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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우화는 사라지고 바람만 남았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충남 서천 갈대밭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우화는 사라지고 바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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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580만 명이라는, 당시로선 기록적인 관객몰이를 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 병사 간의 우정을 통해 분단 문제를 휴머니즘의 시각으로 다뤘다. 한국군과 북한군이 첫 대면하는 장면은 충남 서천 갈대밭에서 촬영됐다. 우정과 비극의 시작점에는 지금도 갈대가 바람에 휘날린다.
우화는 사라지고 바람만 남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4년 6개월 전, 그러니까 2000년 4월 17일 오후 5시쯤 충청남도 금강 하구 갈대밭에서 박찬욱(51) 감독을 만났다. 당시 37세이던 그는 세상에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992년 가수 이승철과 배우 나현희 주연의 영화 ‘달은…해가 꾸는 꿈’으로 한 번, 1997년 김민종, 이경영, 정선경 등이 나온 ‘삼인조’로 한 번. 그렇게 두 번 흥행에서 처절한 고배를 마신 후였다.

이제 그는 세 번째 영화를 찍을 참이었다. 그게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였다. 한국사회는 이 특별하고, 심지어 기이하기까지 한 작가주의 감독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찬욱은 영화광 출신의 ‘B급 무비’ 감독으로 불렸다. 기억하기로는, 아직 봄바람이 느껴지지 않던 충남 서천의 갈대밭에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그때. 박찬욱은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대해 다소 분노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웰 메이드(well-made) 상업영화 감독이라는 걸 보여주겠다. 이제 그럴 때도 됐다.”

감독으로 데뷔한 지 어느덧 10년이 가까워졌다. 조금씩 초조해졌다. 그는 이날 갈대밭에서 DMZ 안으로 수색을 나갔던 한국군 병사 이수혁(이병헌)이 대오에서 이탈해 대인지뢰를 밟게 되고, 그런 그를 북한군 병사 오경필(송강호)과 정우진(신하균)이 발견하는 장면을 찍을 참이었다.

현장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스태프들이 갈대밭에 들어가 촬영에 적합하도록 주변 정리를 했다. 발전차가 들어갔다. 야간 촬영을 위한 조명등 설치가 관건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연출부와 제작부가 울려대는 무전음이 터져 나왔다. 감독은 오히려 이럴 때 좀 느긋한 편이다. 감독은 늘 몸보다 머리가 바쁜 법이니까. 머릿속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면 구성에 여념이 없을 터다.

현장에서는 잘 몰랐으나 이때 찍은 장면은, 이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된다. 남북한 병사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니까. 특이하게도 영화 속 이 장면은 긴장감과 함께 이상하게도 코믹한 분위기가 산발적으로 엇갈린다. 그런 느낌은 마치 박찬욱의 인증표와도 같은 것인데 당시에는 아주 기발한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여졌다.

코리안 뉴 시네마 바람

이 장면에서 이수혁이 밟고 선 것은 마치 지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마치 ‘똥을 밟고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수혁을 발견한 북한군 병사들은 안됐다는 표정보다 “하이고, 그것 참 고약하게 됐네” 식으로 쿡쿡거린다. 마치 개구쟁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악의 없는 조롱을 흘리는 아이들처럼. 이병헌의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때다. 그는 “우왕!” 하고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의 아이처럼 북한군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야, 이 개XX들아 그냥 가면 어떻게 해.”

그 욕설에 오히려 여유 있게 느글거리며 북한군 병사 오경필이 돌아서자, 이수혁은 급히 말을 수정한다.

“그냥 가면 어떻게 해…요. 살려주세요오!”

그렇게 남북한 병사들은 만나고, 친해진다. 그들은 초코파이를 나눠 먹고 김광석의 노래를 같이 듣는다. 그러나 그들도 안다. 자신들의 관계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그리고 비극은 일찍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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