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신세계’와 인천 연안부두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입력2014-10-21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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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 창간 83주년을 맞아 영화평론가 오동진 씨가 화제의 영화 촬영지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한다. 단순히 장소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 깃든 역사, 문화, 시대상과 인간 군상을 그리고 우리 사회의 내면을 성찰한다. 영화전문지 ‘필름 2.0’ 편집위원과 ‘씨네버스’ 편집장을 지낸 오씨는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마리 끌레르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편집자>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영화 ‘신세계’에서 이자성(이정재)이 인천 연안부두를 바라보고 있다.

    영화 ‘신세계’의 제목이 왜 ‘신세계’인지,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영화 속에서 경찰청장쯤 되는 사람 간부인 두 사람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이번 작전명은 뭐가 되는 거야?” 그의 앞에는 정복을 입은 한 사람이 앉아 있고 그렇지 않은 또 한 사람은 비스듬히,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 강 과장(최민식)은 이 모든 음모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대개 입을 다물고 있고 신나게 떠드는 쪽은 정복을 입은 고 국장(주진모)이다. 고 국장이 청장의 말을 바로 되받아친다.

    “신세계! 신세곕니다!”

    그 말을 막상 입 밖에 내는 순간, 세 사람 모두 씁쓸한 표정이 된다. ‘신세계’라니. 어쩌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소리다. 그들이 만들려는 세상이 분명 신세계이긴 하다. 그러나 그 신세계를 만들려는 방식이 ‘신세계스럽지’ 않다. 선을 행할 때 악을 차용하면 그 선은 결국 선인가, 아니면 악인가.

    그 장면 하나만으로 영화 ‘신세계’는 지금의 모든 세상사와 자기 동일화를 이룬다. 대개 좋은 영화의 이야기는 특별하게 시작하지만 결국은 보편성을 띠는 쪽으로 흐른다. 특수는 일반이 되고 일반은 특수가 된다. 그 반대도 된다. 카를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처절한 진실



    영화 ‘신세계’의 도입부는 한 남자의 발가락을 해머로 짓이기는 극악한 폭력성으로 시작되지만 곧이어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한 남자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조직에서 3인자로 성장한 이자성(이정재)은 멀끔한 양복 차림으로 인천 연안부두 저 너머를 응시한다. 그는 곧 담배를 한 대 물고,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광풍이 불고 있을 터다. ‘원래 이러려고 이런 것은 아닌데….’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인천 연안부두는 국내 최초 개항지지만 어쩐지 덩그라니 내던져진 느낌이 든다.

    이자성의 실체는 한국 최대의 마피아 조직 ‘골드문’에 침투한 언더커버(undercover), 즉 비밀경찰이다. 이제 사람 하나를 막 죽인, 혹은 부하들이 죽이는 모습을 지켜본 이자성은 쓸쓸함과 처연함, 회한의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그는 오늘 집에 들어가서 만삭의 아내 품에서 잠을 이룰 수 있을까. 자신이 잠을 못 이루면 착한 아내도 그럴 것이다. 아내 때문에라도 이 지옥을 털어내고 가야 한다. 그는 말없이 등을 보인다.

    영화 ‘신세계’를 곰곰이 복기하면, 역설적으로 토마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론’이 떠오른다. 피케티는 일갈한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소수 부유층에게 부가 집중돼 분배 구조가 악화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또한 자본주의에서는 노동 소득보다 자본 소득, 곧 부의 세습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한다고.

    한마디로 있는 자가 더 많은 돈을 갖게 된다는 얘기인데,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주변을 둘러보면 단박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은 원래 돈이 돈을 만들지 노력, 저축, 성실이나 정직 따위가 만들지 않는다. 돈은 ‘원래 버는 놈’이 버는 것이다.

