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자본이 만든 ‘문단 아이돌’ 웃자란 순수문학의 위기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단권력

  • 정해윤 | 문화비평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5-07-22 16:4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자본이 만든 ‘문단 아이돌’ 웃자란 순수문학의 위기
    소설가 이응준이 제기한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우리 문단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신경숙은 그동안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표절 대상이 일본 극우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한층 컸다. 이응준이 6월 16일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이후 신경숙의 또 다른 표절 의혹들이 꼬리를 물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신경숙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조영일 문학평론가는 “읽지 않았는데 그렇게 일치했다면 아마 우주가 도와줬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책을 낸 ‘창작과비평(창비)’은 “문제가 된 묘사는 일상적 소재이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필자는 ‘신동아’ 2014년 1월호에서 신경숙 표절 의혹 사례를 언급했다. 따라서 필자에겐 이응준의 문제 제기가 새롭지 않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신경숙 표절 논란을 전혀 몰랐다는 점을 이번에 알게 됐다. 그게 놀라왔다. 문학계 일각에선 실망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문학이 아니라 한통속 사기극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사실 이번 의혹은 15년 전에 제기된 것이다. 그땐 SNS가 없었다. 전문가들 끼리 왈가왈부하다 끝나고 말았다. 당시 대중문학 진영을 대표해 작가 이용범은 이렇게 말했다.

    창작의 주체는 자본?



    “내가 문학 엘리트들에게 요구한 것은 내 소설을 비난하거나 우대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제기한 문제의 본질은 최근 문학 엘리트들이 옹호하는 문학이 과연 본격문학인가, 하는 것이었다. 대중문학에 상표를 달아주는 일을 멈추고 이제 본격문학을 하라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한국 문단이 벌이는 사기극 논란의 본질을 지적하는 듯했다. 본격문학이 아닌 것을 ‘명품으로 포장해 내다 팔고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 신경숙은 조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또 표절은 ‘차떼기냐, 비타500이냐’와 같은 부패의 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반복적으로 표절 논란을 일으키는 아이돌 가수가 있다고 하자. 현재와 같은 기획사 시스템에서 이를 과연 가수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 있을까. 기획사와 그 대표에게도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문학에서 창작의 주체는 작가에서 자본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번 표절 의혹의 배경엔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과 그가 주관해온 창비, 신경숙의 남편 남진우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또 이 사기극 논란의 본질은 ‘순수문학을 빙자한 상업주의’일 수 있다.

    1980년대까지 우리 문단은 순수문학을 주장하는 ‘문학과지성사(문지)’와 현실참여를 강조하는 창비의 양대 그룹으로 나뉘었다. 이들은 자기 진영에 대한 소속감이 강했고 색깔도 뚜렷이 구분됐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선제공격은 창비가 날렸다. 신경숙과 관련된 일이기도 했다. 신경숙은 1990년 고려원에서 첫 소설 ‘겨울우화’를 냈으나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1993년 문지에서 출간한 ‘풍금이 있던 자리’로 주목받게 된다. 작가와 출판사 간 인간적 의리를 중시하는 관행대로라면 그는 문지 그룹에 남았어야 했다. 그러나 1993년 그는 창비의 계간문예지 ‘창작과 비평’에 단편을 기고한다. 백낙청은 이때부터 신경숙에게 적잖은 공을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판 자본의 시녀’

    그 후 1996년 창비가 제정한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신경숙의 ‘외딴방’이 선정됐다. 백낙청은 “한국 문학의 보람” “작가는 우리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부여하는 엄청난 일을 해내었다”라고 극찬했다. 신경숙은 1996년 창비에서 ‘오래전 집을 떠날 때’를 출간한다.

    신경숙의 이런 행보는 1990년대 문단에서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자기 사람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문지에서는 펄펄 뛰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신경숙처럼 ‘문학동네’를 포함한 빅3에서 돌아가면서 책을 출간하는 것이 인기작가의 새로운 전통이 됐다.

