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관학(管學)과 경세제민(經世濟民)

  • 신동준 | 21세기정경연구소 소장

    입력2015-07-23 16: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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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춘추시대 중엽 제환공(齊桓公)을 도와 사상 첫 패업을 이룬 관중(管仲)은 관포지교(管鮑之交) 고사의 주인공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정치가였다. 관중 사후 100여 년 뒤에 태어난 공자는 그의 업적을 크게 기렸다. ‘논어’ 헌문 편의 평이 그렇다.

    “제환공이 제후들을 9번 규합하며 병거(兵車)를 동원치 않은 것은 모두 관중의 공이다. 그 누가 그의 인(仁)만 하겠는가. 그 누가 그의 인(仁)만 하겠는가!”

    관중과 제환공의 만남은 명군(明君)과 현신(賢臣)의 만남인 수어지교(水魚之交)의 전형에 해당한다. 적잖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만남을 삼국시대의 유비와 제갈량 내지 현대 중국의 마우쩌둥과 저우언라이의 만남에 비유하는 이유다. 실제로 제갈량은 평소 관중을 흠모한 나머지 스스로를 관중에 비유하곤 했다.

    안타까운 것은 관중이 당대 최고의 사상가라는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점이다. 대다수가 ‘관포지교’ 고사의 주인공 정도로만 알고 있다. 최근 필자가 펴낸 관자 리더십 관련 서적에 대한 블로거 ‘쭈은맘’의 서평이 이를 웅변한다.

    “‘상대가 이익을 얻게 하라, 관자처럼’이라는 제목을 보고 ‘도대체 관자가 누구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창피스러운 일인지? 관자는 바로 ‘관포지교’로 유명한 그 관중이 쓴 책 이름이었다!”



    사상사적으로 볼 때 관중은 공자가 사상 최초의 학단(學團)인 유가(儒家)를 창설한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제자백가의 효시에 해당한다. 그의 저서 ‘관자’에는 유가와 도가, 법가, 병가 등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이 녹아 있다.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에 들어와 ‘관자’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다. ‘한비자’ 오두 편의 다음 대목이 이를 뒷받침한다.

    제자백가의 효시

    “지금 나라 안의 백성 모두 정치를 말하고, 상앙의 ‘상군서(商君書)’와 관중의 ‘관자’를 집집마다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라가 더욱 가난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입으로 농사짓는 자만 많을 뿐 정작 손에 쟁기나 호미를 잡고 농사를 짓는 자는 적기 때문이다. 나라 안의 백성 모두 군사를 말하고,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의 병가 서적을 집집마다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군사가 더욱 약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입으로 용병하는 자만 많을 뿐 정작 갑옷을 입고 전쟁터로 나가 싸우는 자는 적기 때문이다.”

    입으로만 농사를 짓고 용병을 하는 것을 설경(舌耕), 설전(舌戰)이라고 한다. 한비자는 ‘설경’과 ‘설전’을 일삼는 나라는 이내 패망한다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치프라스의 그리스가 그 증거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이내 곳간이 바닥나고 끝내 파산하기 마련이다. 동서고금에 차이가 있을 리 없고, 개인과 기업 및 국가에 다른 이치가 적용될 리 없다. 모두 ‘설경’과 ‘설전’에 함몰된 탓이다.

    관자는 ‘설경’과 ‘설전’을 극도로 꺼렸다. 부국강병이 ‘관자’의 키워드로 나오는 이유다. 그가 역설한 부국강병 논리는 백성부터 부유하게 만드는 필선부민(必先富民) 이치에서 출발한다. 다음은 ‘관자’ 치국 편의 해당 대목이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필선부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는 게 쉽고, 가난하면 어렵게 된다.”

    ‘난세 리더십’ 바이블

    관중을 사상 최초의 정치경제학파인 이른바 상가(商家)의 효시로 간주하는 이유다. 중국 학계는 통상 경중가(輕重家)로 부른다. ‘경중’은 ‘관자’ 경중 편의 편명에서 따온 것으로 원래 재화와 화폐 등을 관장하는 부서를 뜻한다. 중국은 청나라 말기 영어 ‘economics’를 ‘경중학’으로 번역해 사용한 바 있다.

    관중은 기본적으로 상업을 농업만큼이나 중시하는 농상병중(農商竝重)의 태도를 취했다. 사농공상의 사민(四民) 체계에서 가장 천시된 상업을 농업만큼 중시한 것은 혁명적인 일이다. 이런 자세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관자가 유일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를 사상 최초의 정치경제학파로 꼽는 이유다.

    21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관자에 대한 연구인 관학(管學)은 일본이 수위를 달렸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것은 난세 리더십의 바이블로 통하는 ‘관자’를 깊이 탐사한 덕분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교토 일대에서 활약한 유학자 이카이 요시히로와 야스이 히라나라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수천 명의 제자를 육성해 사무라이들에게 중상주의 정책과 부국강병의 중요성을 설파케 했다. 일본이 패전 이후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오랫동안 G2로 군림한 것도 이런 학문적 풍토와 무관치 않았다.

    주목할 것은 21세기에 들어와 중국과 일본의 상황이 뒤바뀐 점이다.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이후 그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2015년 현재 자금성 수뇌부와 기업 CEO 사이에서 ‘관학’에 대한 열기가 공자에 대한 학문인 공학(孔學)을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인민들 간에 ‘공학’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이런 현상은 역대 황제가 겉으로는 유가사상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 법가사상을 추종한 이른바 외유내법(外儒內法)과 닮아 있다.

    ‘관학’의 핵심인 관자경제학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와 경제를 하나로 녹인 데 있다. 메이지 유신의 당사자들이 영어 ‘economy’를 ‘경제(經濟)’로 번역한 것 자체가 관자경제학의 요체를 꿴 덕분이다. ‘경제’는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 내지 인민을 구한다는 뜻의 경국제세(經國濟世),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약자다. ‘필선부민’을 기치로 내세운 관자경제학의 특징이 ‘경국제세’ ‘경세제민’ 같은 용어에 그대로 녹아 있다.

    管學에 매진하는 중국 리더들

    고금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지도층이 각성하지 않으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서민이 떠안게 된다. 천하대세에 눈을 감은 채 사서삼경에 코를 박고 당쟁을 일삼다가 나라를 패망케 한 구한말 사대부들이 그러했다. 두 번 다시 ‘소중화(小中華)’ 운운하며 우물 안 개구리처럼 행동한 구한말 사대부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재연됐다가는 남북이 공멸하고 만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관학(管學)과 경세제민(經世濟民)
    신동준

    1956년 충남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동 대학 석박사(정치학)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기자

    일본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 강사

    저서 : ‘인문고전에서 새롭게 배운다’ 시리즈, ‘CEO의 삼국지’ 등


    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온 현재, 난세 리더십의 정수인 ‘관학’을 깊숙이 탐사할 필요가 있다. 중국 수뇌부와 기업 CEO들이 ‘관학’에 매진하고 있기에 지피지기(知彼知己) 차원에서라도 그렇다. 위정자와 기업 CEO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경국제세와 경세제민의 이치를 꿰어 현실에 반영하는 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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