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호

바람이 분다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길 위의 음악, 국도변의 서정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13-09-23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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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분다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장항제련소가 길 옆으로 보이는 충남 장항의 국도.

    만프레드 아이허가 왔다. 누구? 만…프레드 아이허? 할리우드 유명 배우도 아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축구선수도 아니다. 국제적인 거물 정치인도 아니다. 혹시 재즈를 좋아하시는지? 그리고 가을을, 여행을, 커피를, 키스 자렛을, 텅 빈 거리를, 침묵을, 팻 메스니를? 침묵 다음에 흐르는 맑고 투명한 소리를?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프레드 아이허가 누군지 잘 알 것이다.

    독일 뮌헨에 거점을 둔 세계적인 재즈 음악 레이블 ECM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 그가 왔다는 소식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를 만나러 인사동에 갔다. 그가 준비한 전시회를 보러 무작정 간 것이다. 11월 3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ECM 전시회,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 그것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개막 첫날, 9월이 오기 바로 전날에 나는 인사동으로 휘적휘적 걸어가서 내 젊은 날의 감각과 취향에 강렬한 화인(火印)을 남긴 ECM의 레코드와 사진과 기록을 보러 갔다. 오직 그걸 보러 간 것인데, 그곳에 개막에 맞춰 내한한 만프레드 아이허가 있었다. 그를 한참이나 보았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저 친구는 누군데, 나를 응시하는 걸까?” 그러나 나는 다가가지 않았다.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투명하고 섬세한 ECM 음악

    바람이 분다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ECM 전시회 포스터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했고 그는 대답을 했다. 묻고 싶은 바가 없지 않았지만(예를 들어 ‘세상은 점점 혼탁하고 불안해지는데 ECM의 영롱한 소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가 다른 이들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으로부터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아이허는 “ECM의 아티스트들이 표현하는 클래식 음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시적인 요소’다. 그러한 시적인 요소가 있다면 클래식, 재즈, 민속음악이라는 구분 없이 다 훌륭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지 그 음악을 만든 작곡가나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가 모두 자신만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ECM의 역할은 바로 그러한 독창성을 잘 발현해내는 것이며, ECM의 아티스트들은 그러한 독창성을 표현하는 것에 탁월하다.”

    그가 만든 마스터피스에 비하면 지나치게 정답에 가까운 대답이지만 그런대로 받아들일 만했다. 사실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음반에 다 들어 있다. 키스 자렛, 팻 메스니, 랠프 타우너, 얀 가바렉 같은 섬세한 재즈 음반이나 기야 칸첼리, 아르보 패르트, 지외르지 쿠르탁 같은 현대의 비극을 담은 클래식 음반에 그의 대답은 이미 다 들어 있다. 나는 그것을 30년 가까이 들어왔기 때문에 말로 질문하고 말로 대답하는 것은 어쩌면 번거로운 부산물이었다.

    그러나 다음의 대답은 잊기 어려웠다. 누군가가 “급변하는 음악시장 환경에서 음반이 가지는 의미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아날로그 시대 때부터 음악을 접했다. LP판의 비닐, 재킷, 잡음, 그리고 판을 꺼낼 때의 느낌까지 내게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음악적인 경험이었다. 나는 아날로그 시대의 경험을 했고, 따라서 그러한 경험이 지닌 가치를 안다. 책을 읽었을 때 물론 책 안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을 처음 쥐었을 때의 느낌, 책장을 넘기는 소리, 이 모든 것이 독서의 경험에 포함되지 않는가. 음반에 실린 곡과 곡 사이에 쉬는 타이밍에도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이 담겨 있다.”

