸은 ‘수퍼주니어’ 팬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아시아권을 넘어 중동 국가에서 온 친구들에게서도 이런 반응은 예삿일이다.

영국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그것도 문화산업과 문화정책을 전공했다고 하면 반사적으로 이런 질문이 돌아온다. “영국 사람들도 정말 한국 드라마나 한국 가요를 좋아해요?” “진짜로 영국에서도 ‘소녀시대’가 유명해요?”….

한류 수출 = 국위 선양?

글쎄, 소녀시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난가을 ‘강남스타일’ 열풍이 영국을 비롯해 전 유럽을 강타한 것만은 확실하다. 휴가를 보내러 간 스페인의 작은 섬에서도 ‘강남스타일’을 들었을 정도이니. 하루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강남스타일’ 가사 영어로 만들어줄 수 있어?”라고 물었다. 친구들이 ‘강남스타일’ 가사 좀 해석해달라고 자꾸 부탁해 귀찮아 죽겠다면서 말이다.

1990년대 후반 이래 아시아권,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 있는 방송 콘텐츠가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시청자에게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이미 ‘미드(미국 드라마)’를 넘어선 지 오래다.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등에서도 한국 드라마는 확고한 시청자층을 확보한 방송 콘텐츠로 자리 잡았고, 이런 인기는 앞으로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듯하다.

韓스타일 프로젝트

유럽 시장 진출은 아시아권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이긴 하나,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에서 알 수 있듯 최근 유럽에서 케이팝(K-pop) 마니아층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2005년 6월 28일 보도처럼 ‘한때 일본이나 중국의 문화적 속국처럼 보이던 한국은 이제 그런 오해를 딛고 아시아의 대중문화 리더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런 대중문화 인기를 등에 업고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도 ‘비무장지대와 대학생 시위’에서 ‘최신 유행과 첨단 기술의 산실’로 바뀌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이 있다. 그렇다면 한류의 수출은 곧 한국의 국위 선양일까.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니 다른 한국 문화도 외국에 진출하는 것은 시간문제일까. ‘대장금’에 열광했던 세계 80개국의 시청자들은 한복과 한식의 고객이 될 수 있을까.

먼저 한류 수출이 우리에게, 그리고 그 소비자층인 해외 시청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별은 내 가슴에’나 ‘사랑이 뭐길래’ 같은 드라마, 그리고 H.O.T와 N.R.G 등 보이 그룹들이 중화권에 진출하기 시작할 당시, 언론 보도에는 ‘문화외교’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한국 드라마와 대중가수들은 한국의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문화외교관” “‘겨울연가’ 한 편이 외교관 50명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는 식의 흥분된 보도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류는 광복과 정부 수립 이래 한국이 처음으로 이뤄낸 본격적이고 지속적인 문화상품 수출이다. 영국인에게 자국의 문화상품 수출은 흔한 일이다. 1960년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 즉 비틀스를 위시한 영국 팝 뮤직의 미국 시장 열풍까지 가지 않는다 해도, 요즘 한국 TV에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댄싱 위드 스타’나 ‘마스터셰프 코리아’ 등은 영국 프로덕션들이 개발한 프로그램 포맷을 한국 방송사에서 구입해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영국 사람들은 자국의 문화상품 수출, 가령 “한국 젊은이들이 요즘 ‘셜록’과 ‘닥터 후’ 같은 영드(영국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라고 말해도 “응, 그래?” 하고 심드렁해한다. 영국 드라마와 영화가 한국의 젊은층에게 인기를 얻고 ‘댄싱 위드 스타’가 한국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부상했다고 해서 이를 ‘영국 문화’ 그 자체의 수출로 여기거나 영국의 대외 이미지 향상과 연결 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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