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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풍경

사라지는 모든 것을 생각하며 삼등열차 타고 떠나자

송창식 ‘고래사냥’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사라지는 모든 것을 생각하며 삼등열차 타고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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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사냥’은 퇴폐와 자학이 넘치던 안개 같은 시대에, 젊은이들의 좌절과 불안한 삶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타임지를 꽂고 다니던 그 시절의 청춘들을 들뜨게 한 국민가요다.
  •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외로움과 슬픔만이 가득 차는 올가을, 사라지는 모든 것을 생각하며 동해바다로 떠나볼까.
사라지는 모든 것을 생각하며 삼등열차 타고 떠나자

동해 바닷가를 옆에 끼고 나란히 난 철도와 국도에 기차와 트럭이 엇갈리며 달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차 노선이고 국도라고 한다.

“안인숙 예쁜 젖꼭지 본 사람, 손들어봐.”

까까머리 10대 시절 국어 시간, 선생님이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순간 교실 안엔 와~ 웃음이 터졌다. 잠시 후 선생님은 “아니, 소설은 입시 땜에 못 읽으니 영화라도 형님 옷 빌려 입고 봐야지”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랬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러 갔다가 학생 주임 선생에게 귓바퀴 잡힌 채 끌려 나오던 그 시절, 나는 영화 여주인공 안인숙의 중요 부위는 보질 못했지만, 선생님의 충격적인 말씀에 최인호의 소설 ‘별들의 고향’과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 ‘별들의 고향’이 그 시대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았다. 소설은 당연히 곧바로 읽었지만 영화는 극장에선 보지 못하고 스무 살이 넘어 어찌어찌해서 비디오로 본 기억이 남아 있다.

20대, 내가 가장 떨리는 가슴으로 읽은 소설은 역시 최인호의 ‘겨울 나그네’였다. 1984년 어느 일간지에 연재된 소설은 대학생이던 나와 주인공들의 세대가 맞물리면서 묘한 동질감을 안겨줬다. 우울했던 1980년대 중반 늦은 밤, 하숙집 길목 가판에 있던 신문을 사 들고 읽노라면 나의 고통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 흠뻑 빠져들었다. 살벌하던 시대, 휘둘린 청춘 남녀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그린 소설은 보도블록을 깨어 던지거나, 겁에 질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 시대와는 정말 무관한 얘기들.

하지만 사회면을 장식하던 핏빛 활자들을 보란 듯이 무시한 소설은 나를 현실과 전혀 다른 달콤한 세계로 밀어넣었다.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으로/ 남몰래 고민하던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함’도 소설을 읽는 순간만큼은 없었다. 초창기 최인호가 보여준 번득이는 감수성, 세련된 문체 등은 평범한 독자인 내가 보기에도 적합한 관형어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386세대의 삶의 일부가 됐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사로잡은 이른바 청년문화의 기수였다.

소설가 최인호의 유산

그러나 격동의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그리고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게 된 이후부터 나는 최인호의 문학에 깊은 절망을 느꼈고 그에 대한 열정은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프다고, 견딜 수 없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가끔은 우리와 같은 시대,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문학은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 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고 한다. 험악하던 시대, 현실의 모순을 문학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도 이해하지만, 시대의 아픔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의 글들이 몹시 서운했다. 그의 글을 열정적으로 읽으면서도 나는 점차 불편해져 갔다.

그래서 정작 지난해 이맘때 그가 세상을 떠난 순간에도 그의 작가적 이력을 긍정적으로 보기엔 맘이 내키지 않았다. 당시 모든 언론이 저마다 그와의 귀한 인연을 들이대며 상찬을 늘어놓았다. ‘한국문학의 큰 별’이니, ‘청년문화의 기수’니, ‘감수성의 천재’니 하면서 이른바 저명인사들이 앞다투어 쏟아내는 그에 대한 엄청난 찬양 속에 냉정한 비판의 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려웠던 시대, 함께 살아내지 못한 시대의 인물을 무작정 비난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죽음 앞에 일방적인 찬사를 쏟아내는 것은 부박하다. 한 시대를 같이 고민하고 풍미했다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러했듯이 나 또한 그를 무척 좋아했지만, 그러나 한순간도 그를 존경하지는 않았다고 나는 한 일간지 칼럼에다 작가 최인호를 냉정하게 몰아붙인 바 있다.

그럼에도 최인호가 이 땅의 386들에게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그는 이른바 197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유신 시절 ‘청년문화선언’(1974)에서 “전에는 침묵의 대중을 몇몇 엘리트들이 정의 내리며 주도하고 이끌었지만, 오늘날의 청년문화는 엘리트를 인정치 않는다. …오늘날의 청년문화는 침묵의 다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의 문화인 것이다”라며 기성세대가 청년문화를 저질·퇴폐로 몰아붙이는 데 반박하며 이른바 통기타·블루진·생맥주 문화를 옹호했다.

그가 주장하는 청년문화의 정점에 있는 노래가 ‘고래사냥’이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노래다. 노래는 곧 비슷한 성격의 청춘영화의 주제곡으로 삽입되면서 더욱 맹위를 떨치게 된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이다. 일간 스포츠에 연재된 최인호의 소설을 원작으로 요절한 하길종이 감독했다. 영화에는 ‘고래사냥’ ‘왜 불러’가 전편에 흐르면서 현실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발 심리를 대변했으며 김정호의 ‘날이 갈수록’이 그 시절 젊음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그렸다. 장발 단속, 음주문화, 미팅, 무기한 휴강, 입대 등 젊은이들의 풍속도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영화에서 노래는 이른바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고래사냥, 바보들의 행진

뭐라 딱히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퇴폐와 자학이 넘치던 안개 같은 시대였다. 1970년대 젊은이들의 좌절과 불안한 삶 등 상실감과 비애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노래 ‘고래사냥’은 그래서 국민가요쯤으로 여겨진다. 아직은 희소성이 있고 풋풋했던 대학가였다. 그래서 비록 지금은 존재감조차 희미해졌지만 당시 고연전의 막판에서는 모두가 악에 받쳐 고래고래 함께 부르던 청춘의 노래였다.

그러나 ‘고래사냥’이 ‘왜 불러’와 함께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단골로 불리자 공윤(공연예술윤리위원회)이 금지곡으로 판정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노래를 삽입한 영화 ‘바보들의 행진’ 또한 무려 다섯 차례의 검열을 통해 술집에서 병태가 일본인과 싸우는 장면, 경찰서에서 여자의 옷을 벗기는 장면, 데모 장면 등 30분 분량이 잘려나갔다(‘한국영화 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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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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