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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그를 조금 더 닮을 수 있다면

  •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겸 의료원장

그를 조금 더 닮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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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과 전문의이지만 특이하게도 의학박사 학위를 의사학(醫史學, Medical History)으로 받았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내가 학위 과정에 들어가던 당시만 해도) 의과대학에서 유일하게 인문학과 맞닿은 것이 의사학이었기 때문이다. 내 박사학위 연구 주제는 광복 이후 1950년대와 60년대 우리나라 의료와 의학의 역사다. 특히 6·25전쟁 이후 폐허가 된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어떻게 극적으로 우리나라 의학교육과 의료체계를 바꾸게 됐는지를 연구했다. 덕분에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1년이 넘는 기간에 늘 50년 전의 시대 상황에 젖어 있었다.

연구실 삼아 임시로 얻어놓은 오피스텔에서 자료를 뒤적이다 잠깐 잠이 들면 1954년 여름의 마로니에 거리를 거닐거나 이듬해 여의도 공항에서 노스웨스트항공 비행기를 타고 미국 연수를 떠나는 장면을 꿈꾸곤 했다. 나는 내 연구 논문에 나오는 인물들이 되어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돌아가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6·25전쟁 직후의 시대 상황을 상상 체험할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듬해인 2007년 3월, 나는 30여 명의 의료진과 함께 처음으로 네팔 의료봉사를 떠났다. 내가 운영하던 인천사랑병원 식구들과 오랜 기간 같이 활동했던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회원들과 함께 대규모 의료봉사단을 꾸린 것이다. 비행기가 카트만두 상공에 진입하는 순간, 나는 운명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왜 네팔에 오려 했는지! 창밖으로 보이는 잿빛 뿌연 공기 사이로 드러나는 회색 건물들과 풍광, 흙먼지 가득한 지저분한 거리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우리가 찾아간 마을의 시꺼먼 물이 흐르는 개천과 그 주변의 판자촌도 너무나 익숙했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 꿈속에서 보던 그 장면들이었다. 나는 비행기가 아니라 진짜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네팔이라는 나라는 50여 년 전의 우리나라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바누사랑진료소

네팔은 2800만 명의 인구에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아시아 최빈국의 하나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1년에 걸친 내전을 치르면서 1만4000명이 사망했고 2007년 들어서 왕정이 폐지되고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제헌의회가 시작됐다.

한국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지 2년도 못 돼 3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전쟁을 3년 동안 치렀고, 휴전 다음해인 1954년 우리나라 1인당 GDP는 67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58년 개띠’라는 말이 생길 만큼 출생 인구가 많았다는 1958년에도 한국의 인구는 고작 2400만 명이었다. 전쟁과 빈곤과 많은 인구라는 점에서 1950~60년대의 한국과 지금의 네팔은 무척이나 닮았다.

그래서일까. 왠지 네팔에 이끌렸고, 네팔 의료봉사는 매년 계속됐다. 갈 때마다 3000명 가까운 환자를 무료로 진료했다. 30명의 의료진이 이렇게 많은 환자를 단기간에 진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의료진보다 세 배나 많은 현지 자원봉사자들의 존재였다. 그들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유창한 한국어로 통역도 했다. 그들은 모두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했던 사람들로, 캠프가 열릴 때면 네팔 곳곳에서 일부러 찾아와 주었다.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살면서 한국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힘써준 한국의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가진 사람들이다.

몇 년의 의료봉사 후, 우리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짧은 의료봉사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에, 아예 ‘상설’ 보건의료기관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한국이주민건강협회의 주도로 카트만두 근교 빈민촌에 보건소를 하나 설립한 데 이어, 작년 가을에는 포카라 인근의 ‘바누마을’에 두 번째 보건소도 설립했다. ‘바누사랑진료소’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에서는 의사 한 명을 포함해 간호사, 약사, 임상병리사 등 6명이 일한다.

아직 우리가 이룬 것은 작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작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큰 전진을 이뤄내려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춘 한국식 병원을 네팔에 건립하는 계획이 그것이다. 물론 이 병원은 비영리로 운영될 것이고 국제 NGO의 성격을 띠겠지만, 한국에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 모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민간 차원의 개발원조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7년 동안 네팔의 정말 많은 의사와 교류했고, 현지에서 소중한 인맥도 많이 쌓아왔다. 특히 한국으로 초청돼 연수를 받고 간 몇 명의 의사는 우리가 정말 좋은 병원을 설립한다면 자신들이 지금 누리는 네팔 내에서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서라도 우리가 꿈꾸는 프로젝트에 동참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뿌려놓은 씨앗들이 조만간 예쁜 꽃으로 피어나, 내년쯤에는 아름다운 화단을 꾸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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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겸 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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