    어디론가 떠나게 만드는 소리

    바로 그점일 것이다. 중3 때였던가, 아니면 고1 때? 그 무렵 키스 자렛의 걸작 앨범 ‘My Song’을 접한 이후 불멸의 ECM을 여태 들어온 것은, 단 한 곡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에 흐르는 어떤 이야기와 질감 때문이었다.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앨범에는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 있었고, 그것을 견디거나 벗어나기 위해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자의 상실감이 배어 있었다. 그가 만든 앨범의 표지 디자인은 그 자체로 탁월한 감각이 작동한 섬세함의 극치라서 그 안에 담긴 음반의 곡들을 듣지 않고서도 당장 그 앨범의 냄새며 색깔이며 온도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관여한 음악을 들으면 그 순간 아무 미련 없이 떠나고 싶어진다. ‘힐링 이전의 힐링’이다. 여행을 통해 뭔가 재충전한다든지 하는 일말의 계몽도 없다. 그냥 떠나버리게 만든다. 실제로 나는 그가 만든 음반들을 듣다가 목적지도 없이 떠난 적도 있고, 무슨 일로 어디론가 가게 되면 마치 음악을 듣다가 그냥 뛰쳐나온 것처럼 억지로 그렇게 마음을 먹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시화방조제 밤 풍경

    그렇게 하여 어디론가 차를 몰고 달리다가 국도의 변에 문득 멈춰 선다. 꽤 오랫동안 경향 각지를 돌아다녔고 그런 일들을 바탕으로 이렇게 ‘힐링 필링’을 연재하고 있지만, 잠시 틈을 내 조금은 억지스럽게라도 우기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내 마음 속의 진짜 힐링 장소가 ‘국도변’이라는 점이다.

    이 점, 분명한 사실이지만, 황량하고 쓸쓸한 국도변을 힐링 장소라고 하면 너무 주관적이다. 경향 각지의 산 좋고 물 좋은 곳, 그윽하고 아늑한 곳, 쉬기 편하고 책 읽기 편하고 걷기 좋은 곳을 다 제쳐두고 국도변만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허름한 주유소 하나쯤 있고 언제 재료를 채워놓았는지 모를 낡은 자판기에서 멀건 인스턴트 커피를 한잔 뽑아서 저물어가는 들판을 바라보는 것만큼, 적어도 내게는 마음이 편안한 장소가 실은 달리 없다.

    만프레드 아이허가 아니었다면, 11월 초까지 인사동에서 그가 만든 앨범을 주제로 한 ECM 전시회가 열리지 않는다면, 나는 국도변의 서정을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혼자서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그 버릇 지금까지 못 고쳐 매달 이렇게 돌아다니지만, 그런 경험의 배경에 ECM의 앨범 표지들에 담긴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 이미지가 있었음을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개심사 소나무

    국도변을 한참이나 달리다가 문득 멈춰 서면, 흡사 오래전부터 소장해온 음반의 표지를 닮은 어떤 풍경이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 풍경들 앞에 서면 나는 틀림없이 과거로 여행을 온 듯한 환영에 빠진다. 시간도 멈췄고 공기의 흐름도 멈췄고 차도 멈췄고 나도 국도변에 그냥 멈춰버렸다. 이 아득한 순간들이 나를 어루만진다. 국도변의 황량한 풍경이 나를 감싼다. 나는 시공간의 진공 상태에 빨려들어가 한참이나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테면 시화방조제가 그렇다.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와 안산시 대부동 방아머리를 잇는 길이 11.2㎞의 방조제다. 6년 반 만에 준공을 본 방조제다. 1987년 6월부터 1994년 2월까지 벌인 시화지구 간척사업으로 준공됐다. 간척사상 최대로 알려져 있는 10.3m의 조차(조석 현상에 의한 만조 시와 간조 시의 해수면 높이의 차)를 극복한 난공사를 겪었다.

    공사 계획 때나 공사 중일 때, 공사 완료 이후에도 이러한 간척 개발에 따른 엄청난 생태계 교란과 환경오염이 문제였다. 실제로 방조제 완공 직후에는 악취와 오염과 환경 재난을 다룰 때 어김없이 시화호 일대가 언급됐다. 그런데 인간의 온갖 노력에 감응한 자연의 위대한 배려로 인해 지금 시화호는 ‘생명의 호수’로 불리고 있다. 천연기념물 201호 큰고니, 천연기념물 205호 노랑부리저어새, 천연기념물 361호이면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 노랑부리백로 등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호수다.

