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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테오도르 제리코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포사람 원장

‘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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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이 코너의 이름은 ‘미술과 마음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원고를 쓰는 매월 말에는 자연스레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마음에 관한 단어 중에서 최근 우리 사회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것은 ‘분노’가 아닐까 합니다.

분노란 ‘분개하여 몹시 성을 내거나 또는 그렇게 내는 성’을 뜻합니다. 경우에 따라 분노는 범죄행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저는 주말을 제외한 매일 오후 사건과 사고를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분노 범죄’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질적으로 화를 더 많이 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 분노 범죄가 늘어나는 걸까요.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스트레스입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의 구조적 특성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경쟁에서 오는 압박은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는데, 스트레스를 더는 견디기 어려울 때 그것은 분노로 폭발합니다. 공동체 문화가 견고한 우리 사회에서 분노의 폭발은 ‘욱하는’ 성격으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분노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도 분노할 수 있습니다. 공분(公憤)은 이런 분노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대중이 함께 분노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양유업 사태나 ‘땅콩 회항’ 사건이 공분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이른바 ‘갑질’이 많은 시민으로 하여금 사회적, 집단적 분노를 일으키게 한 셈입니다.

분노와 격노

분노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한편에서 건강한 분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자신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할 때, 정의롭지 못한 사회적 사건을 대할 때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참고 견뎌내는 게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타인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때에 따라서는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옳고,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노가 범죄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재산을 앗아가는 분노는 정당한 분노가 아닙니다.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분노’와 ‘격노’를 구분했습니다. 격노란 격한 분노를 의미합니다. 정당한 분노는 내면에 건강한 자아가 형성된 사람이 드러내는 감정이지만, 격노는 내면의 핵(core)이 취약하고 파편화한 사람이 드러내는 분노입니다. 그는 이 격노의 뿌리가, 채워지지 않은 애정의 욕구에 있다고 파악했습니다. 애정 결핍으로 이런 격노가 생겼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채워지지 않은 욕구 때문에 타인에게 해를 주는 것은 일종의 병리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서양 회화에서 분노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의 하나로 꼽는 것은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1791~1824)의 ‘메두사의 뗏목(The Raft of the Medusa·1819)’입니다. 회화에 관심없는 이들도 어디선가 한 번은 보았을 유명한 작품입니다. 제리코는 들라크루아와 함께 19세기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들라크루아에게 영향을 준 선배이기도 한데, 오늘 소개할 그림 ‘메두사의 뗏목’은 낭만주의 시대를 연 작품으로 평가돼왔습니다.

제리코는 서른세 살에 요절한 천재 화가입니다. 그의 성품은 자유분방했다고 합니다.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활기차면서도 동시에 우울했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낭만적 기질의 소유자였던 셈입니다. 이런 성격을 가졌기에 그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고자 한 낭만주의 회화를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동적인 구도, 대담한 색채, 생동감 있는 붓 터치 등을 부각한 낭만주의 회화는 우리 마음의 심연 가운데 어느 한 곳을 뒤흔들어놓습니다.

난파한 메두사호

제리코가 이 작품을 그린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이 그림이 담은 사건은 이렇습니다. 1816년 아프리카 세네갈로 가는, 400여 명을 태운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號)가 대서양에서 암초를 만나 난파됐습니다. 선장을 포함한 일부 선원은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했고, 남은 선원과 승객 150명은 뗏목을 만들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표류하는 뗏목 위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는 등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조됐을 때 남은 이가 겨우 15명에 불과했는데, 뗏목 위에서 벌어진 이들의 끔찍한 사투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젊은 제리코는 이 사건을 작품으로 그리기 위해 시체안치소를 방문하고 생존자를 인터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장면을 그릴까 고민하다 끝까지 살아남은 이들이 자신을 구조할 수 있는 배를 발견하는 마지막 순간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사람, 죽음의 공포 앞에서 절망하는 사람, 살아남기 위해 절규하는 사람, 그리고 구조할 배를 발견해 기뻐하는 사람 등을 포함한 다양한 군상의 극적인 모습을 담은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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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포사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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