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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고전환담古傳幻談

‘김유신’이라는 이름의 영생 찰나를 산 필부의 유쾌함

  • | 윤채근 단국대 교수

‘김유신’이라는 이름의 영생 찰나를 산 필부의 유쾌함

김유신 장군 영정. [동아DB]

김유신 장군 영정. [동아DB]

이조판서에 올라 인사권을 틀어쥔 큰형은 집안의 골칫거리였던 날 진천현감으로 내려보냈다. 한양 사대문 밖을 나가본 적 없던 난 낯선 충청도 풍광에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권문세가의 막내가 원으로 왔다는 소문에 인근 고을 수령들이 몰려들었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두 달이 지나서야 진천현 아전들의 관무 보고를 받았고 밀린 옥사를 처리했다. 이상한 사미승을 만난 게 바로 그때였다. 

사미는 장터 국밥집에서 옥천 장돌뱅이들과 시비 붙은 죄로 하옥돼 있었다. 만사가 귀찮았던 난 대충 방면해줄 요량으로 다툰 사연이나 대보라고 심드렁하게 물었다. 녀석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사또님. 이래 봬도 소승이 사람 수명을 봅니다. 길흉은 몰라도 죽을 날짜는 틀림이 없는데 심보 고약한 놈들이 의심하길래 조금 패줬쥬.”


“나는 내일 축시에 죽는다”

시골 관무에 시들해하던 내겐 작은 즐거움이 생긴 셈이어서 이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사미를 조금 더 데리고 놀 심산에 그럼 내 수명을 대보라고 질책했다. 다음 대답 역시 가관이었다. 

“소승보단 오래 사십니다. 축시에 떠나시게 되는데 외로운 팔자시네유. 사람이 안 보입니다. 죄송하지만 전생에 새가 아니었을까 하네유.” 

나는 하도 기가 막혀 한참 동안 녀석을 노려봤다. 집안에서 하라는 성리학 공부를 작파하고 불경이나 도교 수신서를 즐겨 읽던 나로선 흥미로운 맞수를 만난 격이었다. 그날 밤 사미와 난 청사 집무실에서 밤새워 술을 퍼마셨다. 정치에 뜻을 잃은 뒤론 가문으로부터 파문당한 상태여서 딱히 두려울 것도 더 잃을 것도 없었다. 

“소승이 장터를 떠돌며 고기 먹고 술 마시며 희희낙락 즐기는 덴 다 이유가 있어유. 제 나이 이제 열여덟, 내년이면 죽습니다.” 

난 사미의 말을 믿었고 실제로 그는 자신이 예언한 이듬해 가을 어느 날 죽었다. 그날 밤 그에게 들은 사연을 새삼 여기 옮기는 이유는 사람들의 사망 일시를 정확히 맞히던 사미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죽을 시점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일 축시에 죽는다. 죽기 전 가슴에 담아둔 얘기나 쏟아붓는 게 이 초조한 시간을 보내는 데 잠시나마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사미는 진천 관아 동남쪽 두타사의 한 상좌를 스승 삼아 그 밑에서 공양하며 살고 있었는데, 나를 만나기 두 해 전 호랑이에 물려 죽었다는 스승에겐 비밀스러운 친구가 한 명 있었다고 했다. 이 절 저 절을 떠돌며 아궁이에 불이나 때는 탁발승인 화두타(火頭陀)였다. 부목한(浮穆漢)이라고도 불린 이런 떠돌이 운수승(雲水僧)은 충청도에선 보기 드문 존재라 사미는 늘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화두타는 스승인 상좌가 담근 술이 익을 무렵에 딱 맞춰 나타나 밤새 통음한 뒤 새벽에 떠나가곤 했다. 상좌의 명에 따라 사미는 매달 그믐마다 각종 술을 담가 약사전 옆 창고에 보관했고 화두타가 출현하면 술병에 옮겨 승방으로 전달했다. 이런 일이 수십 차례 반복되며 서로의 얼굴에 익숙해졌건만 화두타는 사미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사미가 들을 수 없도록 상좌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 속삭이다가도 누군가 나타나면 말을 끊곤 했다.