    이후 신경숙은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고르게 받으며 1980년대 이문열이 누리던 위상을 차지한다. 신경숙이 이렇게 문단의 통합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데엔 창비의 마케팅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그런데 신경숙이 창비에서 낸 첫 책 ‘오래전 집을 떠날 때’가 바로 이응준 작가가 표절 의혹을 제기한 그 책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창비가 이 책의 제목을 2005년부터 ‘감자 먹는 사람들’로 바꿔 출간한 점이다. 오래돼 절판된 것도 아니고 꾸준히 팔리는 유명 작가의 책인데 굳이 제목을 바꿔 출간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확인이 필요하지만, 일각에선 ‘창비가 내부적으로 이미 신경숙의 표절 소지를 인지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신경숙 이후 여성 작가가 ‘대세’가 되자 창비는 여성 작가에게 크게 투자했다. 신경숙만큼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창비는 은희경에게도 정성을 쏟았다. 그러다 2008년 신경숙의 최고 히트작 ‘엄마를 부탁해’를 출간해 대박을 터뜨린다.

    자본이 만든 ‘문단 아이돌’ 웃자란 순수문학의 위기
    그러나 출판 기회를 얻지 못한 작가들은 치를 떨었다고 한다. 진보진영 글쟁이들 사이에선 백낙청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있었다. 이번 표절 사태에 대해 좌파 문화평론가 김규항은 “노회한 문화권력 백낙청의 사기업임에도 마치 진보문학의 공공재인 양 위세등등하던 창비의 아우라를 박살”이라며 속이 후련하다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백낙청은 부인과 합쳐 창비의 지분을 40% 가까이 소유했다. 그는 진보적인 문인단체 한국작가회의의 실질적 수장이기도 하다. 이런 그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어떠한 언급도 삼간 채 침묵으로 대응한다.

    검찰을 권력의 시녀라고 하듯이 평론가들을 출판 자본의 시녀라고도 한다. 문학권력 빅3는 모두 문예지를 출간하고 문학상 제도를 시행한다. 이를 통해 작가의 등단에서부터 문학적 권위를 부여하는 일까지 일관공정 시스템을 구축했다.

    상식적으로 평론가는 출판 자본이나 작가들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이들은 반대로 시장의 윤활유 구실을 한다. 대단치도 않은 작품에 예술성을 부여하고 마케팅 포인트까지 제공한다. 이런 평론은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다는 의미에서 ‘주례사 비평’으로 불렸다.

    신경숙의 남편 남진우는 평론가 출신이다. 이응준은 남진우에 대해 “여러 문인을 표절작가라며 그토록 가혹하게(아아, 정말로 가혹하게!) 몰아세우고 괴롭혔다”고 묘사한다. 남진우는 진정 싸움닭 같은 평론가였다. 그러나 그는 어떤 작가들에겐 주례사 비평을 선사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남진우가 주축인 문학동네는 1993년 설립됐다. 창비나 문지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매출 규모에선 수위를 고수한다. 이런 초고속 성장의 신화 덕분에 문학동네는 출판가의 벤처기업으로 통한다.

    ‘주례사 비평’과 베스트셀러

    신경숙은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로 주목받은 후 한 일간지에 ‘깊은 슬픔’을 연재했다. 그러나 이 연재는 어떤 사정인지 중단되고 말았다. 이를 문학동네가 1994년 장편소설로 묶어 출간한다. 당시 문학동네는 순수문학 작품으로서는 거의 최초로 언론 광고를 내며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이런 모험 덕분인지 ‘깊은 슬픔’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문학동네의 성장사는 한국 대기업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평을 듣는다. 대대적인 물량공세로 젊은 작가들을 저인망식으로 영입했다고 한다. 파격적인 광고 집행, 주례사 비평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는 작품성과 상업적 성공 간의 괴리를 빚었다.

    문학평론가 김정란은 신경숙에 대해 스타 마케팅 덕에 ‘웃자랐다’고 평가한다. 신경숙은 자본이 만들어낸 문단의 아이돌이었던 걸까.

