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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삶의 우직함, 견고함에 대하여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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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차역의 낭만이란 둘러보는 이의 감상일 뿐이다.
  • 역무(驛務)는 시간과 공간에 얽매인 직업이다.
  • 철도원의 삶을 떠올리면서 숙연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전북 익산 춘포역

겨울 오후, 나는 지금 임피역에 앉아 있다.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아주 한참을 기다려야 철로 위로 무심히 기차가 지나가는데, 인적 없는 역사에 앉은 나는…. 아! 이렇게 쓰고 나니 그럴듯해 보이는데, 실은 역사 바깥에 커다란 개 네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시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들개는 아닐 텐데 그래도 바깥으로 나서기가 꺼려진다. 내가 이 작은 역에 도착할 때부터 역사 안팎을 뛰어다니던 녀석들은 이제는 아예 역사 앞 잔디밭 터줏대감처럼 군림하며 불청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골든리트리버를 꽤 오래 길러본 일이 있어 웬만한 대형견이라 해도 겁먹을 일은 없는데, 오가는 사람 거의 없이 극단적으로 조용하고 어두운 역사 앞을 지키고 선 네 마리의 대형견은, 선뜻 문 열고 나서기 어렵게 했다.

차라리 잘됐다, 그런 심정으로 역사 안에서 더 머물렀다. 벼르고 벼르다가 일부러 찾아온 곳이 아닌가. 군산이나 전주 쪽으로 일이 있을 때 꼭 한 번은 이 일대의 간이역을 둘러본다 했으나 기어코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다 새해 벽두에 강의가 있어 전주를 찾을 수 있었고 그 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몇 군데 작은 역들을 둘러보는 중이다. 역사 안에는 옛 시절의 기차 승객을 실물 크기로 세워놓은 조형물이 있는데, 조형적 판단을 떠나서 텅 비어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 고생 많이 해 생긴 주름살에 평범한 형상들이라 마음이 편했다. 나는 일부러 좀 더 앉아 있었다.

어릴 적 꿈

나는 결코 철도원처럼 살 수 없으리라

전북 군산시 임피역 인근 철도건널목.

아주 어릴 적, 나는 기관사가 되고 싶었다. 아홉 살 때, 서울로 온 가족이 다 올라오는 바람에, 내 유년의 기차역은 바로 그 나이 때의 경북 풍기역으로 일단 멈춰버렸지만, 기억의 저 희미한 터널 끄트머리에 유년의 내가 풍기역에서 끝도 없이 뻗어 있을 것만 같은 안동 방면의 기찻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할아버지의 기품 있고 의연한 걸음을 따라 풍기장에 들렀고, 역전에서 놀다가, 역사 안에서 놀다가, 틈을 봐서 기차가 섰다 떠나가는 곳까지 나갔다가, 다시 역사 안으로 돌아와 지쳐서 가만히 앉아 있던 희미한 기억들.

좀 더 커서는 강원도 함백역 일대가 기억의 창고를 채웠다. 탄광지대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첩첩한 곳의 가장 낮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역도 언덕 위에 있었고 레일도 저 높이 산간 허리를 뚫고 지나갔다. 탄광지대의 사촌동생들하고 한참 놀다 보면 갑자기 기적이 울리고, 저 산간 허리의 연속된 터널을 우람하게 관통하며 화차들이 거침없이 내달렸다. 순간, 멈춰 서서, 기관차에 줄줄이 매달려가는 화차의 수를 셌다. 하나 둘, 일곱 여덟…열넷 열다섯…. 그러다가 스물이 넘어가면 헷갈리기 시작하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일직선으로 첩첩의 산을 관통하는 화차의 행렬을 그저 경탄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인처럼 찍힌 이미지들 때문에 아! 기관사가 되어야지,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열차 기관사가 되기 위한 정식 코스로부터 탈선한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기차와 관련된 모든 직업이 낭만의 꿈으로 흐려져버리고 말았다. 멋진 제복을 입고 승차권에 구멍을 찍는 역장이 되고도 싶었고, 최인훈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선로 고치는 기사도 되고 싶었으나 실은 그러한 일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도 잘 몰랐고 그 일을 제대로 하려면 우직하고 견고한 심성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사춘기 시절로 되돌아가서 그 힘든 일을 전문적으로 맡아 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학교부터 진학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세월로 너무 많이 미끄러져 오고 말았다.

명예역장

그런데 2009년, 놀라온 정보를 들었다. 역장을 공모한다는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간이역의 명예역장을 뽑는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코레일은 무인역(직원을 배치하지 않는 간이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일반인에게 기차 문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전국 31개 무인역의 명예역장을 뽑는다고 했다. 당시 집계로 전국에 180여 개의 무인역이 있고 그중에서 문화재로 등록된 3개 무인역과 열차가 정차하는 28개 무인역 등 총 31개역을 선정해 명예역장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정말 비통하게도 정작 내가 그 정보를 접했을 때는 이미 공모 절차가 다 끝난 다음이었으니, 이런 운명의 장난이 또 어디 있으랴. 게다가 자격 조건도 ‘철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제한 없이 누구나 신청 가능’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당시 코레일은 철도동호회에서 열심히 활동한 사람, 해당 역 인근 주민, 퇴직한 철도 직원 등을 우대해 선발한다고 했는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시간 날 때마다 기차역 다니기를 밥 먹듯이 하고 경향 각지로 일을 보러 갈 때마다 인근의 기차역은 빠짐없이 들르는 데다 기차와 기차역 그리고 기차 일에 역무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글로 써왔으니, 이 정도면 영혼의 자격쯤은 갖췄다고 자부하는 터였으나, 하필 그 공모는 진즉에 끝난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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