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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또 한 번의 협상을 꿈꾸며

  •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또 한 번의 협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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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나를 ‘협상의 달인’이라고 일컫는다. 흉인지,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자민련 측과 협상을 통해 이른바 ‘DJP 연합’을 이뤄낸 일, 그리고 다음 해인 1998년 우리나라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겪을 당시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낸 일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1998년 2월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기자회견을 한 뒤 일본 도쿄의 모 대학교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들은 “다른 나라에선 3~4년을 끌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노사정 대타협을 단기간에 해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비결이 없는 것이 비결”이라는 답으로 웃어넘겼지만 분명히 ‘나만의 협상방법론’은 있다.

첫째는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싶다면 협상에 앞서 신뢰 구축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 둘째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아무리 상대방이 나와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내가 그의 위치에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의 처지에 서는 일이다.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면 뜻밖으로 쉽게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 셋째는 문제의 핵심에 빨리 접근하는 것이다.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채 만나면 아무리 대화를 나눠도 변죽만 울리고 시간만 보내는 헛수고가 되고 만다. 넷째는 상대가 미안해할 정도로, 나를 이해해줄 때까지 참고 또 참으면서 타협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어떤 협상을 이끌어내든 소신(所信)과 백인(百忍)의 정신으로 상대방과 협상해야 한다. 중국 당나라 때 고종이 9세(世) 동안이나 일족(一族)이 함께 산 장공예(張公藝)에게 그 방도를 물으니 참을 인(忍)을 100번 써서 올렸다는 데서 유래한 백인(百忍)의 정신으로 협상에 임하는 것이 나만의 협상방법론이다.

마지막 승부수

1996년, 제15대 대통령선거를 1년여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나를 김대중 총재가 불렀다.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 즉 김대중 총재와 김종필 총재의 공조 단일 협력 체제를 구축하라는 임무를 줬다. ‘참으로 어려운 일을 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성사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을 처음에는 극비리에 만났다. 그는 국회와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중진이며 합리적인 정치인이다. 김대중·김종필 두 총재의 대통령후보 단일화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자민련에서도 대통령후보를 내야 할 상황이라 협상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양보를 받아야 하는 처지이고, 자민련은 양보를 해야 하는 처지인 만큼 자민련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우리 앞에는 숱한 난제와 난관이 산적해 있었다. 나는 이런 때에 내가 김 총장의 처지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역지사지였다.

김 총장과 내가 어렵게 합의를 도출해도 양당의 내부 사정에 따라, 그리고 의견 조율을 거치는 과정에서 물거품이 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았다.

협상이 원점을 맴돌던 1997년 10월 26일 김용환 총장을 만나 이렇게 제안했다. “우리가 합의서에 먼저 사인을 하고, 두 분 총재에게 들이밀어서 안 되면 그만둡시다.”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합의문에 김대중, 김종필, 한광옥, 김용환의 이름을 써 넣고 나와 김 총장이 먼저 사인을 했다. 양당 총재의 허락도 없이 우리가 먼저 합의문에 서명한 무리한 절차였다. 좋게 말하면 결단이고, 나쁘게 말하면 불경스러운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튿날 김대중 총재에게 합의서를 보고하며 “이 이상은 안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할 수 없군”하며 수용했다. 김종필 총재도 그런 식으로 합의문을 받아들였다. 두 총재는 1주일 뒤인 11월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야권 후보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한 뒤 손을 맞잡았다. 1년 6개월 동안 공을 들인 야권후보 단일화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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