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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빌보드를 ‘부수다’

방탄소년단 빌보드 1위의 숨은 의미

  •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케이팝, 빌보드를 ‘부수다’

  • ● 한국인이 만든, 한국인이 부른, 세계인의 음악
    ● 반짝 인기 넘어 ‘브랜드’가 된 그룹
    ● 변방에서 중심까지, 방탄소년단이 흘린 피, 땀, 눈물
    ● 한국형 팬덤의 세계화, 글로벌 ARMY
[라스베이거스=AP 뉴시스]

[라스베이거스=AP 뉴시스]

5월 28일,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 轉 ‘Tear’’가 빌보드 200 차트에 1위로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날 저녁, 일본인 음악관계자와 자리를 함께했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와 절친이기도 한 그는 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그가 방 대표에게 보낸 축하 메시지에 대한 답장이 찍혀 있었다. 

“우리가 역사를 만들고 있다.” 

짧은 문장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1위 기록은 비(非)영어권 앨범으로는 12년 만, 한국 앨범으로는 사상 최초다. 속을 들여다보면 그 의미는 더욱 크다. 12년 전 빌보드 정상에 오른 팝페라 그룹 일 디보의 ‘Ancora’는 TV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사이먼 코웰이 제작한 음반이다. 소니 뮤직을 통해 배급됐다. 즉 미국 메이저 음반사의 자본과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음반이다. 단지 팝페라라는 장르 특성상 음악가의 국적이 미국이 아니었을 뿐이다.


방탄소년단이 새로 쓴 역사

반면 ‘LOVE YOURSELF 轉 ‘Tear’’는 철저히 한국 자본에 의해 제작됐다. 모든 멤버가 한국인임은 물론이고 프로듀싱을 포함한 제작 과정 일체가 한국 시스템을 거쳤다. 즉 이 음반의 빌보드 ‘정복’은 단순히 ‘비영어권 언어’ 음반을 넘어 ‘비영어권 제작’ 음반이 미국 시장의 정점에 우뚝 섰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도 백인, 흑인, 히스패닉이 아닌 동양 청년들의 음반이 말이다. 

빌보드는 세계 음악 시장의 나스닥이다. 차트를 통해 보여주는 팝 시장의 동향이자, 대중의 무의식을 읽는 지표다. 이 차트는 단지 미국 시장뿐만 아니라 월드뮤직 차트 등 100개를 훌쩍 넘는 수많은 하위 차트를 통해 세계 대중음악의 흐름을 장르별, 지역별로 보여준다.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음악 시장이 블록화, 로컬화함에 따라 영미권 팝이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었지만 빌보드의 권위는 여전하다. 그것은 이 차트가 단순히 인기 순위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대중이 음악을 듣는 방식의 변화를 집계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방탄소년단이 1위로 진입한 ‘빌보드 200’은 앨범 차트다. 애초에는 순수한 음반 판매량만으로 순위를 집계했지만 현재는 다운로드와 스트리밍까지 반영한다. 각각의 요소가 서로 다른 가중치를 갖는다. 스트리밍 1500회가 음반 1장 판매와 같은 비중을 갖는 식이다. 

빌보드 싱글 차트인 ‘핫100’ 선정에는 좀 더 복잡한 기준이 적용된다. 다운로드, 스트리밍, 미국 내 라디오 선곡과 신청 횟수, 유튜브 조회 수까지 반영한다. 과거에는 술집 주크박스에서 재생된 횟수, 그보다 최근에는 싱글 음반 판매량도 중요 지표였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옛말이 됐다. 이렇다 보니 한국 차트나 아이튠즈 차트에 비할 바 없는 전체 흐름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1958년 처음으로 차트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빌보드가 세계 최고 자리를 지켜온 이유다.


원 히트 원더 넘어 ‘브랜드’가 되다

이렇게 변화한 빌보드 시스템을 태평양 건너 한반도에서 체감한 때는 2012년 ‘강남스타일’ 때였다. 머나먼 세상이라고만 생각하던 빌보드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매주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뭐랄까, 설악산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대에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한국 산악인의 등정기와도 같았다. 지난 세기에 ‘배철수의 음악 캠프’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팝스타가 매주 벌이는 격전에 귀를 기울이던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이런 일은 빌보드 집계 방식의 변화 덕에 가능했다. 방송과 음반 판매량이라는 옛 기준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유튜브 조회 수라는 새로운 기준이 더해졌기에 ‘강남스타일’의 드라마가 쓰일 수 있었다. 즉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변되는 뉴미디어 혁명이 세계 대중음악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발점이 ‘강남스타일’이었다. 

