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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도 빈자도 가난한, ‘현대화한 빈곤’의 재앙

  • 정여울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부자도 빈자도 가난한, ‘현대화한 빈곤’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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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속의 가난

우리는 내 힘으로 내 몸을 먹이고 입히고 살릴 수 있는 능력, 우리 힘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키우고 치유하고 교육할 수 있는 능력, 우리 힘으로 우리의 공동체를 가꾸고 지키고 돌보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음식은 마트에서 구하고, 옷은 인터넷 쇼핑이나 백화점에서 구하고,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 맡기고, 공동체의 안녕은 국가에 맡기는 한, 우리는 결코 거대한 시스템의 하찮은 부속품의 지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본의 풍요에 매혹됨으로써 ‘돈이 없으면 불행하고,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는 공식에 매몰돼버렸다. 그럼으로써 부자들 또한 어김없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진정한 가난’을 깨닫지 못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돈이 있어도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돈이 있음으로써 오히려 보이지 않는 진짜 가난’에 대해, 모두가 눈을 감게 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이반 일리치가 한결같이 고발하고자 했던 ‘풍요 속의 가난’이었던 것이다.





비트 bit와 와트 watt(각각 정보와 에너지 단위를 나타낸다)가 어느 한계를 넘어 대량생산 상품에 과도하게 투입되면 필연적으로 인간을 ‘가난하게 만드는 부(impoverishing wealth)’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이 가난한 부는 함께 나눌 수 없을 만큼 희소한 부이거나, 한 사회의 가장 힘없는 사람에게서 자유와 해방을 빼앗는 파괴적인 부이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자유’를 꿈꾸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직장에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자유’를 꿈꾸고, 직장이 없는 이들은 ‘출근이라도 할 수 있는 자유’를 꿈꾸는 세상.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반 일리치는 단순하게 질문하고, 통렬하게 대답한다. 우리는 너무 고통스러워 차마 하지 못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소비를 하지 않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인가?” “직장에 고용되지 않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인가?”

이 모든 질문은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고, 서글프게 만든다. 내 삶의 이유를 내 본질과 상관없는 것에서 찾아야 하는 가혹한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을까. 우리는 어떻게 우리 몸이 가진 최고의 능력, 우리 마음이 가진 최고의 빛을 끌어낼 수 있을까.

이반 일리치는 ‘공용공간의 회복’이 모든 것이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린 이 시대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골방에서 혼자 고민하며 인터넷을 뒤지고 더 큰 고립감에 빠지는 현대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일상 속의 공동체’다.

“인간에게 공용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전문적인 서비스가 주입되는 탯줄이 달린 낯선 태반이 들어섰다. 인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집중치료를 받는다. 삶은 마비되었다.”

공용공간의 회복

우리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의 토크쇼를 통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진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SNS의 가식적인 대화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번드르르한 셀카 사진이 아니라, 가끔 내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해 더듬거리며 한참 동안 헤매더라도, 살아 있는 사람의 온도를 느낄 수 있는 진짜 대화만이 서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전문가의 기술’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상태를 벗어나,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최고의 연대와 협력을 끌어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전통사회의 빨래터처럼 아낙네들이 모여 서로의 아픔과 소문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더 많은 공원, 더 넓은 광장, 더 깊은 수다의 향연이 필요하다.

“근원적 독점이란 사람들이 참여하거나, 참여하고 싶어 하는 의미 있는 활동을 기업의 상품과 전문가의 서비스가 대체해버린 것”이라는 이반 일리치의 지적처럼, 자본과 상품은 우리가 진정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의미 있는 활동을 제한하지만 결코 대체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아파트에 갇혀 살면서도 끊임없이 캠핑이나 주말농장에 매혹되고, 힘든 직장생활을 계속하면서도 주말에는 ‘공토’(공부하는 토요일)를 사수하려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 안의 잃어버린 ‘공생의 본능’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이다. 그렇게 작지만 소중한 실천의 발걸음이야말로 스스로 도구화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우리는 ‘노동자’가 되지 않고도 노동할 수 있는 권리, 누군가의 고용인이 되지 않고서도 스스로의 일과를 디자인할 수 있는 열정, 농부의 기쁨과 어부의 보람과 산악인의 집념과 예술가의 창조성을 되찾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가졌으나 ‘노동의 쇠사슬’에 묶여 짓눌러버린 우리 안의 뜨거운 빛이므로.

신동아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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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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