    초가을 이맘때면 저녁 7시 전후의 시화방조제가 거룩하다. 누구는 서해 쪽으로 가서 전어를 먹네, 꽃게를 먹네 하고 소동을 피우지만 설령 그런 여정이었다 하더라도 시화방조제의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운 후 저물어가는 서해를 보라. 전어니 꽃게가 문제가 아니다. 압도적인 하늘에 드리워진 광활한 공기마저 누구도 보지 못한 곳으로 서둘러 휩쓸려간다.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이다.

    시화호에서 1시간 남짓 달려가면 서산의 개심사다. 개심사는 가야산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내려오면서 산뜻하게 떠오른 상왕산의 남쪽 기슭에 있다. 백제 의자왕 14년에 창건된 역사를 갖고 있으니 기록상으로는 고찰이다. 그러나 화재가 났었고 이를 조선 성종 6년(1475)에 중창했다고 한다.

    서산 개심사의 소나무는 청도 운문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산중 사람들이 으뜸으로 꼽는다. 그래서 가급적 개심사를 갈 때는, 주차장에서 곧바로 개심사에 이르는 골짜기 길보다는 소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능선 길을 따라 걷는 게 낫다. 능선이라고 해도 20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근대의 명필 해강 김규진의 예서체 ‘상왕산 개심사’라는 현판이 늠름하고 그 아래로 사시사철 어느 때나 운치 있는 연못이 장려하다. 심검당(尋劍堂)이라는 요사채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덕분에 ‘나무의 자연스러운 결을 그대로 살린 최고의 건물’로 꼽히는데, 어떤 건축학자들은 그게 일부러 그것을 추구해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산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가 그런 형태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찌 됐든, 슬기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대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바람이 분다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

    그런데 내 마음속 개심사는 산속 깊은 곳의 대웅전이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과정의 국도변이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벗어나 개심사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봄에는 황홀한 벚꽃 때문에,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 때문에 자꾸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역시 그 시간은 늦은 오후가 좋다. 대지를 적시던 태양은 9월이면 황급하게 물러선다. 역시 서해 쪽이라서 금세 그 기운이 사라지지는 않고 들판 곳곳을 어루만진다. 그 광경 앞에서, 주유소의 낡은 자판기에서 뽑아온 인스턴트 커피 한잔을 들고 가만히 서 있다보면, 어느새 밤이 된다.

    다시 그곳에서 한 시간 정도 내려가면 내소사가 있는 변산반도 일대가 된다. 서해를 따라 펼쳐진 지역이 외변산이고 내륙을 내변산이라고 한다. 중앙 내륙 일대는 199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만약 의견이 다른 가족이나 취향이 다른 회사원들끼리 어딘가를 가야 한다면 그 1번지로 꼽을 만한 곳이 변산 일대다. 바다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격포리 일대의 해안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깊고깊은 변산에 아예 사무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조선 후기나 근세기에 전란을 피하려는 정감록 일파나 가족사의 악연으로 정든 마을을 벗어나야만 했던 사람들이 이곳에 몸을 숨기곤 했다. 그만큼 산이 깊고, 산이 깊어서 뭐라도 캐서 먹으며 구명하기에 좋았다는 곳이다.

    외변산이든 내변산이든, 어느 곳이나 차를 세우고 한참이나 머물기 좋다. 특히 9월의 가을, 해가 지는 오후가 되면 반드시 곰소만 일대의 국도변에 머물러보기를 권한다. 해는 아주 느릿느릿 저문다. 내륙 깊숙이 들어온 물 위로 놀이 물든다. 산이 어두워지고 물은 한순간이나마 붉은 기운으로 번진다.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그렇게 산은 깊어지고 물은 장려해진다. 국도변에서 도저히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인데, 이러한 풍경이란 서해 전체에서도 매우 드물다. 참고로, 나는 결혼하기 전 아리따운 아가씨 한 사람을 그곳까지 데리고 가서 그 광경을 보여주면서 말하자면 청혼이랄까, 그런 쑥스러운 일을 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그곳은 그럴 만한 곳이고 성혼율은, 적어도 내 경우로 보면 100%다.