정해진 운명

김홍도의 ‘군선도’. [사진제공 한양대박물관]

김홍도의 ‘군선도’. [사진제공 한양대박물관]

스승인 상좌가 죽기 한 달 전, 달밤에 갑자기 나타난 화두타의 표정은 어둡고 목소리는 무거웠다. 그날따라 담근 술이 떨어져 사미는 산 아래 술도가까지 내려가 술독을 지게에 싣고 다시 올라와야 했다. 사미의 수고를 염려한 듯 상좌와 화두타는 산 중턱 은행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사미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을 기회를 잡았다. 화두타가 물었다. 

“다음 달 일어날 일을 알고 있겠지?” 

고개를 끄덕인 상좌가 눈을 감고 대답했다. 

“아네. 알고 있어.” 

화두타가 술잔을 비우고 다시 물었다. 

“받아들일 텐가?” 

염주를 돌리던 손을 멈추고 상좌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게 내 운명일세. 그럼 오늘이 자네와 마지막 밤이 되는 건가?” 

묘한 표정이 된 화두타가 대답 대신 껄껄 웃으며 상좌의 잔에 술을 부었고 은행나무 옆 덤불숲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사미까지 나오게 해 술을 권했다. 그 순간 사미는 처음으로 화두타의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숨이 멎을 만큼 차갑고 무서운 눈동자가 보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어느 날 저녁, 생전 씻기 싫어하던 상좌가 목욕재계를 마치더니 승방에서 새벽까지 묵상에 잠겼다. 옆에서 졸던 사미가 선잠에서 깨어났을 때 상좌가 보이지 않았다. 방문을 박차고 나간 사미는 절 밖으로 이어지며 흩뿌려진 선명한 핏자국을 발견했다. 호랑이였다. 급히 종을 쳐 경보를 발령한 그는 젊은 중들을 모아 횃불을 밝히고 핏자국을 따라 추적에 나섰다. 상좌는 산 중턱 은행나무 아래 가지런히 누워 숨져 있었다.
 
스승의 다비식이 끝나고 잔불을 정리할 즈음 화두타가 다시 절에 나타났다. 나뭇가지로 사리를 골라내고 있던 사미는 그에게 엎드려 절하며 물었다. 

“스님께선 뉘시길래 앞날을 미리 보시나유? 스승님께선 극락왕생하신 거쥬?” 

화두타는 불이 완전히 꺼지고 사리가 모두 수습될 때까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초저녁 초승달이 떠오를 무렵 세 번 크게 소리 내어 운 화두타는 몸을 돌려 절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미는 도를 깨우칠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 준비도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북쪽 옥녀봉에 이르도록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던 화두타가 갑자기 포효했다.

“따라오지 마라.” 

그 자리에 무릎 꿇은 사미는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소승, 이제 의지할 스승도 없슈. 제발 제자가 되게 해주세유.” 

사미가 고개를 들자 화두타는 이미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사미가 아무리 달려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둘 사이의 간격은 옥녀봉을 넘어 장군봉에 이르도록 그대로였다. 사미는 필사적으로 뛰며 시야에서 화두타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화두타는 길이 없는 가시덤불을 지나 암벽을 타고 오르더니 무제봉 쪽으로 벼랑을 건너뛰었다. 발바닥이 찢기고 무릎이 까져 피범벅이 된 사미는 목숨을 하늘에 맡긴 채 몸을 날렸다. 건너편 절벽 노송 가지 끝에 옷이 걸려 간신히 살아난 사미의 눈에 파리한 달빛이 비쳤다. 그는 통곡했다. 화두타를 놓치면 그의 남은 생은 뻔한 것이었다. 의미 없는 수행 속에 평범하게 늙어갈 게 분명했다. 기를 쓰고 절벽을 기어오른 사미는 화두타가 사라진 방향으로 구르듯 내달렸다. 

화두타는 무제봉 기슭 바위에 앉아 사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천천히 다가간 사미가 쓰러지듯 엎드려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이 지겨운 속세를 벗어나고 싶어유. 길을 알려주시면 뭐든지 할게유.” 

크게 한숨을 내쉰 화두타가 사미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네 스승과 난 수백 년을 사귀었다. 너를 받아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느냐?” 

“수백 년 사귀셨다면 두 분 다 신선이 아닌가유?” 

