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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물들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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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물들

시인의 사물들
강정 외, 허정 사진, 한겨레출판

어릴 때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배웠다. 나 또한 그런 줄 알았다. 동식물이나 물건으로 태어나지 않고 걷고 뛰고 말하고 노래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말을 의심하게 됐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네가 우리보다 낫구나’‘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탁월하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인간은 살아가는 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됐다. 문명사회의 인간은 그 어떤 생물보다도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사용하고, 파괴하지만 그 어떤 생물과도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됐다.

천차만별의 음식물은 물론 옷과 집까지, 모두 세상을 떠날 때는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동식물은 다르다. 동물은 태어날 때나 세상을 떠날 때나 옷도 집도 세간도 필요 없다. 식물은 더욱 몸이 가볍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햇빛만으로도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낸다. 사물들은 더더욱 강인한 체력으로 시간의 강력한 하중을 견뎌낸다. 바위들은 수천수만 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의 습격을 이겨내며 고요히 그 자리를 지킨다.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보석 또한 인간이 제멋대로 매기는 가격은 매일매일 바뀔지라도 이에 아랑곳 않고 영겁의 세월 동안 저만의 빛깔을 뿜어낸다.

하지만 사물이 지닌 진짜 매력은 단지 그들이 시간의 풍화작용을 인간보다 잘 이겨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사물의 매력은 ‘사물과 인간의 관계맺음’에서 우러나온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통해서 사물의 통역 불가능한 목소리를 제한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다.

‘시인의 사물들’은 사물을 바라보고 만지고 음미하며 사물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시인의 합창을 담았다. 시인은 속삭인다. “사물은 인간의 감옥에 갇힌 수인들”이라고. 하지만 시인은 아무런 죄 없이 인간의 처분에 내맡겨진 사물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침묵을 아름다운 언어로 번역해내는 세계의 영매가 된다. 시인은 침대 하나에서 “우리의 정신을 옮기는 네 다리의 상징물”을 보고, 오래된 타자기에서 “창작의 산고를 겪은 동반자”의 얼굴을 본다.



침대는 안락에서 불안으로 불안에서 안락으로 우리의 정신을 옮기는 네 다리의 상징물이다. 어떤 사람은 거기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을 나누며 어떤 사람은 잠을 자기도 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그들 모두는 안락과 불안 사이를 오가며 이계의 짐승 등에 올라탄 듯한 멀미를 느낀다.

-‘시인의 사물들’ 중에서

소유하지만 멀어진다

사람들이 사물을 구입하고, 소비하고, 무심결에 지나치고, 별 뜻 없이 괴롭히는 동안, 시인은 사물에 깊이 침잠한 영혼의 속삭임을 들으려 안간힘을 쓴다. 현대인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물을 소유하지만 사물과 교감하는 일에는 점점 무력해져간다. 하지만 시인은 그 무력함에 반기를 든다.

때로는 사물이 그 사람의 캐릭터를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그 사람이 애용하는 물건을 통해 그 사람의 별명을 만들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내 별명은 ‘수도꼭지’였다. 조금이라도 상처가 되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수도꼭지에서 수돗물이 콸콸 흘러나오듯 자동적으로 펑펑 울어버리는 성격 탓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차라리 눈물을 흘리고 싶은 순간에도 좀처럼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메말라버린 내 수도꼭지는 슬픔을 표현하는 통로를 잃어버렸다. 가끔은 아무리 참으려 해도 콸콸 눈물이 쏟아지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우리는 사물을 소유한다. 하지만 때로는 사물이 우리를 소유한다. 휴대전화가 바로 그렇다. 휴대전화를 들고 나오지 않거나 배터리가 떨어지거나 잘 터지지 않으면 우리는 별안간 심각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휴대전화는 목줄이 되어 우리의 자유를 감시하고, 노동의 채찍질이 되어 쉬는 날도 쉴새없이 업무를 보게 만든다.

인간은 사물을 소유하지만, 사물이 인간을 소유하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소유는 참으로 나약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우스푸어가 되어 ‘집’이라 불리는 거대한 등짐을 진 채 빚을 갚으며 살아가는 현대인은 ‘집’이라는 사물에 포획돼버린다. 사물에 집착하고 의존하는 순간, 사물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받으려 하는 순간, 우리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이 표현하는 환상적 가치의 그물에 포획당한다. 하지만 어떤 사물은 매우 행복하게, 매우 조화롭게 그 사물의 주인과 따스한 네트워크를 맺는다.



내 어릴 적 별명은 국숫집 막내아들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내 몸도 국수처럼 가늘고 길었다. 학교에서 별명도 국수였다. 난 그렇게 불리는 게 싫었다. 그러나 나는 국수를 사랑했다. 형들은 국수를 가난의 상징처럼 여겼지만 나는 국수가 말라가는 마당에서 보는 파란 하늘을 미친 듯이 좋아했다. 그래서 절대로 국수를 싫어할 수 없었다. 마당에서 국수가 흔들리며 마르는 동안 나는 그 밑에서 졸았고 그 밑에서 키가 컸다. 어쩌면 생각도 키만큼 자라지 않았을까 싶다.

-‘시인의 사물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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