    그래서 ‘신세계’의 주인공들은 그 ‘버는 놈들’에게서 돈을 탈취하는 방식을 택한다. ‘버는 놈들’에게 기생하면서 사는 제도권의 공복은 살아남기 위해 ‘버는 놈들’만큼 악랄하고 용의주도해져야 한다. 속고 속이는 게임에 능해져야 한다. 이쯤 되면 여기엔 룰이 없다. 이 아수라장에서 유일한 정의, 그리고 선(善)이란 그 누구도 믿지 말고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 곧 패밀리를 지켜내는 것뿐이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제도와 법이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사적인 이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그건 그야말로 처절한 성찰이다. 영화 ‘신세계’는 마피아의 피가 튀기고 살점이 뜯겨나가는 폭력 얘기를 그리는 척, 사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진실을 우회적으로 그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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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신세계’ 주요 촬영지인 인천 연안부두. 사방에는 컨테이너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익숙한 타인’ 같은 연안부두

    모두 여덟 개의 부두로 구성돼 있는 인천 연안부두는 사실상 관광지로서의 위상을 갖지 못한다. 어쩌면 인천 바다가 그렇다. 국내 최초의 개항지이지만 이곳은 기이하게도 버려지고 낙후된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 사진기자와 함께 연안부두에 다다랐을 때는 해가 중천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사방에는 컨테이너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땡볕 아래 두 사람 역시 덩그러니 내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여기 어디쯤, 어느 컨테이너의 숲쯤에서 영화 ‘신세계’의 도륙 장면을 찍었겠지만 그 악의 근원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낯설고 비현실적인 공간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현실의 현실성. 현실은 원래 가공된 것이며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현실인 상황. 연안부두는 익숙한 타인처럼 사람들을 감싸는 곳이다.

    연안부두의 정식 명칭은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이다. 이른바 서해 5도(백령도, 연평도, 대청도,소청도, 우도)라 불리는 섬들, 그리고 그 유명한 실미도나 덕적도, 굴업도 같은 옹진군에 널려 있는 섬들을 가려면 이곳에서 배를 타야 한다. 예컨대 단 일곱 가구만이 살아가는 무인도 같은 섬, 굴업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세상에 그만한 절경이 없다고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뱃길이 쉽사리 열리지 않아 수시로 드나들 만한 곳은 아니라고 한다.

    옹진군의 섬들은 그러니까, 너무나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데 그녀와 ‘만리장성’을 쌓지 못한 남자들이 자신의 허접스러운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남성들의 진부한 변명이 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가 끊겼네? 오빠 믿지?” 마음속에서 희멀건 웃음이 기어 나온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은 영화 ‘신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믹한 장면을 연출한 곳이다. 이곳을 통해 ‘옌볜 거지’들이 입국하는데, 그 모습이 그리도 우스꽝스러울 수가 없다. 거지들의 대장(김병옥)은 따라오는 두 사람(우정국, 박인수)을 향해 연신 소리를 지른다. “두리번게리지 말라우야. 사람들이 다 쳐다보지 않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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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열한 일상, 전쟁 같은 삶

    똘마니 둘은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분내를 풍기는 하얀 얼굴의 한국 여성들을 향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침을 흘린다. 그러나 대장이라는 자 역시 여성용 선글라스를 끼고,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깔맞춤’이어서 튀는 모습이기는 매한가지다. 더럽고 냄새나는 이들은 이후 영화 속에서 가장 극악한 살인극을 벌인다. 특히 이자성을 돕는 또 다른 언더커버 여자경찰(송지효)을 죽일 때 살벌한 활약을 펼친다. 거의 벌거벗은 상태로 결박당하고 입에 재갈이 물린 이 여자는 이미 온몸이 피와 땀, 오물투성이다. 조직의 2인자이자 이자성과 같은 화교 출신으로, 피보다 더 진한 형제애를 지켜 온 정청(황정민)은 거지들에게 이제 그만 그녀를 없애버리라고 말한다. 거지 대장은 바지춤에서 인간 도륙에 쓰는 칼을 뽑아 들며 그녀에게 다가선다.

