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노래가 있는 풍경

첫 키스는 왜 골목길에서만 이뤄졌을까

김현식 ‘골목길’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첫 키스는 왜 골목길에서만 이뤄졌을까

2/2
김현식과 신촌블루스

첫 키스는 왜 골목길에서만 이뤄졌을까

신촌로터리에 위치한 어느 결혼식장. 한때 장안의 선남선녀가 몰려들었던, 딕패밀리가 운영했던 나이트클럽 ‘우산속’이 있던 자리다.

‘골목길’탄생에는 신촌블루스가 있다. 1986년 4월 신촌의 카페 ‘레드 제플린’에서 엄인호(기타·노래), 이정선(기타·하모니카·노래), 김현식(노래), 한영애(노래)가 신촌블루스를 결성했다. 이후 많은 보컬이 거쳐갔지만 김현식은 노래 ‘골목길’을 계기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데다 신촌에서 하숙 생활을 한 나는 지금도 실내장식이 엄청 기괴하고 퇴폐적 느낌이 풍겼던 술집 ‘레드 제플린’을 잊지 못한다. 지금의 명물골목 초입에 위치한 카페 ‘레드 제플린’은 ‘러시’와 함께 그 시절 히피의 아지트였다. 신촌 일대에서 카페나 소극장을 꾸려가던 낭만 히피들은 영업시간이 끝난 뒤인 새벽 2시쯤이면 ‘레드 제플린’에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맥주를 마셨으며 누군가는 구석에 숨어 대마초를 돌려가며 피우던 혼돈스러운 주점이었다. 아래층에는 ‘감격시대’라는 또 다른 주점이 있었고 옆에는 ‘미선옥’이라는 유명한 설렁탕집이 있었다.

그러나 ‘러시’외에 ‘크로스 아이’ ‘장밋빛 인생’ ‘판’ ‘레지스탕스’ ‘추바스코’ ‘섬’ ‘고박사 냉면’ 등등 1980년대 신촌을 주름잡았던 명소는 이제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 시절 신촌 일대를 방황하던 젊음이 또렷이 기억하는 글귀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지금은 없어진 카페 ‘섬’에 가면 볼 수 있었던 흰 광목천에 검은 묵필로 커다랗게 쓴 정현종의 시 ‘섬’이다.

1980년 문을 열어 자리를 서너 번 옮긴 끝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러시’는 그 시절 불량한(?) 대학생들이 가장 열광했던 록 카페였다. 엄동설한 러시에 몰려든 젊음들은 벽난로 가득 활활 타는 통나무 장작을 바라보며 떠나가는 청춘을 노래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연세춘추에 “신촌의 겨울은 러시 담 옆에 쌓여가는 장작더미에서 시작되며 그 장작이 사라질 때쯤이면 봄이 온 것을 안다”는 내용의 에세이를 기고한 적도 있다. 그런 술자리에서 가끔 전인권, 김현식, 남궁옥분, 정미조 등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뿐인가. 꽃다운 젊음에 세상을 떠난 기형도는 그 시절 신촌에서 곧잘 조우한 젊은 시인이었다. 신촌의 골목길은 그런 곳이다. 골목길 곳곳에는 숨은 술집이 있고 만화방이 있고‘장미여관’ ‘은하수 여관’이 있었다. 김현식의 ‘골목길’은 바로 그런 풍경을 고스란히 상상하게 해주는 마력을 지닌 노래다. 그의 노래에 등장하는 그 시절 신촌 골목길들은 이른바 1980년대 낭만 히피들의 ‘나와바리(영역)’였던 셈이다.

그래서 김현식, 신촌블루스의 무대는 신촌이 제격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응답하라 1994’도 ‘신촌 하숙’을 배경으로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의 서울 생활과 순정을 다루었다. 비록 김현식이 술로 외로움을 달래던 그 시절과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지만 1980년대 신촌의 풍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신촌은 신촌이다. 나도 그랬지만 신촌 하숙생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가까이 있는 이화여대생을 한번 꾀어보려는 음흉한 목적이 그것이다. 그러나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듯이 신촌 하숙집에는 이대생이 없었다. 그들은 여학생 전용 하숙집에 있거나 아니면 친척집에 기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386세대에게는 하숙집을 매개로 한 결혼도 많고 모임도 많다.

신촌구락부라는 모임도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쳐보면 “신촌 밤무대를 주름잡는 건달들의 모임”이라는 그럴듯한 설명이 나온다. 언뜻 들으면 무슨 조폭단체 같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1980년대 초입 대학 시절, 신촌 언덕배미, 같은 하숙방에서 나뒹굴던 나의 하숙집 친구들의 모임이다. 하기야 친구 부친상에 ‘신촌구락부’ 이름으로 조화를 보냈더니 그동안 괴롭히던 직장 상사가 “조직”의 일원인 줄 알고 놀라 고분고분해졌다는 실제 상황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름만 거창한, 하숙친구 모임일 뿐이다.

천박한 소비 문화의 각축장

요즘 세대에게는 생경하겠지만 하숙이란 말은 이 땅의 기성세대에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속옷 바꿔 입기는 보통이고, 고향에서 꿀이라도 올라오면 하루 밤 사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지금의 세대가 소·돼지고기를 칭하던 육군, 달걀과 닭고기를 칭하던 공군, 생선을 칭하던 해군의 속뜻을 알기나 하겠는가. 모두가 곤고했던 시대, 반찬으로 육군을 요구하다 하숙집 아줌마에게 손이 닳도록 살살 빌고 쫓겨나지 않은 하숙집 풍경은 이제는 빛바랜 전설이 된 지 오래다.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이 없어’ 방황하던 김현식 시대의 신촌은 가고 없고 지금의 신촌은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다. 한때 이 땅에서 ‘젊음의 거리’ 또는 ‘해방구’쯤으로 인정되던 신촌은 2000년대 이후 홍대입구에 밀려 완연히 사양길이다. 신촌시장 자리에는 현대백화점이 우뚝 서 있고 그 많던 하숙집도 대부분 사라졌다. 독수리다방, 일명 ‘독다방’은 2005년에 문을 닫았다가 지난해 1월 인테리어를 새롭게 바꾸고 다시 문을 열었다.

이른바 신촌 문화는 사라진 지 오래, 2000년대 이후 신촌은 더는 대학 문화가 숨 쉬는 공간이 아니다. 혼잡하고 몰개성한 거리로 천박한 소비문화의 천박한 각축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3050세대 ‘기쁜 우리 젊은 날’ 추억의 장소는 왜 항상 신촌이고 첫 키스는 왜 늘상 골목길에서만 이루어졌을까. 김현식의 노래에 그 답이 있다.

신동아 2014년 5월호

2/2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관련기사

목록 닫기

첫 키스는 왜 골목길에서만 이뤄졌을까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