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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의 영화사회학

이순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명량’에 대한 몇 가지 시선

  • 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이순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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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영화 ‘명량’(김한민 감독·2014)은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돼 고문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자막이 흐른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했고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해 거의 궤멸됐다. 이순신은 전라우수영으로 돌아가 패잔병과 무기를 수습했다. 그는 나중에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했다.

이후 영화는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패잔병들을 이끌고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는 이순신의 고뇌를 보여준다. 이어 명량을 통과해 한양으로 진격하려는 왜군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 내용이 영화의 전반부다. 후반부는 한 시간 넘게 명량에서 벌어진 전투를 담아낸다.

영화에서 이순신이 다시 호출된 때는 조선수군이 전함과 군사를 거의 잃고 난 뒤였다. 지휘할 대상조차 변변히 없었다. 영화는 이런 최악 조건을 극도로 부각한다. 명백히 지금의 사회상을 스크린에 반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세월호 참사에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리더십이 무너졌다. 그러니 이순신이 어떻게 하는지 보라”라고 말하는 셈이다.

박정희의 시각으로 본 이순신

이순신을 다룬 다른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는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호출됐을까. 이순신과 관련된 영화는 1962년 영화 ‘성웅 이순신’(유현목 감독)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이순신을 국가 통합과 발전의 아이콘으로 제시했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웠다. 이때부터 이순신은 국민의 인식 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이순신 관련 영화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직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점은 이런 사회적 배경과 연결해 풀이될 수 있다.

1971년 같은 제목의 영화 ‘성웅 이순신’이 이규웅 감독의 연출로 제작됐다. 이 영화에서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는 김진규였다. 그는 1977년 ‘난중일기’라는 영화에서도 다시 이순신을 연기했다. ‘명량’을 관람한 40~50대 관객은 학창 시절 학생단체관람으로 이 ‘난중일기’를 봤을 것이다. ‘난중일기’는 당시로선 대작으로 불린 영화였다. 그러나 학생단체관람과 같이 많은 관객을 동원했음에도 수익이 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와 별개로 1970년대 초 KBS에선 ‘난중일기’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다.

1970년대 이렇게 영화와 드라마가 이순신을 다룬 것도 박정희 정권이 이순신 띄우기에 나선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순신은 실존인물이면서 연전연승의 전설, 굴곡이 있는 삶, 장렬한 최후 같은 드라마적 요소를 갖췄다. 난중일기가 전해져오는 등 이야기로 풀어낼 거리도 풍부하다. 또한 이순신은 반일 민족감정에 호소하며 귀감이 될 만한 도덕적 성품도 지녔다. 한마디로 상당수 한국인이 매료될 수밖에 없는 흥행 요소를 고루 갖춘 인물이다.

따라서 1970년대 유신 시절 이순신은 독재정권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대중문화의 총아로 등장한 영화와 텔레비전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라도 동원될 필요성이 있었다. 이 시기 이순신 영화와 드라마는 실제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MBC는 1985년 10월 14일부터 이듬해 4월 15일까지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의 다섯 번째 편으로 ‘임진왜란’을 총 54회에 걸쳐 방영했다. ‘임진왜란’ 시리즈에서 이순신은 자세히 다뤄졌다. 이를 빼면 1980~90년대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이순신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이는 이 시기에 한국 사회가 민주화로 접어들기 시작한 점과 관계가 있다.

당시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는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던 시기에 만들지 못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일제강점, 좌우 이념대립, 베트남전쟁, 군부독재, 민주화운동 등)을 조명하는 데에 주력했다. ‘여명의 눈동자’ ‘장군의 아들’ ‘지리산’ ‘남부군’ ‘태백산맥’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하얀 전쟁’ ‘모래시계’ ‘꽃잎’ ‘박하사탕’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1980~90년대 작품은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아니라 억압을 겪으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역사의 격랑을 견디는 민초에 주목했다. 당시 가장 눈에 띈 사극 영화인 ‘씨받이’는 권력과 유교 관습에 억압된 평범한 여성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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