“네 눈에는 그리 보일 것이다. 뭐, 어떠냐. 남보다 오래 살 운명도 있는 법이다.” 

“성불이건 득선이건 소승도 하고 싶어유. 태어난 뜻이라도 알고 죽게 해주세유.” 

사미의 이마를 짚어 일으켜 세운 화두타가 다시 뒤돌아서며 침울하게 말했다. 

“네 충심은 비상하다만 수명이 부족한 걸 어쩌겠느냐? 도를 얻기 전에 죽고 말 팔자니라.” 

말을 잃은 사미가 우두커니 화두타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 삼키는 소리만이 자신의 목울대를 울렸다. 우주가 갑자기 정지한 것 같았다. 

“수명이 조금 짧구나. 너에게 수행은 무익할 뿐이다. 그러니 저자에 나가 하고픈 대로 맘껏 살거라. 이제 3년 남았다.” 


김홍도의 ‘운상신선도’. [사진출처 단원미술관]

김홍도의 ‘운상신선도’. [사진출처 단원미술관]

말을 마친 화두타는 무제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제자리에 얼어붙었던 사미가 털썩 주저앉아 절을 올리자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화두타가 말했다. 

“사람 수명을 보는 눈은 가질 것이다. 그게 네게 주어진 전부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사미는 내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놀라운 얘기를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엔 떨림이 없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청사 동쪽에서 새벽 햇살이 번져오자 사미가 타령 한 곡을 부르다 말고 속삭였다. 

“화두타 스승이 무제봉 너머로 사라져갈 때도 이 시각쯤이었어유. 아침이 찾아와 온 세상이 밝아졌는데 제 마음은 어둠 속에 가라앉고 있었쥬. 모처럼 태어났는데 이게 뭐여유? 고작 남들 죽을 날만 알려줄 팔자였어유.” 

지금 생각해보니 내 팔자는 사미만도 못해 겨우 제 죽을 날짜만 깨닫고 갈 운명이었던 거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제 인생 정리할 준비도 못 하고 황망히 이승을 떠나는 게 비극 아니던가? 적어도 난 죽음을 가슴에 새기고 쓸데없는 권력놀음에 삶을 허비하진 않았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사미와 난 망년의 벗이 되어 하루하루를 소중히 즐겼고 덕분에 유배지 같던 진천에서의 삶은 한바탕의 유희장으로 변모했다. 

이듬해 가을 장터에서 춤추며 놀던 사미가 급사했을 때를 기억한다. 환속한 중을 흔히 중속한(重俗漢)이라 불렀는데 중속한을 화장해줄 절은 어디에도 없었다. 난 고을 서쪽 백석봉 아래 암자로 손수 시신을 운구해 정성스레 다비해주었다. 나오지도 않을 사리를 장난 삼아 찾다가 타다 남은 뼛조각 몇 개를 골라 양지바른 곳에 묻고 술을 잔뜩 부었다. 우리의 놀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사미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나는 중요한 질문 하나를 놓쳤음을 깨달았다. 주변 친지와 벗들의 수명까지 죄 알아내고서도 정작 내 죽을 날을 묻지 않았던 것이다. 후회가 막급이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운명이었을까? 진천현감 자리를 박차고 한양으로 돌아가려 하던 어느 날 화두타가 나타났다. 

화두타는 고을 사람들이 태령산(胎靈山)이라 부르던 산기슭에 곱사등이 모양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송덕비를 세워주겠다는 아전들을 뜯어말리고 대신 한 상 차려놓고 진탕 놀던 밤이었다. 모두 취해 떨어지고 뭔가에 홀린 듯 오솔길을 따라 산에 오른 나는 동그랗게 말린 마른 몸뚱이가 화두타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먼저 말을 걸어온 건 그였다. 


충북 진천의 김유신 장군 생가터. 김유신은 신라 진평왕 17년(595)에 태어났다. 김유신 장군의 탯줄은 탄생지 뒤편 태령산에 묻은 것으로 전해진다. [뉴시스]

충북 진천의 김유신 장군 생가터. 김유신은 신라 진평왕 17년(595)에 태어났다. 김유신 장군의 탯줄은 탄생지 뒤편 태령산에 묻은 것으로 전해진다. [뉴시스]

“댁이 조선팔도를 휘어잡은 안동 김문의 막내 자제신가?” 

