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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읽는 우리 근대문학

임에게 포도주를 바치다

만해 한용운

  • 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임에게 포도주를 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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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은 누구인가. 만해 한용운이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노래한 후부터 임의 정체를 밝히려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자유를 잃은 조국, 사랑하는 이, 혹은 절대자 등. 정답은 없다. 만해는 종교에 귀의했지만 연애를 노래했고, 척박한 조선의 현실에 살면서도 임에게 포도주를 바치고자 했던, 거리낌 없는 자유의 시인이었다.
임에게 포도주를 바치다
“많으면 해가 되고 적으면 이로운 여덟 가지가 있다. 여행, 섹스, 부, 노동, 와인, 수면, 더운 목욕, 피 흘리는 싸움.”

서기 500년경의 기록인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한 구절이다. 자고로 무엇을 금기로 규정하거나 자제를 권고하는 것은, 그만큼 욕망이 크거나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세의 예절에 관한 책들에는 ‘나이프로 이를 쑤시지 말라.’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했다는 반증이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서 자제를 권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노동’과 ‘피 흘리는 싸움’의 경우에는 예외가 있겠지만, 나머지는 모두 사람이 열광하는 대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목록에 ‘와인’이 들어 있다는 점인데, 이는 오래전부터 서구인들에게 포도주가 탐식의 대상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포도주의 매혹

포도주의 역사는 구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홍수에서 세상을 구한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맨 먼저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수확해 술을 만들어 마셨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실증적으로는 기원전 350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용기 안에 포도주가 들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포도주는 서구인들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술이었다. 철학자 플라톤은 포도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인물로, 그는 “포도주가 인간에게 벌을 내리고 광란하게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영혼의 정숙, 건강, 심신의 강건함을 제공할 목적으로 주어진 값진 약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 또한 “신께서는 물을 만드셨지만, 인간은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말로 포도주를 예찬했다.

임에게 포도주를 바치다

국내에서 출간된 여러 종류의 시집 ‘님의 침묵’ .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포도주는 대중적인 술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혁명을 통해 일상적으로 물 대신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시민에게도 허용되었고, 산업혁명으로 노동계급이 늘면서 술 소비도 대폭 증가했다.

이에 발맞춰 포도주는 수많은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근대시의 개척자 보들레르는 ‘포도주의 혼’이라는 시에서 포도주를 인격화해 이렇게 노래했다.

“노동에 지친 한 사내의 목구멍 속으로/ 떨어져 내릴 때면 내 기쁨 한량없기에/ 그의 뜨거운 가슴 속은 정다운 무덤이 되어/ 내 써늘한 지하실보다 한결 더 아늑하기에.”

서양에서는 대중적인 술이었지만, 우리에게 포도주가 익숙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고종 때 서양의 포도주가 소개되었고, 1920년대 ‘동아일보’ 지면에서도 아카다마(赤玉) 포트와인 광고를 찾을 수 있지만, 포도주는 서민과는 거리가 먼 술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만해 한용운이 1926년 간행한 시집 ‘임의 침묵’에 포도주가 등장한다.

가을바람과 아침볕에 마치맞게 익은 향기로운 포도를 따서 술을 빚었습니다. 그 술 고이는 향기는 가을 하늘을 물들입니다.

님이여, 그 술을 연잎 잔에 가득히 부어서 님에게 드리겠습니다.

님이여, 떨리는 손을 거쳐서 타오르는 입술을 축이셔요.

님이여, 그 술은 한밤을 지나면 눈물이 됩니다.

아아 한밤을 지나면 포도주가 눈물이 되지마는, 또 한밤을 지나면 나의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됩니다. 오오 님이여.

-한용운, ‘포도주’

임에게 포도주를 바치다

1929년 8월 8일 동아일보에 실린 포트와인 광고.

본래 불가에서는 술을 멀리한다. 승려의 계율을 기록한 ‘사분율’에 따르면, 부처는 “여덟 가지 술을 마셔도 좋다. 취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 때나 마셔도 좋고 취했거든 마시지 말라. 오늘 받은 술은 내일에 먹지 말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마셔도 좋은데 취해서는 안 된다고 했으니, 사실은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술을 삼가거나 ‘곡차’라고 에둘러 말하는 것이 불가의 상례인데, 당대의 대표적인 승려였던 만해는 임에게 포도주를 가득 부어드리겠다고 노래한다.

의아한 점은 더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님의 침묵’이 발표된 1920년대는 포도주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은 시기였다. 당시 서민이 즐겨 마신 것은 막걸리와 소주였고, 맥주는 신세대라고 으스대던 이른바 ‘모던 보이’들이나 마시는 술이었다. 그러니 어려서는 한학을 공부했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출가해 평생 불가의 가르침을 실천했던 만해가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혹여 막걸리와 소주라면 모르겠으나 서양 문물과 만해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1928년 잡지 ‘별건곤’에 실린 글에서 그는 근검절약만이 조선인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밥도 잘 먹을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양식(洋食)이 무슨 양식이며, 행랑방도 없어서 동서로 쫓겨 다니는 사람이 반수 이상이나 되는데 양옥(洋屋)이 무슨 양옥이냐. 남이 비단옷을 입으면 우리는 무명옷을 입고, 남이 자동차를 타면 우리는 발로 걸어 다닌다 하여도 현재의 생활을 유지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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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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