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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봉준호 리더십 탐구

스스로 날게 하는 경청과 설득의 힘

  • 이형석 |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설국열차’ 봉준호 리더십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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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에 이어 최근 ‘설국열차’까지 대박을 터뜨리면서 봉준호는 명실 공히 최고의 티켓파워를 지닌 감독임을 입증했다. 그와 함께 작업한 국내외 배우들과 스태프는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 치켜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들로부터 기대를 넘어서는 연기와 영상을 뽑아내는 리더십 때문이다.
‘설국열차’ 봉준호 리더십 탐구
“봉준호 감독은 한마디로 ‘능구렁이 리더’다. 절대 자신의 주장을 먼저 내세우지 않고 상대의 말부터 듣는다. 상대의 의견과 상황을 배려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 -배우 송강호

“영화 ‘설국열차’ 속 인물에 빗대자면 꼬리칸의 가장 연장자인 길리엄을 닮았다. 고요하고 침착하지만 세상의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다.”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 에반스

“봉준호 감독의 첫 작품(‘플란다스의 개’)만 빼고 다 봤고 다 좋아한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우리 집에 봉 감독을 초대했을 때 데뷔작을 보여달라고 강아지처럼 졸라댔다. 봉 감독이 ‘강아지 도착증이 있는 당신들에겐 도저히 못 보여주겠다’고 말해 웃었다. 내가 집에서 개를 네 마리나 키우고 있고, 우리 가족 모두 개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

“봉 감독님은 까마득하게 어린(23세 차) 내게 마음을 완전히 열어놓고 소통한다. 거리낌 없이 묻고 상의할 때가 적지 않다. ‘설국열차’에는 내 아이디어로 애초의 설정이 바뀐 장면이 몇 군데 있다.” -고아성

‘賢者 봉테일’

손자병법으로 치자면, 봉준호 감독은 지혜로운 장수, 곧 ‘지장’(智將)이다. ‘설국열차’의 주연 크리스 에반스는 봉준호 감독을 “촬영 현장의 모든 답을 갖고 있는 현자”라고 표현했다. 첫 흥행작 ‘살인의 추억’을 찍을 때부터 봉 감독은 ‘봉테일’로 불렸다. 봉준호와 디테일(detail)을 합친 말로, 영화 작업의 사소한 부분에까지 완벽한 계획을 세워둔다는 의미다.

그뿐만 아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봉준호는 박찬욱과 함께 ‘모든 질문에 친절하고 현명한 답과 주석을 달아주는 인터뷰이’로 정평이 나 있다. 두 사람 모두 우문에 현답을 내놓지만 답변의 색깔은 각기 다르다. ‘설국열차’의 제작자요, 봉준호의 ‘영화적 동지’인 박찬욱은 다소 냉소적이고 현학적인 답을 내놓는 반면 봉준호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답변으로 마무리하는 타입이다.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봉준호는 국내 영화인 가운데 최고의 ‘달변가’로 꼽힌다. 언변과 지식이 카리스마의 원천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그를 봤다면, 현대적 영화 시스템이 부여한 감독이라는 합리적·법적 권위와 함께 개인의 능력에서 비롯된 카리스마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로 파악했을 것이다. 또 계몽주의 시대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라면 그를 ‘여우같은 지혜와 사자의 용맹함을 갖춘 이상적 군주’상으로 분류했을 것이다.

봉준호는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촬영을 거쳐 후반작업을 마칠 때까지 모든 스태프와 배우를 지적인 카리스마로 통솔해 자발적 동의를 받아낸다. 모든 답을 알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서유기’의 삼장법사처럼 현명하고, ‘삼국지’의 제갈공명처럼 박학다식하면서도, 말을 앞세우기보단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경청하는 유비의 귀를 지녔다. ‘괴물’에 출연할 때 중학생이던 고아성을 ‘설국열차’에서 다시 만나자 봉준호는 그에게 끊임없이 묻고 들었다. 영화에서 제법 중요한 설정들이 고아성의 머리에서 나왔다.

고아성만 아이디어를 제공한 게 아니다. 지적이고 개성 강한 미모의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은 ‘설국열차’에서 뻐드렁니 모양의 틀니를 끼고 우스꽝스럽지만 잔인하고 독선적인 지도자 역을 맡았다. 기존의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와 사뭇 다른 파격적인 연기를 펼쳤는데, 이 설정은 스윈튼의 아이디어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슈퍼히어로 영화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저스’에서 주연한 크리스 에반스는 ‘설국열차’에서 헐벗고 굶주린 반란군 지도자로 기꺼이 변신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봉준호 감독이 동료들에게 영감을 주고 도전의욕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한다. 이것이 봉준호가 가진 경청과 설득의 힘이다.

그에겐 여느 감독이나 지도자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강점이 있다. 영화를 통해 살짝 내비치는 빼어난 유머 감각이다. 간혹 짓궂어 보일 만큼 손오공 같은 장난기 가득하고 활력이 넘친다. 소주를 걸치고 장난기 어린 눈으로 능청스럽게 웃으며 고교생이나 쓸 법한 속어까지 동원해 좌중을 배꼽 잡게 만드는 술자리의 봉준호를 마주한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이 아니라 천진한 소년을 대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 못지않게 재미나고 장난기 많은 스윈튼과 한눈에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의외의 면모 때문이리라.

봉준호 리더십의 원천은 이처럼 제갈공명의 머리, 유비의 큰 귀, 조조의 입, 손오공의 장난기에서 유추해낼 수 있다.

‘설국열차’ 봉준호 리더십 탐구

봉준호 감독이 만든 대표적인 흥행작 ‘설국열차’ ‘괴물’ ‘마더’ ‘살인의 추억’(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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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 |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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