    “내레, 저 쌍년을, 제발 이제 그만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갔어.”

    대낮의 여객터미널, 그리고 연안부두는 아직 인적이 뜸해선지 적막하기 그지없다. 연평도해전, NLL, 그리고 남북한의 꽃게잡이…. 어부와 병사가 같이 살아가는 이곳에서는 이런 갈등에 대해 오히려 입을 다물어야 한다. ‘살아가는 건 전쟁터에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은 정작 이런 곳에서나 어울리는 말이다. 그만큼 이곳에는 일상의 치열함이 내재한다. 그래도 밤이 되면 연안부두의 횟집들이 불야성을 이룰 것이다. 술과 질펀한 농담, 비틀거리는 인생살이에 대한 하소연이 이어지겠지.

    인천 연안부두를 전경으로 바라보고 싶으면 월미도 공원 내에 있는 월미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물범카’라 불리는, 바다에서라면 마치 통통배 같은 느낌의 다소 치기 어린 놀이공원 차를 타고 2~3분만 가면 된다. 모든 사물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비루함이 싹 걷힌다. 인천 연안부두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꽤나 광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갈한 차림의 큰 밥상처럼 아주 잘 정비돼 있는, 말 그대로 제대로 된 한 나라의 입항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 모습을 갖추기 위해 사람들은 악다구니로 살아왔을 것이다. 늘 그렇지만 인생의 진정성은 그 악다구니에서 나온다. 전쟁 때는 상륙작전이 벌어졌을 터이다. 이제는 그 상흔을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 아이들은 ‘이곳’이 ‘그곳’이라는 것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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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비현실성, 비현실의 현실성

    정청과 이자성은 6년 전 여수에서 만났다. 그들은 숱하게 단신으로 지역 깡패들과 싸워내며 입지를 다졌다. 정청은 이자성이 경찰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정청은 죽기 전까지도 이자성을 믿고 그를 버리지 않는다. 자신과 함께 밑바닥 생활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아주 속된 말을 한번 하자면 사람들은 자신이 ‘X밥’이었을 때를 알아야 한다. 정청은 이자성이 자신이 그랬을 때 같이 있어준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 앞에서 늘 이자성을 이렇게 부른다. “어이, 부라더~”

    온몸에 칼을 맞고 중환자실에서 죽기 전 정청은 모든 사실을 알지만 모든 사실을 덮으려 한다. 그는 이자성에게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너, 천만 분의 하나라도 내가 살아나면 감당할 수 있겄냐?” 그리고 그는 둘만이 통하는 중국어로 속삭이듯 삶을 정리한다.

    “마음 독하게 먹어. 그래야 네가 살아….”

    영화 속에서는 늘, 깡패들의 우정이 빛을 발한다. 그건 매우 극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저런 의리는 없다.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나마 우정과 형제애, 의리를 느끼고 싶어 한다. 현실에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현실의 비현실성, 비현실의 현실성이다.

    정청과 이자성이 영화 속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음식점을 통째로 빌려 부하들과 회식을 하는 장면으로 그려진다. 마침 이자성의 아내가 아이를 가진 때다. 정청은 마치 자신이 곧 아빠가 되는 양 으스댄다. 패밀리에게는 자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정이 넘쳐나면 음식도 맛있어 보인다. 먹고 싶게 만든다. 정청은 아주 맛깔스럽게 배갈(고량주)을 마신다. 이자성은 자신의 성격 그대로 조용히, 그러나 그도 여지없이 원 샷이다. 술은 저렇게 마시는 게 좋다.

    ‘신세계’의 차이나타운 장면은 사실 인천에서 찍지 않았다. 그건 부산에서 찍었다. 그러나 영화의 느낌으로는 영락없이 인천의 연안부두 근방 차이나타운이다. 그들은 합법을 가장한 채 온갖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면서 서울 강남에 으리으리한 빌딩을 소유하고 있지만 대체로 일은 이곳 인천 연안부두에서 벌인다. 정청이 여자 언더커버를 죽이기 전, 이자성에게 전화를 해 인천 연안부두 ‘그곳’으로 오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청과 통화를 하던 이자성은 불길한 표정으로 말한다. “거긴 왜요?”

