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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현장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꼴찌들아, 통쾌하게 승리하라

팟캐스트 방송 ‘꼴통쇼’ 녹화 무대

  • 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꼴찌들아, 통쾌하게 승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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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3월 첫선을 보인 팟캐스트 팟빵의 ‘꼴통쇼’ 열풍이 거세다.
  • 개그맨 오종철과 ‘총각네 야채가게’ 이영석 대표가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쇼다.
  • ‘꼴찌들의 통쾌한 승리’를 함께 나눈다는 취지로 ‘정신무장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꼴통쇼 시즌2 녹화 현장을 찾았다.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꼴찌들아, 통쾌하게 승리하라

‘꼴통쇼’ 공개 녹화 현장. 초대손님인 헤어디자이너 김현태 원장과 MC인 개그맨 오종철, ‘총각네 야채가게’ 이영석 대표(왼쪽부터).

“선물 주는데 별로 안 좋아하고 대답도 없고 참 이상하다. 여러분, 맞고 싶으세요?”

번호를 부르며 경품을 나눠주던 MC의 갑작스러운 ‘협박’에 덤덤히 선물을 받아 챙기던 방청객들 사이에 폭소가 터졌다. 오프라인 전단지 시장을 최초로 온라인화한 (주)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가 특별히 만든 신발 증정식이 끝나자 무대 위의 두 MC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동시에 외쳤다. “대한민국 최초!”

‘꼴찌들의 통쾌한 승리’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방청객들이 “와~” 함성을 지르며 화답한다. “우주 최초!” “세계 최초!” MC들의 외침이 이어질 때마다 방청객은 목이 터져라 박수와 환호를 내질렀고, 실내는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무대와 객석은 죽이 착착 맞아 돌아갔다.

9월 7일 늦은 오후, 직장인의 발길이 끊기고 적막감이 감도는 도심 빌딩 숲을 들었다 놨다 들썩이게 만든 요란한 소음의 진원지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역 인근 대웅제약 본사 지하 베어홀. 토요일인데도 초등학생부터 40대 직장인, 주부 등 8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개그맨 오종철(에이트스프링스 대표)과 ‘총각네 야채가게’ 이영석 대표가 기획, 진행하는 쇼를 보기 위해서다.

‘꼴찌들의 통쾌한 승리’를 함께 나눈다는 취지의 ‘꼴통쇼’가 팟캐스트 전문 포털 사이트 ‘팟빵’을 통해 첫선을 보인 건 올 3월. ‘실업계고 최초의 골든벨 소녀’로 10대 때부터 유명세를 탄 김수영 씨의 ‘꿈꾸는 유목민, 김수영처럼 떠나라’를 시작으로 꼴통쇼는 그간 ‘트랙터로 세계여행, 강기태처럼 몰아라!’ ‘여행박사 신창연 대표처럼 자유롭게 생각하라’ ‘극지마라토너 최규영처럼 모험하라’ ‘공짜로 세계여행 하는 법-류시형’ ‘인생의 사막을 달리는 방법-오지레이서 유지성’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꼴통’ 기질로 인생의 승리를 거머쥔 24명의 ‘마스터’(초대손님)를 출연시켜 파란만장한 삶 이야기를 쏟아내게 만들었다.

이날은 25회 방송으로 ‘시즌2’가 막을 올렸다. 초대받은 ‘꼴통 마스터’는 헤어디자이너 김현태 원장과 가수 장혜진 씨.

오후 5시 35분, “정신무장 버라이어티 꼴찌들의 통쾌한 승리, 꼴통쇼!” MC들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공개방송 녹화가 시작됐다. 하얀 면바지에 감색 재킷을 입은 김 원장이 첫 손님으로 무대에 오르자 MC들이 김 원장의 재킷 윗주머니를 보고 호기심을 드러낸다. 포켓치프 대신 번쩍이는 ‘장식’에 먼저 눈길이 갔기 때문. 김 원장이 “언제든 자를 준비가 돼 있다”며 주머니에서 꺼내 든 건 헤어 커트 가위. 해외 세미나 참석 때 직접 주문해 특수 제작한 황금가위다.

“사람의 일생은 한순간의 여유마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한순간 한순간을 무의미하게 보낸다”는 셰익스피어의 명언으로 말문을 연 김 원장이 자신의 과거사를 풀어낸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 품을 떠나 할머니 손에 맡겨져 ‘깡촌’으로 가게 됐다. 영화 ‘집으로’의 소년과 같은 상황이었다. 서너 살 무렵,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어른들이 밤에 담배 사와라, 술 사와라 심부름을 시키면 캄캄한 밤길을 30분씩 걸어가야 했다. 그땐 정말 살기 싫었는데 돌아보니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려는 순간, MC 오 대표가 끼어든다. “그때 너~무 걸어서 키가 안 자랐어요?” 김 원장은 “못 먹어서”라고 바로 맞받았다. 대여섯 살 무렵 활터에서 목숨을 건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김 원장의 얘기가 이어졌다.

“과녁 옆에 깃발을 들고 서 있다가 화살이 꽂힌 자리를 알려주는 일이었는데, 날아다니는 화살을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받은 돈이 1000원이었다.”

지독한 가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할머니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던 그는 중학교 졸업 후 유흥업소로 진출해 웨이터와 나이트클럽 DJ 생활을 거치며 잘나갔다. 거의 ‘스타’ 대접을 받았다.

“이제 돈 좀 벌겠구나 싶어 희망에 부풀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자정 이후 유흥업소 영업 금지령이 내려졌다, 전력 낭비라며. 졸지에 삶의 터전이 날아가고 백수 신세가 돼서 생계마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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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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