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호

‘국제시장’과 ‘토토가’의 이면

  • 정해윤│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5-01-21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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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연시 복고(復古) 바람이 스크린과 텔레비전을 강타했다. 하나는 1950~70년대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국제시장’이다. 다른 하나는 MBC TV ‘무한도전’의 1990년대 가수 특집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이다. ‘국제시장’은 ‘명량’의 흥행 신기록에 도전할 태세다. ‘토토가’의 90년대 가요는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쓸었다.

    20대 문화의 퇴행, 빈곤, 결핍?

    장르는 다르지만 둘은 옛 시절 향수에 의존하는 특성을 공유한다. 둘은 난데없이 등장한 게 아니다. 영화 ‘건축학개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큰 인기를 누린 이래 요즘 우리 영상 미디어는 뚜렷하게 과거로 회귀한다.

    왜? 답은 간단하다. 팔리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는 추세에 따라 40, 50대는 인구도 많고 경제력도 갖춘 중심 소비층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복고풍 콘텐츠를 즐겨 찾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가 수용자의 기호를 따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왜 40, 50대는 복고풍을 원하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생각된다. 첫 번째 이유는 지금의 20대를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 드라마, 음악 같은 콘텐츠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창작의 최전선에는 랭보나 비틀스 같은 20대 천재가 있었다. 80년대엔 ‘이등병의 편지’를 부른 김광석이 있었고, 90년대엔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있었다. 요즘 아이돌 그룹은 한류를 일으키고 세계로 뻗어나간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40, 50대는 이들의 노래에서 자신과의 동질감을 찾지 못한다.

    ‘토토가’에 참여한 90년대 가수 이정현은 인터뷰에서 “지금의 아이돌 가수는 장르가 (다들) 비슷하다. 거의 익숙지 않은 멜로디이고 개성이 없다”고 말한다. 몇몇 중년은 “요즘 20대의 음악은 깊이가 없다”고 평가절하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과 기획사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양현석, 박진영 같은 90년대의 스타들이 거대 기획사 사장으로 변신해 입맛에 맞는 신인들을 선택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20대 가수들은 기획사가 짜놓은 틀 안에서 ‘제조’되고, 기획사가 하라는 대로 노래하고 춤춘다. 덕분에 걸그룹, 보이그룹 위주의 댄스뮤직 편향이 뚜렷하다. 노랫말도 대개 ‘하룻밤, 사랑, 좋아, 싫어…’ 이런 식으로 좀 원초적이다. 스스로 숙고한 흔적이 별로 없다. 모든 연령을 아우르는 보편성이 달릴 수밖에 없다.

    현재로부터의 도피

    우리 사회가 내놓은 국제적 배우들, 이병헌·송강호·최민식·김윤진…. 이 중 20대는 없다. 최근 흥행 신기록을 세운 ‘변호인’‘명량’ ‘국제시장’의 공통점은 황정민 같은 중년 배우가 주연이라는 점이다. 20대 김수현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반짝했지만, 청춘스타와 여배우 계보는 점점 희미해진다.

    대중문화계 일각에선 요즘 젊은 세대의 지적 퇴행, 창의력 빈곤, 열정 결핍을 지적한다. 영문학자 마크 바우어라인의 표현을 빌리면, 현재의 우리 사회 20대는 “가장 멍청한 세대”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엔 익숙하지만 실제 현실의 당면 문제를 아날로그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신문도 거의 읽지 않고 글도 잘 못 쓴다. 자기 관점으로 어떤 논의나 담론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로 인해 20대가 대중문화 생산과 소비의 주체에서 밀려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40, 50대는 자신의 20대 시절 문화의 비교우위를 확신하고, 영상 미디어는 여기에 동조해 복고풍 문화 상품을 계속 기획해내는 것이다.

    복고 바람이 부는 두 번째 이유는 ‘현재로부터의 도피’ 심리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취업난, 중산층 몰락, 노후 불안, 빈부 격차, 국가 경쟁력 상실 같은 힘든 현실이 그리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하지 못한다. 이렇게 현재와 미래에 별로 기대할 게 없다고 여기면 추억으로 미화된 옛 시절을 더 소구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미디어 복고 바람은 건강한 현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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