    다시 그곳에서 한 시간 못 미쳐 가면, 담양이다. 아무래도 가족과 함께 가을 나들이를 하려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장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방조제나 국도변에서는 혼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지만 아무래도 그런 악취미를 온 가족이 함께 할 수는 없다. 담양의 죽녹원과 그 일대라면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다. ‘한국대나무박물관’에서 대나무의 생태와 재배, 죽세공예품 등을 볼 수도 있다. 담양 향교 인근 언덕에 조성된 ‘죽녹원’에서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오랫동안 느낄 수도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문향이 배어 있는 소쇄원, 식영정, 명옥헌 같은 곳은 도무지 그곳을 벗어날 여지가 없게 만드는 그윽한 장소이며 그곳들에 이르는 국도변은 지극히 아름답다. 특히 메타세쿼이아 길이 그렇다. 요즘은 너무 많은 사람이 찾는 바람에, 특히 5월에 열리는 대나무축제 같은 때에 찾다보면 성가신 일도 벌어지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삶의 어떤 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봉인하기에 아름다운 국도다.

    가을밤의 서정

    인사동의 ECM 전시회를 보고 난 후, 한두 가지 약속을 더 마친 후, 늦은 밤에야 귀가하게 됐다. 토요일이면 인사동 일대에 차량이 들어갈 수 없고, 게다가 약속들도 모두 인사동과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라서 모처럼 차를 두고 시내에 나간 길이었다.

    그리하여 깊은 밤, 초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에 심야 좌석버스를 탔다. 사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버스를 기피하는 편인데, 대중교통을 생활화하자는 전 국민적 운동에 동참하지 못하는 까닭은, 버스 안의 소음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음에 민감한 편이라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도 한사코 가지 않는다. 상대방이 그런 곳을 약속 장소로 잡아놓으면 어쩔 수 없이 들르지만, 곧 그를 데리고 조금이라도 조용한 곳으로 도피한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음악,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대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전자음을 가급적 피하면서 살아간다. 버스는 어떤가. 듣기 싫은 음악이 쉬지 않고 흘러넘치기 일쑤고, 엿듣고 싶지 않은 밀어를 억지로 들어야 하며 운 나쁘면 횡설수설하는 취객 옆에 앉아서 고약한 술 냄새까지 맡아야 하는 고행이 따른다.

    그래서 웬만하면 버스를 타지 않는데, 그날, 초가을의 깊은 밤은 달랐다. 오히려 기사 아저씨에게 라디오 볼륨 좀 높여달라고 목청껏 소리치고 싶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심야 좌석버스를 탔는데, 희미하게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가 몸에 다가와서 스며들곤 했다. 이제 가을이 시작된다는 이유로 라디오의 어느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가을’ ‘낙엽’ ‘사랑’ ‘그리움’ 같은 낱말이 들어간 노래를 연속해서 틀었다.

    기억 속 서울

    피곤한 몸에 스며들었던 노래의 가사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그대사랑 가을사랑 단풍일면 그대오고 그대사랑 가을사랑 낙엽지면 그대가고”(신계행, 가을 사랑), “그대와 나 둘이서 사랑을 할 때 제가 먼저 사랑할래요 사랑을 받을 땐 행복하지만 주는 마음도 햇살이에요”(강인원, 내가 먼저 사랑할래요), “끝,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로 불어가는 아, 자유의 바람”(한대수, 바람과 나), “이제는 모두 잊을래 잊자 그래도 추억은 그대로인걸 잊어버리려 애를 써도 눈물이 고여있는 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내 마음의 깊은 사랑인가”(오성과 한음, 빛바랜 사랑)….

    바람이 분다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한창이던 1987년 6월 성공회 서울대성당.

