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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자유의 언덕’이 있는 곳, 서울 북촌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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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이 뒤섞였다. 과거 속에 현재가 있고, 현재 속에 과거가 살아 숨 쉰다.
  • 화가와 시인 같은 ‘싸움꾼’들이 자유로운 영혼을 찾아 깃든다.
  • 같은 골목인데 사람들의 시선은 각자 ‘이기적’이다.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이래 지금껏 장장 스무 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홍상수 감독은 늘 기이하면서도 발칙한 제목을 사용해 왔다.‘강원도의 힘’이라든지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든지 ‘하하하’라든지,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접하기 전 늘 제목을 보면서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최근 작품도 그 점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북촌방향’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우리 선희’ ‘자유의 언덕’…. 그의 영화는 늘 제목만으로도, ‘이건 사실 별 얘기 아냐, 그러니 그다지 신경 쓸 것 없어. 괜히 모든 영화에 의미 부여하려 하지 마’라는 식의, 홍상수 특유의 무덤덤하고 무신경한, 그래서 오히려 세상과 동떨어져 그 세상을 보다 더 신경질적으로 조소하는 듯한 표정을 드러낸다.

놀라운 것은 지난 2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그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편수의 영화를 찍어댔다는 것이다. 거의 1년에 한 편꼴이며 어떤 해에는 두 편을 찍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양(量)으로 승부를 내는 감독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올시다’이다. 그 많은 영화를 만들면서 그는 국내외 평단에서 한결같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오히려 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늘 진화하고,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까지도 홍상수는 신작으로 국내 영화상을 휩쓸다시피 했는데 국내에 이런 감독, 즉 최다 편수를 자랑하면서 역시 최다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감독은 매우 드물다.

‘천재적’인 초저예산 영화 공법

비현실의 현실감 데자뷔 속 자메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자유의 언덕’ 포스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보통 영화를 만들려면 평균 30억 원이라는 물적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 그렇다면 그는 매번 안정적으로 투자를 받아내는 감독이라는 얘긴가. 그것 역시 ‘아니올시다’다. 그는 상업성 있는 감독이 아니다. 그가 이렇게 꾸준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대기업 자본에 전혀 기대지 않는, 초저예산 공법의 영화를 선호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최근 들어 숱한 스타를 기용해 영화를 찍으면서도 편당 제작비가 1억 원을 넘지 않는 절묘한 제작 행태를 보여왔다. 국내 제작자들, 감독들이 그런 그를 보며 혀를 내두르는 것은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단 스타들은 그의 영화에 나오면 돈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태프도 적은 비용을 마다하지 않는다. 홍상수와 영화를 한다는 것을 좋은 기회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이제는 ‘열정 페이’만으로는 일을 추진할 수 없다. 아무리 인건비를 줄인다 하더라도 기본 세팅 비용은 들어가야 한다. 카메라를 포함해 장비도 있어야 하고, 일단 무엇보다 물류비용, 곧 오가는 데 돈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홍상수 영화의 비결과 핵심은 바로 이 부분, 그러니까 로케이션(location) 촬영을 극도로 줄임으로써 이동 비용을 ‘제로베이스’로 한다는 데에 있다. 영화를 거의 한 공간에서 촬영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싸게, 빨리, 간편하게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작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오히려 더 다양하게 묘사해낼 줄 알아야 한다. 홍상수의 천재성은 여기에 있다. 그는 공간의 흐름이 아닌 내면의 흐름을 통해 러닝타임 1시간 반 가까운 영화의 이야기를 직조해낸다. 그의 영화가 단순히 ‘보는’ 작품이 아니라 ‘읽는’ 작품의 느낌이 나는 건 이 때문이다.

홍상수의 최신작 ‘자유의 언덕’이 바로 그렇다. 일본 배우 가세 료의 ‘메소드 연기’(배우가 극중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돼 연기하는 방식)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그리 복잡한 줄거리를 가지지 않은 척하지만, 사실은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치밀하게 씨줄 날줄로 얽혀 있다.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100페이지 정도로 풀어 써야 영화의 의미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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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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