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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경남 남해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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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남해 금산의 보리암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수 년 전, 경남 사천과 남해 본섬 사이의 창선도를 디딤돌로 해서 뭍과 섬, 섬과 섬을 잇는 두 개의 교량, 즉 삼천포대교와 창선대교가 개통되면서부터 삼천포에서 남해로 건너가는 일이 이웃집 나들이처럼 쉬워졌다. 이들 교량은 건설 단계에서부터 교통의 편리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준다는 의도를 다분히 담고 있었기에 개통과 동시에 빼어난 자연 풍광에 문명의 멋이 어우러진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아치 형태의 철 구조를 가진 삼천포대교는 주변을 압도하는 듯한 우람한 몸체, 바다 빛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붉은 색채가 언뜻 위화감을 주기도 하지만, 비바람 부는 때 혹은 석양에 다시 다리를 건너다보면 이 모양새, 이 빛깔밖에 달리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보다 훨씬 밋밋한 형태를 한 창선대교 주변에는 남해의 명물 죽방렴 멸치 어로장이 흩어져 있다. 물길 따라 떼 지어 온 멸치를 죽방에 가둬 잡는 전통 어로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이렇게 잡은 싱싱한 멸치의 맛은 길 가는 나그네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다리 너머의 포구 마을에 미식가들이 찾아드는 소문난 멸치횟집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남해 가는 길

여기서 차로 10여 분 달리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물건리 방조어부림에 닿는다. 아름드리 고목이 숲을 이뤄 병풍처럼 포구를 감싸 안은 곳이다. 태풍과 바닷물의 범람, 염분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이 방조림이며, 은신처를 찾아 고기떼가 모여들게 하는 숲이 어부림이다. 유서 깊은 이곳의 숲은 이제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300여 년 전 이곳 주민들에 의해 일궈진 숲은 길이 1500m, 너비 30여m 규모다.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의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가 숲을 꾸미고 있고, 숲 가운데로는 산책로가 다듬어져 있다. 숲과 맞닿은 해변은 자갈로 채워졌다. 볕 좋은 날이면 주민들이 자갈밭에 멸치를 널어 말린다. 녹음의 숲길을 걷은 뒤 멸치 냄새가 풍기는 해변에 앉아 먼 데 고깃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떠나온 세상의 시름과 고달픔쯤은 씻은 듯 가시기도 한다. 몇 해 전에는 삼천포에 사는 정삼조 시인이 이곳 물건중학교에서 근무했다. 그와 함께 방조림 끝의 선착장에서 고등어 몇 마리를 걸어 올리겠다고 낚싯대를 놀리던 때가 엊그제 같다.

물건에서 남해 섬 끄트머리의 포구 미조에 이르는 도로를 물미해안도로로 부른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 알았다. 아무튼, 미조항은 남해에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마을의 하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해변에서 시작된 마을은 야트막한 산허리를 타고 건너편 바다로 넘어가면서 남, 북 두 개의 미조항을 만드는데, 마을을 품고 두른 산과 바다의 품새가 그렇게 넉넉하고 안온할 수 없다. 바다 저편에 한가롭게 앉은 섬들의 자태도 마찬가지다. 특히 화염이 번지듯 하늘이 붉게 물드는 저녁 무렵에 미조항을 내려다볼라치면 자못 가슴이 막혀오는 감동마저 느낄 수 있다.

‘송정솔바람해변’이며 ‘상주은모래비치’는 미조항에서 다시금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해안도로에서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송정해수욕장. 상주해수욕장이라고 부르던 곳으로, 어느새 제법 감성적인 이런 이름으로 바뀌었다. 요즘 세대에게는 꽤 먹혀들 지명이지만 나로서는 왠지 살갗이 근질거리는 느낌이다.

해수욕장이 구색을 갖추려면 우선 바닷물이 맑고 수온이 적당하며 수심이 완만해야 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모래밭을 곁들여야 한다. 게다가 그늘을 즐길 수 있는 나무숲이 모래밭을 두르고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했던가. 상주와 송정의 해변은 이 조건을 다 갖췄다. 해마다 여름 한철 100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상주은모래비치는 남해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서른 몇 해 전, 처음 이곳을 찾았던 이래 나는 남해를 여행할 때마다 이곳을 빠뜨리지 않는다. 생전 처음 만난 그 순결한 해변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 까닭이라고 해도 괜찮다. 타원형으로 바다를 감싸 두른 드넓은 모래밭이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인적이 드물어 사장은 마치 시베리아 벌판처럼 넓어 보이기까지 했다. 바다에는 그림처럼 섬들이 떠 있고, 짙푸른 솔숲이 장막처럼 모래밭을 둘렀고, 그 너머로는 훤칠한 돌산 하나가 의연히 창공에 키를 세우고 있기까지 했다. 풍경은 태곳적 적막에 잠겨 있었으며 쏟아지는 햇빛으로 인해 바다와 모래밭, 들판과 산이 저마다 눈부신 빛살을 튕겨냈다. 절망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남해 상주은모래비치(왼쪽)와 미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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