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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철 기자]](http://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5a/5f/eb/54/5a5feb54260ed2738de6.jpg)
[조영철 기자]
박종철과 이한열이 목숨을 잃은 1987년, 봉만대(48)는 광주 한 인문계 고교 3학년 학생이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에로영화 감독이 됐지만 당시엔 자칭 ‘순수를 좇던 한 시대의 청년’이었다. 서울 한 대학 연극영화과 진학을 목표로 학교-집-교회만 오가던 시절이다. 그보다 겨우 두세 살 많은 대학생들이 한 명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다른 한 명은 연희동 거리에서 참혹하게 생을 마감하던 순간에도 그는 교과서를 잡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온 세월을 영화 ‘1987’에서 만났을 때 봉 감독은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영화 시작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박종철의 어머니가 아들 시신이 안치된 한양대병원에 들어서던 때 첫울음이 터지더군요. 이후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봉 감독이 그 시대를 몰랐던 건 아니다. 1970년 1월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다. 언제나처럼 만화영화를 보려고 TV를 켰는데 정규방송이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의 시작이었다. 알고 보니 그때 막 ‘5·18 광주 진압 작전’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이후 봉 감독은 기세등등하게 도심을 오가는 공수부대원들을 봤고, 광주를 뒤흔드는 총성도 들었다.
“영화 시작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박종철의 어머니가 아들 시신이 안치된 한양대병원에 들어서던 때 첫울음이 터지더군요. 이후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봉 감독이 그 시대를 몰랐던 건 아니다. 1970년 1월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다. 언제나처럼 만화영화를 보려고 TV를 켰는데 정규방송이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의 시작이었다. 알고 보니 그때 막 ‘5·18 광주 진압 작전’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이후 봉 감독은 기세등등하게 도심을 오가는 공수부대원들을 봤고, 광주를 뒤흔드는 총성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