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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풍경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묵직한 그리움에 떠오르는 얼굴들

박인희 ‘세월이 가면’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묵직한 그리움에 떠오르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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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마와 숙녀’ ‘얼굴’ 등을 쓴 시인 박인환은 서른 남짓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생머리를 곱게 묶고 나타난 가수 박인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박인희가 부른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을 들으며 사람들은 흘러간 사랑을 추억했다.
  • 이 노래를 들으면 일순간 마음이 따뜻해지는데, 그건 우리가 그만큼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묵직한 그리움에 떠오르는 얼굴들

‘길가에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 위에 어리는 얼굴’로 시작되는 노래 ‘끝이 없는 길’이 생각나는 쓸쓸한 겨울 풍경.

열아홉 시절, 지금의 수능시험 격인 예비고사를 앞두고 잠깐 가출을 했다. 무작정 서울로 가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둘기호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떠난 가출은 대전역에서 가락국수를 먹고 돌아오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해 11월은 몹시도 추웠다. 부실한 옷차림으로 낡은 열차의 창틈으로 들어오는 냉기에 몸서리를 치며 돌아오는 길, 나는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군인 아저씨의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노래를 듣게 된다.

“지금 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로 시작되는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이다. 양말을 신었는데 새끼발가락은 무척 시렸고 유리창에 비치는 얼굴조차 꽁꽁 얼었던 11월 중순의 깊은 밤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 노래가 그리 유명한지도 또 누가 부르는지도 몰랐다. 그저 이렇게 맑은 목소리가 있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만 가졌을 뿐.

대학에 들어갔다. 어려웠던 권위주의 시대, 대학은 진저리 나도록 싫었고 현실에서의 탈출 또는 일탈만을 꿈꾸던 철없던 그 시절, 여름 농촌 봉사활동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낙이자 젊음의 해방구였다. 그 시절 봉사활동은 대개 여러 대학이 합동으로 했다. 그래야 선남선녀들이 봉사활동 외에 그 무엇을 기대하지 않겠는가. 설렘과 뒷얘기에 가슴을 떨던 그런 시절이었다. 피임교육과 기생충 치료를 하는 의대생과 간호대생들이 주축이고 나를 비롯한 비(非)의대생들은 논길 넓히기 등 주로 몸으로 때우는 일을 맡았다.

함초롬한 이미지, 곱게 묶은 생머리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묵직한 그리움에 떠오르는 얼굴들

박인희

그런 여름 봉사활동의 피날레는 당연히 마지막 날 밤이다. 내일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청춘들이 열흘간의 만남을 끝으로 저마다 보따리를 싸서 고향으로 떠나게 된다. 금빛으로 빛나던 청춘의 한 시절, 이십대 초반의 젊음이 만난 만큼 아쉬움 또한 엄청났다.

마지막 밤의 캠프파이어로 아쉬움을 달랬다. 시골 국민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둥그렇게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워놓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져간 모닥불 같은 것….” 맞다 그랬다. 그때 우리들의 얘기는 밤하늘에 올라가 별이 됐고 중년이 된 지금 이 순간 곰곰 생각해보니 ‘인생은 말없이 사라져가는 모닥불 같다’는 노랫말이 새삼 실감난다.

‘세월이 가면’ ‘모닥불’ 두 노래는 모두 가수 박인희가 불렀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누구나 한 번쯤 보고 싶어 하는 그리움의 가수다. 함초롬한 이미지에 생머리를 곱게 묶은 그녀는 어느 순간 나타났다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서울행 발걸음을 딱 끊어 이제 그녀의 근황을 아는 사람조차 드물다. 미국 LA인근에서 방송 활동을 한다더라 정도의 소문만 흘러 들려올 뿐, 복고풍에 힘입어 웬만한 옛날 가수들이 TV에 다시 얼굴을 비추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국내 언론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가수 박인희의 출발은 ‘뚜아 에 무아’다.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그저 경복궁 옆 알리앙스 프랑세스나 남산의 괴테 하우스에 가서 이국 정서를 맛보던 시절, ‘뚜아 에 무아’라는, 당시로는 생경한 보컬 이름을 들고 나타난 그녀다. ‘뚜아 에 무아’는 불어로 ‘너와 나(Toi et Moi)’라는 뜻인데 영어가 아닌 불어로 팀명을 짓는다는 것부터 남달랐다. 아마 영어를 한수 아래쯤으로 보거나 아니면 그 시대를 풍미했던 샹송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그때는 사실 연애소설의 주인공으로도 불문과 여대생이 곧잘 등장했다. 1968년 가을 타이거스라는 록그룹의 리더로 활약하던 이필원과 당시 록음악의 메카였던 미도파 살롱의 인기 DJ이자 숙명여대 불문과 재학생이던 박인희가 만나서 결성했다. 우연히 함께 부른 에벌리 브라더스의 ‘렛 잇 비 미’를 계기로 듀엣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뚜아 에 무아’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포크 명곡을 남기며 젊은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초창기에는 ‘스카브로우의 추억’이나 ‘썸머 와인’등 번안곡을 주로 불렀으며 ‘그리운 사람끼리 두 손을 잡고/ 도란도란 얘기하며 걸어가는 길’로 시작되는 ‘그리운 사람끼리’를 비롯해 ‘약속’ ‘님이 오는 소리’ 등 맑은 노래를 적잖이 남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의 노래를 일컬어 ‘영혼에 호소하는 인간의 목소리가 전하는 가장 맑은 노래’라는 수식어를 선사했다. 그래서 지금도 유튜브에서 관련 단어를 치면 그들을 그리워하는 온갖 상찬과 노래가 빼곡하다. 어쩌면 이처럼 고운 노래를 깨끗한 목소리로 부를 수 있느냐는 글이 많다.

박인희의 진가는 천상의 화음이라던 듀엣이 깨지고 솔로로 독립한 뒤 더욱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세월이 가면’이 있다. 이 노래의 탄생 과정이나 의미, 파급 영향 등은 새삼 재론의 여지가 필요치 않을 정도다. 지금도 유튜브나 인터넷 공간에는 그녀에 대한 기성세대의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글이 엄청나게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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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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