    신경숙은 세 번째 책 ‘외딴방’도 문학동네에서 출간한다. 소설 뒤에 평론가들의 해설이 실렸다. 이를 통해 소설은 예술적 권위를 부여받았다.

    순수문학은 다른 말로 근대문학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특정 시기에 통용되던 문학 방식이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문학은 거의 사라졌다. 서사의 중심은 영상으로 넘어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문학판을 떠난 지 오래다. 셰익스피어의 고향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문학은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이다.

    한국에서 근대문학이 늦게까지 연명한 데는 독재정치와 민주화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1980년대엔 소설책이 100만 부씩 팔렸고 시집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곤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한국 사회의 비정상성이 갑자기 사라지자 문학 시장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러한 위기는 일부 출판사에 새로운 기회가 됐다. 신경숙은 대중성을 갖춘 순수문학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신경숙이 창비에 미친 영향을 보면, 2008년 127억 원이던 매출이 그해 말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된 후 2009년 192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신경숙 효과가 절정이던 2011년엔 300억 원까지 올랐다. 그런 과정에 표절 의혹이 묵인됐는지 모른다.

    김누리 중앙대 독문학과 교수는 “미문(美文)주의의 위기”라고 말한다. 너도 나도 아름다운 문장을 짓는 데에 열중할 뿐이지 인간과 시대에 대한 고뇌와 성찰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작품성은 작품성대로 저평가를 받는다. 나아가 스토리로서의 가치도 현저히 낮아 한국 소설은 ‘핵노잼’이라는 비난을 곧잘 듣는다.

    사실,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작가들은 선배 문인들에 비해 협소한 삶을 살았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이들은 삶의 무대가 한반도를 벗어나 일본열도, 만주벌판, 남방에 이를 만큼 광대했다. 비록 그 인생은 고달팠지만 말이다. 6·25라는 대사건은 전쟁문학을 남겼다. 전쟁은 잔인한 것이지만 인간의 극한 상황을 경험한 것은 작가에게 큰 자양분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작가들은 대개 공간적으로는 한반도 남단을, 시간적으로는 현재시점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시대를 주도할 담론이나 남다른 이야깃거리가 나오기란 쉽지 않다.

    창작기능인 양성소

    한국문학이 획일화한 원인으로 ‘대학 문예창작학과’라는 작가 양성 시스템도 비판을 받는다. 이것은 창작기능인 양성소다. 소설가가 주문생산자로 전락한 것은 이런 교육 시스템의 당연한 귀결이다. 문예창작학과 출신으로 등단 30년차를 맞은 신경숙이 지속적으로 표절 논란을 일으킨 것은 필사와 표절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그의 과 동문인 조경란도 ‘혀’라는 작품으로 표절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미문을 추구하는 작가는 표절 논란에 빠지기 쉽다. 여기저기에서 괜찮은 문장을 수집해 써먹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미문형 필사 기능인들이 문단을 장악하면서 소설 시장에는 ‘문학소녀들’만 남은 듯하다. 고급 독자들은 모두 소설 시장을 떠났다는 진단도 나온다.

    신경숙의 최고 히트작 ‘엄마를 부탁해’에 대해서도 표절 의혹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 소설은 한국 문학을 대표해 해외로 진출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망신살이 해외에까지 뻗치게 된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영문으로 출간됐을 때 한 미국 평론가는 “김치 냄새 나는 크리넥스 소설”이라는 신랄한 비평을 남겼다. 미국에선 주례사 비평이 안 통한다. 내부자로서의 이해관계를 벗어나면 그 본질이 정확히 보인다.

    남진우는 아마 계속 침묵할 것 같다. 부인의 일이라는 점에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평론가로서는 사실상 절필한 셈이다.

    백낙청은 내년 총선거에서 정치활동을 할지 주목된다. 그의 사회적 발언권은 문학적 성취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사회는 표절 논란 작가에게 절필을 요구한다. 그런 작가를 키워 큰 수익을 올려온 출판자본가는 계속 사회적 발언을 해도 되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신경숙 뒤의 백낙청은 한국 문학의 기둥인가, 우상인가.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