    연안부두의 땡볕을 피할 요량으로 살살 차를 몰아 도착한 차이나타운은 영화와 같은 어두운 느낌은 전혀 주지 않는다. 중국 특유의 화려한 색감의 음식점이 즐비하다. 이곳저곳에서 월병을 파는데, 중국 공안이 이곳에 오면 그 월병 하나하나를 까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는 월병에 돈을 넣어 선물한다고들 했다. 영화 속에서 정청이 강 과장에게 뇌물을 줄 때도 그런 방법을 쓴다. 문득 내가 산 월병 속에 돈이 들어 있으면 좋겠다는 환상 아닌 환상을 갖는다. 월병이 돈이 되는 세상. 그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강 과장(최민식)과 이자성(이정재)이 접선하던 낚시터. 인천 제물포시장 인근의 허름한 건물이다.

    역사의 수치를 마주하는 방법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유명한 중국집이 많다. 공화춘이 그렇고 태화루가 그렇다.휴일이 되면 유명한 중국집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맛은 맛이 아니라 유명세가 만든다. 어차피 짜장면은 후루룩 마시듯 먹는 것이다. 특별할 것은 없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뭔가 색다른 맛을 느끼고 싶다면 짜장면 대신 백짬뽕을 먹는 것도 좋다.

    중구청을 마주하고 왼쪽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나와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기막힌 모습의 적산가옥들을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식민 수탈의 현장이 정녕 이곳에서 시작됐겠구나 하는 역사적 자각이 드는 한편, 그래도 그렇게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이 매우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저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판단을 잠시 미루면 역사의 수치는 때론 보존돼야 한다는 논리가 생겨나게 된다.

    이제는 깔끔한 느낌의 찻집 겸 팥빙수 집으로 변모한 ‘팥알’같은 곳을 보면 바로 그렇게 된다. 절대로 식민주의 사관을 옹호하지 않지만, 100여 년 전에 지어진 일본 사람들의 가옥 양식이 꽤나 그럴듯하다는 인상을 준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인들, 특히 바다를 끼고 해운업을 했던 자들은 오로지 자국의 경제를 부흥하고자 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여기가 엄청난 이문이 남는 곳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을 숭앙해서는 결코 안 된다. 다만 기억해야 할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식민주의 경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사회과학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흔히 ‘나가사키 카스텔라’를 먹은 사진을 자랑스레 블로그에 올리는 데 그치는‘몰역사적 의식’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역사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공간을 통해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잊은 듯하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된다

    영화 때문에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사실 천편일륜적인 관광지를 벗어나, 오로지 영화의 장소만을 가보는 것이 진짜 맛이다. ‘신세계’에서는 강 과장과 이자성이 주로 접선하는, 이미 폐허가 된 실내 낚시터가 하나 나온다. 물고기는 전혀 없을 만한 곳이다. 오히려 온갖 오물과 벌레가 스멀거리고 있을 것 같다.

    그건 세트였을까, 아니면 진짜 현장이었을까. 놀라운 것은 실제로 그 낚시터가 있다는 것이다. 인천광역시 남구 숭의동 26-1이 그 주소지다. 제물포시장 근처로 재건축 대상의 건물군이지만 재건축의 흥조차 사라진 곳이다. 근방의 제물포시장도 이미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일종의 빛바랜 ‘올드타운’의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그곳에서야 오히려 더욱더 영화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엔가 이곳에서 얻게 되는 지금의 느낌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영화 ‘신세계’가 담아낸 이상 사라진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한 번 비현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그런 것이다. 영화는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을 순간순간 잡아내고 포착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종종 세상을 영화로 기억한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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