신기하게도 그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말벗을 만난 것 같은 벅찬 감흥이 안에서부터 복받쳤다. 고개를 끄덕이는 날 물끄러미 쳐다보던 화두타가 벌떡 일어섰고 팽팽하게 긴장한 그의 육신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건 강인한 장수의 몸이었다. 

“사미 녀석을 잘 대해줘 고마웠어. 좋은 곳으로 가진 못했지만 어쨌든 업은 벗어났으니 뭐 잘된 거 아닌가? 어때, 선비 양반?” 

그 순간 상대가 화두타임을 깨닫고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사람 몸뚱이로 화한 신선을 두 눈으로 목도했다는 기쁨에 전신이 전율했다. 내 목소리가 떨렸었던가?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저를 기다리신 건지요?” 

화두타는 오래도록 날 쳐다봤고 그의 두 눈동자는 샛별처럼 빛났다. 잠시 후 다시 쪼그리고 앉은 그는 마을 쪽을 내려다보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불멸의 외로움을 자넨 아나? 나 같은 운명은 말 건넬 사람 만나기가 정말 힘들다네. 상좌 덕분에 몇 백 년 버텼어. 이젠 누굴 만나는 재미로 살아야 하지?” 

영원을 사는 신선의 초라한 독백에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무슨 말인가 해야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화두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사미 녀석이 마지막 희망이었어. 상좌가 소개해주더군. 잘만 다루면 1000년은 버틸 선골을 타고났다면서. 하지만 명이 짧더군. 틈나는 대로 절을 찾아가 확인했지만 명이 조금 짧았어. 물론 녀석은 몰랐을 거야.”


화두타와의 만남

나는 그제야 상좌의 비밀을 깨달았다. 그는 제자인 사미를 화두타의 다음 말벗으로 남겨주려 한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제자의 명수를 늘려보려 최선을 다했으리라. 어느 순간 내 옆에 다가온 화두타가 은근한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자네, 도를 닦을 생각은 없나? 적어도 100년은 보장하지. 어때? 잠시 내 말벗이 되어줄 수 있겠나?” 

솔바람이 불어와 귓가를 스쳤고 상대가 한 말이 여러 차례 공명을 내며 반복됐다. 취기가 사라졌다. 생전 해보지 않은, 인생을 건 결단을 해야 할 순간이었다. 난 고개를 저었고 화두타는 맥없이 웃으며 뒷짐을 지었다. 그렇다. 난 불멸을 원치 않았다. 이승을 어슬렁거리다 적당한 때에 소멸하는 게 좋았다. 과연 잘한 선택이었을까? 

화두타가 알려준 죽을 날이 바로 내일, 축시. 적어도 아직 난 후회가 없다. 화두타의 정체가 태령산에 자신의 태가 묻혀 있던 신라의 장수 김유신이라는 것 정도는 당신도 지금쯤 깨달았으리라. 영원은 그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순간은 그 얼마나 찬란한가.


※ 이 글은 조선 후기 작가 이옥의 작품 ‘부목한전’을 토대로 하되 이를 새롭게 변형했다. 충북 진천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작가 이옥은 신비한 인물 화두타를 능력을 감추고 사는 이인으로만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이 글과 달리 ‘부목한전’의 상좌와 사미는 화두타의 이인다움을 드러내는 보조 인물들로 출현할 뿐이다. 한편 충북 진천에는 김유신의 태가 묻혀 있다는 태령산이 현존하며 그와 연관된 다양한 유적과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신라 왕족 ‘만명’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나눴는데 만명은 만노군(萬弩郡), 즉 지금의 충북 진천 태수로 부임한 김서현을 따라와 그곳에서 김유신을 낳았다. 김유신이 태어난 생가 터는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 있다. 화두타를 김유신으로 설정한 것은 필자가 진천을 방문하며 잠시 떠올린 소설적 상상의 소산이다.


‘김유신’이라는 이름의 영생 찰나를 산 필부의 유쾌함

윤채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신동아 2018년 5월 호

| 윤채근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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