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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늙어가는 옛 선후배들, 해발 4260m에서 우리, 살아있네~

5060 ‘야산회’는 왜 차마고도로 갔나

  • 김종욱 | 자영업자 gayain@nate.com

함께 늙어가는 옛 선후배들, 해발 4260m에서 우리,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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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늙어가는 옛 선후배들, 해발 4260m에서 우리, 살아있네~
64.5 vs. 53.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기준 근로자 평균 은퇴연령은 53세. 하지만 2013년 한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가 성인 남녀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인이 은퇴하기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생각하는 나이는 64.5세였다. 현실과 이상 사이는 11.5년. 그 안에 50, 60대 중년남성들이 있다. 가정과 직장에서 설 곳을 잃어가는 중년남성 다수는 산을 찾는다. 주말이면 이름난 산마다 중년남성들로 가득하다. 단색의 산을 울긋불긋 아웃도어 룩으로 물들이며 그들은 산에서 위로를 얻는다. 산은 건강도 돌봐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새롭게 도전하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힘을 실어준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최근 차마고도(茶馬古道), 백두산, 실크로드 등지로 해외 트레킹을 가는 인구가 급증했다. 여행객 대부분이 은퇴를 전후한 50~60대라고 한다. 그들은 왜 젊은 사람들도 오르기 힘든, 그 멀고도 외딴 차마고도로 가는가. ‘첫 번째 직장’에서 은퇴해 ‘두 번째 업’을 일궈가고 있는 1959년생 중년남성이 차마고도 기행문을 보내왔다.

2013년 10월 24일 오후 4시. 여덟 남자가 인천국제공항에 모였다. 최고 연령 61세. 50대 중반인 나와 ‘전’이 막내인 이 모임의 이름은 ‘야산회’다. 한 대기업에서 20~30년간 근무하고 퇴직한 사람 중 산을 좋아하는 몇몇이 모여 2007년 만든 모임이다. 회사 이름 중 한 글자인 ‘야’에 ‘산’을 더해 야산회라 이름 지었는데, 여기에는 구성원들의 나이를 생각해 ‘야트막한 산에만 다니자’는 뜻도 담겨 있다.

우리는 매달 1~2번 서울 근교의 야산을 찾곤 했는데, 모인 지 5년이 넘어가다보니 웬만한 야산은 몇 번씩 반복 등반을 했다. 그러자 멤버들은 나라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 생에 남은 시간을 고려할 때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 지금 부지런히 설쳐야 한다는 강박감도 있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은 외국의 명산에 가자고 결의했고, 지난해 백두산을 거쳐 올해는 중국의 차마고도를 가기로 했다.

장 전무, 김 상무, 이 이사…. 우리는 서로를 퇴사 전 최종 직책으로 부른다. 옛날 사람들이 최 판서, 박 군수, 윤 초시 같은 최종 관직으로 평생 불렸듯이. 지금에야 아무 실익도 없는 호칭이지만 우리의 가장 치열하던 삶을 떠오르게 한다.

봄부터 계획한 차마고도 여행을 드디어 가게 됐다는 설렘도 잠시, 수속 직전에 모임의 ‘공동 막내’인 ‘전’이 결국 사고를 쳤다. 옛날 여권을 가져온 것이다. 현역 시절 러시아 지사에서 오래 근무했던 ‘전’은 남들은 하나뿐인 여권을 여러 개 갖고 있다보니 이 사달이 났다.

결국 ‘전’의 와이프가 새 여권을 챙겨 수원에서 인천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총알같이 달려온 덕분에 마감 2분 전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어찌나 걱정을 했던지 이륙 후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친구에게 “우짜겠노, 니도 마눌님도 깜빡깜빡 하는 나이인데. 비행기 탔으니 됐다마”라는 말로 위로했다.

중국의 끝자락인 윈난(雲南)성 리장(麗江)시로 향하는 직항 전세기에는 등산복 차림의 중·노년층이 가득했다. 한 달만 염색을 걸러도 머리가 새하얘지는 50대 중반의 내가 그중 가장 어린 축에 낄 정도였다. 여행의 설렘 때문인지 비행기 탑승 전이나 비행 중에도 시끌시끌해서 동승자들의 관계나 여정 등을 귀동냥하기도 했다. 어느 그룹은 중학교 동창 5명으로 이뤄졌다. 까까머리 10대 때의 인연이 중년까지 이어져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게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옛 상사와 山친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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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사냥꾼에 쫓겨 물속 바위를 징검다리 삼아 뛰어넘었다는 ‘호도협’.

밤늦은 시간에 참으로 아담한 리장국제공항에 도착, 작은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됐다. 밤은 깊었지만 소쩍새 우는 봄부터 반년을 기다려온 여정이라선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내공이 깊은 듯한 조선족 가이드 ‘영월 엄씨’를 윽박질러 호텔 옆 허름한 꼬치집을 찾아갔다. 메뉴에 있는 여러 꼬치 중 “적어도 이건 먹을 수 있겠다”고 의견을 모은 3종의 꼬치를 골라, 이름 모를 ‘배갈’과 더불어 세 번이나 추가해 먹었다. 싸고 맛있는 야참이었는데 사실 나는 ‘집만 나서면 뭐든지 맛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판단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임을 밝혀둔다.

둘째 날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됐다. 호도협은 뉴질랜드 밀포드 트렉, 페루 마추피추 잉카 트렉과 더불어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불린다. 호도협은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을 차지하는 옥룡설산(玉龍雪山)과 합파설산(哈巴雪山) 사이, 진사강(金沙江)이 흐르는 협곡을 말한다. 21년 직장생활 끝 무렵에 나는 ‘장강(長江)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는 글귀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는데 그 장강의 상류가 이 금사강이란다.

호도협(虎跳峽)의 유래도 재밌다. 계곡물이 워낙 세차 사람이 건널 수 없는데, 그 옛날 호랑이(虎)가 사냥꾼에 쫓겨 계곡물속에 있는 바위를 징검다리 삼아 뛰어(跳)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첫날부터 빡빡한 ‘678 스케줄(6시 모닝콜, 7시 식사, 8시 출발)’로 아침을 시작했다. 나시족(納西族) 운전기사의 운전 실력은 출중했으나 차가 워낙 낡아 모든 차종에 추월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시간 반을 달려 휴게소에 정차한 우리는 일단 화장실을 찾았다. 강렬한 냄새가 이끌었기 때문에 북적이는 속에서도 화장실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배설의 즐거움을 위해 무려 1위안을 내고 들어갔는데 맙소사!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그곳은 말로만 듣던 중국 전통 화장실, 앞이 뻥 뚫린 ‘개방형 변소’였다. 짧은 고민 끝에 나는, 대한남아의 기개를 발휘해 숨은 참고 눈은 부릅뜬 채 배변의 기쁨을 맛보았다.

다시 버스에 올라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옥련설산을 바라보며 1시간 반쯤을 달렸다.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가던 버스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냉각수를 보충하는 희한한 장면도 목격했다. 그 틈을 타 노점에서 커다란 대추를 사서 깨물었는데 모양만 대추일 뿐 맛은 도저히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 맛이었다.

교두진에 내려 앞이 빵처럼 생긴 5인승 승합차(일명 ‘빵차’)로 갈아타고 20분가량 꼬불꼬불한 산기슭을 올라가 해발 1950m의 일출소우에 도착했다. 현역 시절 방자했던 내 젊은 혈기를 감당해준 직장 상사였으며 이젠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산에서 함께 보내는 우리 야산회 멤버들은 가벼운 체조를 하면서 결기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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