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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문학을 넘어선 서구 문화의 원천

  • 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문학을 넘어선 서구 문화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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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넘어선 서구 문화의 원천

일리아스·오딧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트로이처럼 한 도시가 폐허가 되고 재탄생하는 과정을 아홉 차례나 거친 도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트로이 유적지는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그 뒤 어떤 역사학자도 수천 년 동안 신화와 전설로만 전해오던 트로이의 비밀을 풀지 못했다.

트로이 유적지의 비밀을 밝혀낸 것은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다. 그는 집요한 추적 끝에 1873년 마침내 유적지를 발굴했다. ‘일리아스’를 길라잡이로 사용한 슐리만은 오늘날 터키 북서쪽에 있는 히사를리크 마을 아래서 트로이를 발견한 것이다.

슐리만이 호메로스에 심취해 트로이 발굴에 나선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여덟 살 때 그의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루트비히 예러가 쓴 ‘아이들을 위한 세계사’라는 책을 사줬다. 어린 슐리만은 불타는 트로이 삽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아버지가 트로이의 몰락은 옛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슐리만은 믿지 않았다.

슐리만이 처음 호메로스의 시를 접한 것은 독일에서 말단직원으로 일할 때였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직원 하나가 호메로스의 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줄줄 암송했다. 난생처음 그리스어를 들은 슐리만은 뜨거운 눈물까지 흘렸다. 이후 그는 그리스어를 비롯한 외국어 공부에 열중해 영어, 라틴어 등 무려 15개 언어에 능통했다. 슐리만은 호메로스의 작품을 실증주의적 관점에 따라 신화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로 여겼다.

대조적 성격의 두 서사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문학 차원을 넘어 서구 문화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한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벌어지는 전사들의 무용담이나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오디세이아’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은 모험, 사랑과 방랑 등 파란만장한 여행담이다. ‘일리아스’는 ‘일리온(트로이)의 노래’란 뜻이고,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의미다.

‘일리아스’의 줄거리는 간단한 편이다. 그리스군 용사 아킬레우스는 자신을 무시하는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화가 나서 전투를 거부한 뒤, 여신인 어머니에게 부탁해 자기편이 지도록 일을 꾸민다. 그리스군은 한동안 아킬레우스 없이도 잘 싸우지만 끝내 위기에 처한다. 이를 보다못해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전투에 뛰어든다. 그는 잠깐 동안 큰 전공을 세우고 적을 격퇴하지만, 헥토르에게 죽고 만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친구를 죽인 헥토르에게 방향을 돌린다. 그는 신이 만든 새로운 무장을 하고 친구의 원수를 죽인다. 친구의 장례를 치르고도 화가 풀리지 않은 그는 날마다 헥토르의 시신을 학대하지만, 결국 신들의 중재로 시신을 돌려보낸다.

‘오디세이아’의 줄거리는 이렇다. ‘증오받는 자’라는 뜻을 지닌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려 항해에 나선다. 올림푸스의 신들이 결정한 그의 운명은 이름처럼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차 있다. 이타카 왕인 오디세우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왕비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자들이 궁전에 몰려들어 그의 재산을 탕진하며 오만방자하게 군다. 오디세우스는 항해 도중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혔다가 불에 달군 말뚝으로 외눈을 찌르고 가까스로 탈출한다. 요정 키르케의 마술에 걸려 일행이 모두 돼지로 변하는 위기도 겪고, 세이렌 자매가 사는 바위 옆도 지난다. 폴리페모스를 시각장애로 만든 것에 분노한 포세이돈은 풍랑을 일으켜 그를 요정 칼립소의 섬으로 가게 한다. 귀향을 위해 저승까지 찾아갔던 오디세우스는 이후에도 몇 번의 난파와 표류 등 죽을 고비를 넘긴다. 파이아케스인들의 스케리아 섬에서 나우시카 공주에게 구조돼 천신만고 끝에 고향 이타카 섬으로 돌아간다.

상상력의 보고

두 서사시 구성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만큼 적절하게 평한 사람도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는 ‘시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을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했고, 그 밖에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한다.” 실제로 ‘일리아스’는 9년 동안 일어난 일을 단 50일 동안의 사건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한다. ‘오디세이아’ 역시 20년 동안에 있었던 일을 단 40일로 압축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일리아스’의 구성은 단순한 반면, ‘오디세이아’는 복잡하다고 분석한다.

‘일리아스’는 모든 사건이 분노의 모티프(삽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오디세이아’는 여러 모티프가 복잡하게 얽혔다. 두 서사시를 비교하면서 ‘일리아스’는 비극적이고, ‘오디세이아’는 낭만적이라고 흔히들 얘기한다. ‘일리아스’가 인간의 조건을 보여주는 데 비해, ‘오디세이아’는 인간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제시한다는 견해도 있다. 어떤 이는 ‘일리아스’가 인간은 궁극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인 반면, ‘오디세이아’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에 괴로워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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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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