    이런 노래들이 집으로 가는 심야의 좌석버스 안을 은은하게 채웠다. 이런 노랫말만 보고도 금세 선율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위의 노랫말로 잠깐 검색이라도 해보면, 비록 한 세대 전의 노래지만, 이 가을을 더없이 그윽하고 애틋하게 만드는 노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리고 그 프로그램은 마지막 곡으로 이소라의 ‘바람의 분다’를 선곡했으니, 요즘 말로 해서,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아저씨, 볼륨 좀 높여주세요!”라고 외칠 뻔했다. 가을! 가을 아닌가!

    만약 내가 그날의 선곡을 담당했더라면 꼭 하나 추가하고 싶은 노래가 있다. 노랫말에 ‘눈 덮인 교회당’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가을보다는 겨울에 합당한 노래지만, 그래도 폭서와 폭습과 폭우를 다 견디고 나서 조금씩 쌀쌀해지는 이 9월이라면 너무나 어울리는 곡이다. 이영훈이 작사·작곡하고 이문세가 부른 노래, ‘광화문 연가’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 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내가 이 노래를 각별히 생각하는 까닭은, 가을이 오고 또 곧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될 것이라는 계절의 감상 때문만은 아니다. 노랫말처럼, 정말 익숙하고 오래되고 정겨웠던 것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마는 이 시대의 가혹한 개발 신드롬 때문이다.

    인문주의 지리학자 이 푸 투안에 따르면 인간은 장소에 둘러싸여 살고 그 안에서 빚어내는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그에 따르면 “장소는 정감 어린 기록의 저장고이며 현재에 영감을 주는 찬란한 업적이며 영속적인 곳”이다. 그러나 메트로폴리스라고 불리는 대도시는 전통사회로부터 이어져온 누적된 감각과 정서, 그 장소의 기억을 분해하고 마모시킨다. 현대에 이르러 의미 있는 장소에서 풍부한 경험과 관계를 맺는 삶은 점점 축소되고, 획일적 표준에 따라 집합적으로 활동하는 무(無)장소성이 압도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정서적 풍경을 작품화해온 이영훈 음악의 중요성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영훈의 작품에는 ‘구체적인 스토리’가 존재한다. 대도시 서울의 쓸쓸한 풍경이 보인다. 이영훈의 작품에는 열렬한 사랑과 실연의 아픔이 배어 있다. 노래 속의 주인공은 노을 지는 하늘을 보며 담배를 피우거나 옛 기억을 찾아 도심 공간을 배회한다.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공간에 대한 기억

    이영훈은 덕수궁 돌담길이나 광화문 광장이나 혜화동 골목의 기억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 실제로 그는 스물네 살 때 혜화동 로터리에 작업실을 두고 곡을 썼으며, 아침이면 혜화동 길을 거슬러 아무도 없는 대학로길을 산책하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할 때도 인사동이나 광화문 일대를 산책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대학로에서 광화문 사이에, 고궁들과 오래된 길과 정독도서관이 있는데, 이영훈의 사랑은 그 도심의 길 위에서 이뤄졌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의 노래는 실연의 아픔을 자주 다룬 듯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대도시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기억이나 애착을 깔고 있다. 이영훈은 대도시 서울의 삶을 애틋한 서정 발라드에 기품 있게 담아냈으며 그것을 이문세가 특유의 목소리로 들려줬다. 단지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감상 때문이 아니라 이 거대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추억을 위해서라도, 이 가을에 빠짐없이 들어볼 만한 노래, 그 노래가 바로 ‘광화문 연가’다.

    이렇게 나의 가을은 ECM의 기억과 이소라의 노래로 시작됐다. 그 음악들은 서울의 거리를 산책하라고 권한다. 국도변으로 가서 잠시라도 자동차를 세우고 들판을 바라보라고 권한다. 당신에게는? 당신에게는 어떻게 가을이 다가왔는가. 기상이변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이번 가을은, 아 가~을 이라고 말하는 사이에, 금세 스쳐지나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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