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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매혹시킨 것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나를 매혹시킨 것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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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매혹시킨 것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푸른숲

누구나 화를 낼 수는 있다. 화내는 것은 쉽다. 하지만 딱 맞는 사람에게, 적당한 수위로, 그리고 꼭 맞는 시기에, 올바른 목적으로, 게다가 정당한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게 정당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만약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당신에게 늘 이런 말을 한다면, 당신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평범해, 지루해, 이류야, 놀랍지 않아, 만족스럽지 않아, 인상적이지 않아.” 언제부턴가 평범함은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결코 특별하거나 탁월하지 못함’을 일깨우는 악담의 일종이 됐다. 하지만 실제로 평범함은 평화로움의 일종이며, ‘모나지 않게, 지나치게 힘들지 않게, 소중한 것들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평범함이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하를 보게 되는’ 미디어 중독의 시대, 이제 무엇을 봐도 그리 놀라지 않게 되어버린 현대인이 잃어버린 행복의 비결이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지극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비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소설 속의 주인공 닉도 그랬다. 경이롭고 대단하고 화려한 에이미를 만나기 전까지는. 닉은 자신이 지금까지 만난 어떤 여자들보다도 화려하고 돋보이는 에이미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푹 빠진 시절은 미국 경기가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그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 호황이 낳은 자본주의의 기린아였던 것이다. 닉과 에이미가 둘 다 작가로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던 그 시대는 종이책 르네상스 시대였다. 닉은 자신이 ‘한때 작가’였다고 고백한다. “뉴욕에는 작가가 넘쳐났다. 잡지, 진짜 잡지가 셀 수 없이 많았던 때니까. 그때만 해도 인터넷은 출판계의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진기한 애완동물 같은 존재였다.”

‘평범한 삶’의 가치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종이책 전성기는 끝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자신의 삶을 모델로 한 시리즈물 ‘어메이징 에이미(Amazing Amy)’의 주인공이기도 한 에이미는 이 변화의 직격탄을 맞는다. 늘 최고의 모범생으로 자랐고, ‘어메이징 에이미’ 시리즈를 통해 셀러브리티의 자리까지 꿰차고 있던 에이미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머니가 암 투병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되자 닉은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에이미를 설득한다. 에이미는 당황스럽다. 항상 ‘세상의 중심’인 뉴욕에서 ‘어메이징 에이미’로 살아가던 그녀가, 미주리의 한적한 마을로 가서 산다는 것은 ‘몰락’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에이미는 이때부터 닉과 그의 가족을 대놓고 무시한다.

글을 통한 밥벌이를 더는 할 수 없게 되자 닉은 쌍둥이 여동생 ‘고’와 함께 고향에서 술집을 연다. 에이미에게 8만 달러를 빌려 술집을 연 닉은 이제 아내 앞에서 ‘을’로 전락해버린다. 에이미의 눈에 비친 남편은 그저 풀 죽은 루저일 뿐이다. 에이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 것은 자신의 몰락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상품 가치 몰락’이다. 이제 몰락한 중산층 남자의 ‘평범한’ 아내가 되어버린 에이미는 더 이상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권태기가 찾아온다. 그들은 불황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는 ‘평범한 삶’의 가치를 발견해내지 못했고, 둘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닉은 결국 젊은 여대생과 불륜을 저지르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에이미는 복수극을 기획한다. 그녀의 부모가 만들어낸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신화를 훌쩍 뛰어넘는 새로운 신화, 바로 멀쩡히 살아 있는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참혹하지만 ‘상품성 높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탈바꿈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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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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