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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취재

“나 오빠로 돌아갈래!”

중년남 그루밍族 ‘회춘 바람’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나 오빠로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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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남성화장품 시장 규모가 1조3000억 원을 넘어섰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모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20~30대 그루밍족이 확산되더니 이젠 40~50대에서도 ‘아저씨’로 불리길 거부하는 ‘노무(No More Uncle)족’이 급증하면서 화장품 시장, 피부마사지숍, 피부과의 큰손이 됐다. 이들은 왜 얼굴에, 피부에 그토록 집착할까.
“나 오빠로 돌아갈래!”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의 한 음식점. 40대 후반 남성 10여 명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1년에 한두 번 모이는 대학동창들이라고 했다. 누군가 “그사이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자 직장인 유재호(47) 씨가 기다렸다는 듯 “관리 좀 받았지” 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내 대화 주제가 피부 관리로 모아졌다. ‘○○화장품을 써보니 좋더라’ ‘△△피부과를 다녔는데 비용 대비 효과가 만점이었다’는 체험기에서 ‘□□피부마사지숍 여직원 손길이 부드럽더라’는 내밀한 정보까지 얘깃거리가 쏟아졌다. 대화 중간중간 성형외과 전문용어와 복잡한 화장품 제품명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매일 수분에센스, 아이크림, 선블록 크림을 챙겨 바른다는 유 씨는 이틀에 한 번은 모공수축용 클렌징 화장품으로 세안하는 것은 물론 정기적으로 피부관리실도 찾는다고 했다. 그는 “피부가 좋지 않아 사람들을 만날 때 나도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이 들곤 했다. 피부가 좋아졌다는 느낌이 든 후로는 자신감이 생긴 게 사실”이라며 “젊을 때 얼굴이 부모님께서 주신 거라면 40대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중년 이후 삶의 질을 드러내는 첫 번째 지표가 얼굴 피부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11년 전인 2003년,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당시 서울대 교수(현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남자들도 화장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대부분의 동물은 짝짓기 결정권이 암컷에게 있어 수컷들은 본능적으로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하게 치장한다. 반면 인간은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치장하는데, 이는 경제권이 대개 남성에게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나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제 인간들도 남성이 여성의 ‘간택’을 받기 위해 화장을 하게 되리라는 설명이었다.

평균 4.6개 화장품 사용

40대 이상 중년이라면 남자 모델이 화장법에 대해 설명하는 TV 광고를 보며 “뭐라는 거야” 하며 화를 내는 화장품 광고에 공감했을 것이다. 다소 각진 턱에 검게 그을린 피부, 무심함과 터프함을 남성미의 상징으로 여기던 이들 세대에게 이것저것 복잡하게 발라야 하는 화장은 ‘귀찮음’ 그 자체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최 교수의 예언처럼 화장하는 남자가 급격히 늘었다. 20~30대를 중심으로 외모를 가꾸는 데 돈과 관심을 아낌없이 쏟는 ‘그루밍족’이 확산되더니 40대 이상 중년에서도 ‘아저씨’라 불리기를 거부하며 적극적으로 외모 관리에 신경을 쓰는 ‘꽃중년’ ‘노무족(No More Uncle)’이 늘고 있다. 이들은 화장품 시장, 피부관리숍, 피부과에서 ‘큰손’으로 대접받는다.

아모레퍼시픽이 발표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40대 남성의 외모에 대한 관심도가 30대보다도 높았다. 또한 화장품을 구매하는 40대의 경우 평균 4.6개의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스킨과 로션은 기본이고 폼클렌징, 자외선차단제, 에센스를 사용하는 비율도 높았다. 웬만한 여성만큼 화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중년 남자들이 왜 뒤늦게 화장에 빠진 것일까.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 홍보팀 신보미 씨는 그 이유가 “외모로 인해 불쾌감을 주지 않음으로써 원활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매너, 그리고 몸의 노화로 인한 신체 변화를 감지하고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기를 원하는 욕구”라고 분석했다.

화장품 매장에서 만난 한 주부는 “남편이 40대 후반인데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피부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엔 그렇게 사다줘도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이제는 팩도 사달라고 조른다”고 했다.

‘제2 사춘기’의 선택

다른 화장품 매장에서 만난 이모(45) 씨는 “전에는 얼굴에 별 신경을 안 썼는데 마흔 살이 넘어가니까 ‘얼굴색이 검다’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침마다 오늘 만날 사람들한테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여 관리를 안 할 수 없다. 업무 능력 못지않게 남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장 직원과 한참 동안 진지한 표정으로 상담하더니 제품을 구매했다.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다. 그동안 먹고살기 바빠 외모에 관심 없던 중년도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화장대 앞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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