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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2500년 전 서양사상의 정수(精髓)

  • 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2500년 전 서양사상의 정수(精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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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서양사상의 정수(精髓)

국가론
플라톤 지음, 최현 옮김, 집문당

“모든 서양 철학의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을 이보다 더 명쾌하게 총평하는 말도 없다. 저명한 영국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명언이다. 미국 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이 내놓은 단평의 무게도 그 못지않다.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이다.” 서양 사상에 미친 플라톤의 영향은 그만큼 지대하다.

플라톤은 기원전 4~5세기에 살았으면서도 30편이 넘는 저작을 남긴, 보기 드문 인물이다. 그가 직접 쓴 것으로 확인된 것만 25편에 달한다. 수많은 저술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 단연 ‘국가론’(원제 Politiea)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과 정의관이 담겨 있는 정수(精髓)다. ‘국가론’은 형이상학, 정치학, 심리학, 윤리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상의 모든 분야에 가지를 뻗고 있다. 인류 공동생활체를 사상 처음 정리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인간이 ‘어떻게 모여 살아가는 게 좋은가’를 인도해준 최초의 책인 셈이다.

플라톤은 이 책에서 이상적인 국가를 실현하려면 이데아를 직관할 수 있는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른바 ‘철인정치’다. 그는 국가 구성원을 사람의 몸 가운데 머리, 가슴, 배로 비유했다. 머리는 통치자, 가슴은 용기와 기개를 상징하는 군인, 배는 절제가 필요한 생산자다. 머리는 이성을 추구하고, 가슴은 감정 표현을 원하며, 배는 욕구가 채워지기를 희구한다. 국가나 사람도 이것이 잘 충족되고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인 상태, 정의로운 상태라고 플라톤은 말한다.

플라톤은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을 세 부류로 설정했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 이득을 사랑하는 자, 명예를 사랑하는 자가 그것이다. 국가가 멸망했을 때 그들의 행동 양태를 플라톤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득을 사랑하는 자는 침략자에게 붙어 자신의 이익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개인적 능력이나 취향에 젖어 수수방관할 것이다. 반면에 명예를 사랑하는 자는 목숨을 가벼이 여겨 오로지 ‘백일청천 아래 부끄러움이 없는가’를 가장 귀한 가치로 삼아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울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플라톤은 현상의 세계는 ‘선(善)’이 아니라고 봤다. 이 때문에 오직 이데아를 바탕으로 한 이성적인 인간이 돼야 한다고 논파했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개념도 이데아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육체를 멀리하고 이성적인 물음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도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데아는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뜻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사물에는 각기 그 이데아가 있다. 사물의 수만큼 이데아도 다양하다. 삼각형에는 삼각형의 이데아가 있고, 아름다움에는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있다. 이데아는 모두 완전하고 좋은 것이어서 모든 이데아는 ‘선(善)의 이데아’로 귀결된다. 이데아는 육체의 눈으로는 인식할 수 없고, 마음의 눈, 순수한 이성적 사유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선의 이데아’는 플라톤 철학의 핵심이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유명한 ‘동굴의 비유’로 설명한다. 동굴 안은 가시적인 현상의 세계를, 동굴 밖은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실재의 세계를 각기 비유한 것이다. 동굴 속 죄수는 등 뒤에 있는 불빛으로 앞면 벽에 비치는 사람이나 동물의 그림자를 실재라고 여긴다. 죄수는 석방된 뒤에 불빛에 의해서 생겼던 그림자의 본체를 보게 되더라도 여전히 그림자 쪽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죄수들이란 욕심에 절어 동굴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에만 목을 매는 사람을 일컫는다.

‘국가론’은 인류 최초로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를 규정한 책이기도 하다. ‘국가론’은 원래 ‘정의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국가론’이라는 제목도 ‘정체(政體)’라고 옮겨야 맞다. 일본 사람들이 ‘국가론’이라고 번역한 걸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굳어졌다.

‘국가론’ 맨 앞쪽에는 소크라테스가 정의의 개념을 놓고 소피스트들과 토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집주인 폴레마르코스가 말한다. “선한 자를 이롭게 하고 악한 자를 해롭게 하는 게 정의입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반론을 제기한다. “대상이 악하다고 해서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 것이 과연 정의일까?” 그때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가 나서서 논점을 흐린다. “정의는 다스리는 자의 이익입니다. 다스리는 자가 옳다고 정한 규칙을 따르면 그것이 결국 옳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소크라테스가 나선다.

“정의로운 다스림의 본질은 다스림을 받는 자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네. 또한 다스림으로 이익을 얻는다면 올바른 다스림이라고 볼 수는 없지. 정의란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고 이는 국가나 개인에 있어서도 동일하다는 것이지. 제화공은 구두 만드는 일에, 목수는 집 짓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의네. 하지만 정의란 외면적인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인 것과 관련돼 있네. 다시 말해 자신의 내면을 잘 조절하고 지배와 복종, 협력을 마치 조화로운 음정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듯이 변주해내는 일이지.”

2400년 전에 벌어진 이 토론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연상케 한다. 샌델의 ‘정의’는 ‘국가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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