그 배턴을 이어받은 자, 바로 방탄소년단이다. 그들은 훨씬 빠르고 강하게 달려왔다. 먼저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진입사를 살펴보자. 초기 그들은 방탄소년단의 이름을 국내외에 알리기 시작한 2015년 ‘화양연화’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화양연화 Pt.2’로 빌보드 171위, 후속작 ‘화양연화 Young Forever’로 101위에 올랐다. 2016년 정규 2집 ‘WINGS’는 이들이 시동 걸기를 마치고 본격 질주를 시작했음을 세상에 알렸다. 이 앨범은 빌보드 26위까지 올랐으며 한국 대중음악 음반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뭔가 심상치 않은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7년 시작한 새로운 연작 시리즈 ‘Love Yourself 承 ‘Her’’는 빌보드 200에서 7위까지 올랐으며 핫100에서는 ‘DNA’로 67위를, ‘Mic Drop remix’로 28위를 찍었다. 이 앨범의 성과로 그해 빌보드 어워드에서 소셜미디어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LOVE YOURSELF 轉 ‘Tear’’로 결국 정상에 오르고야 말았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강남스타일’과의 차이점이다. 2012년으로 기억을 돌려보자. 그해 유튜브는 ‘강남스타일’이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조회 수가 100만, 1000만 단위로 달라져 있었다. 마침내 최다 조회 수 기록을 경신했고, 그 결과가 핫100 2위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싸이의 후속곡인 ‘젠틀맨’과 ‘행오버’의 성과는 ‘강남스타일’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말 그대로 원 히트 원더였다. 왜 그랬을까. 이 신드롬의 주인공은 엄밀히 말해 싸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래와 뮤직비디오였다. 이는 ‘강남스타일’이 한 해를 강타한 히트 상품이었을 뿐 싸이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얘기다. 

반면 방탄소년단의 성공 과정은 그들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인정받는 브랜드는 대부분 치밀한 기획과 자본, 마케팅 등의 플랜이 뒷받침될 때 탄생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자구책으로 시작한 시도가 대중의 욕망과 맞아떨어지고 시대와 만나 뜻하지 않은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방탄소년단은 어쩌면 후자일지도 모른다.


중소 기획사의 이름 없는 신인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 차트 빌보드는 5월 28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방탄소년단 3집 ‘LOVE YOURSELF 轉 ‘Tear’’가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고 알렸다. [빌보드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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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 차트 빌보드는 5월 28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방탄소년단 3집 ‘LOVE YOURSELF 轉 ‘Tear’’가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고 알렸다. [빌보드홈페이지 캡처 ]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2005년 설립됐다. JYP의 프로듀서였던 방시혁 대표가 설립했다. 초기에 이 회사의 이름을 알린 팀은 2AM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매니지먼트 계약이었을 뿐, 이 팀의 소속사는 여전히 JYP였다. 그 후 방탄소년단이 데뷔하기까지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이 회사 소속 음악인보다 방시혁 대표 이름이 훨씬 더 알려져 있었을 정도다. 방탄소년단이 데뷔한 2013년은 이미 SM, YG, JYP 3사 이외에도 큐브, FNC등 굵직굵직한 기획사가 사실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군소 기획사 소속, 그것도 신인이라면 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방송 출연도 다른 회사에 밀리기 일쑤고, 음원 유통사의 홍보 혜택도 많이 받지 못한다. 아이돌이 내수산업에서 수출산업이 되면서 전략적으로 끼워 넣는 해외 멤버도 이들에겐 언감생심이었다. 

아무리 아이돌 팬층의 연령대가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돌은 10대 문화다. 특히 보이 그룹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들이 10대 문화에서 전 연령층을 커버하는 인지도를 쌓으려면, 즉 변방에서 출발해 중원을 점령하려면 셋 중 하나의 코스를 거쳐야 한다. 첫째, 메가 히트곡을 통해 음악계 흐름을 바꿔놓는 것. 둘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박을 치는 것. 마지막이 ‘역수입’ 코스를 밟는 거다. 장르를 막론하고 해외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면 국내에서 평가가 확 올라가기 마련이다. 아이돌 음악이 국내에서도 케이팝이라 불리게 된, 그리하여 연예면뿐 아니라 문화면에도 등장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2011년 SM타운의 파리 공연 아니었던가.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사실 이 셋 모두를 쉽게 노릴 상황이 아니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팬덤을 구축하고 시작하는, 데뷔 전부터 몇 달치 방송 스케줄을 잡고 출발하는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이 ‘이겨놓고 싸우는’ 형국이라면 방탄소년단은 정말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들이 택한 것은 인터넷이었다. 대안이 없었다. 음원 데뷔가 2013년 10월이었던 반면, 이미 2012년 말부터 블로그와 트위터를 개설하며 SNS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스토리가 시작되는 건 바로 여기서부터다.


방탄소년단만의 역동성

요즘 같은 시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들이면서 SNS 채널을 만들지 않는 경우는 없다. 문제는 무엇으로 채우느냐다. 대부분은 공식 뮤직비디오, 천편일률적인 인사말, 활동 홍보에 그친다. 방송을 비롯한 올드 미디어의 부속 플랫폼에 머무는 것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쉴 틈 없이 콘텐츠를 쌓아 나갔다. 

그들이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첫 번째로 집중한 킬링 포인트는 바로 ‘칼군무’다. 2016년 말, 홍콩에서 열린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 참석했을 때다. ‘난다긴다’ 하는 아이돌이 한자리에 모였다. ‘불타오르네’를 비롯한 여러 히트곡을 부른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그날 처음으로 봤다. 충격이었다. 평소 아이돌의 공연에 그다지 호감을 갖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압도적이라 하기 충분했다. 다른 참가팀들의 무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단지 춤을 잘 추기 때문은 아니었다. 힙합과 EDM을 기반으로 하되 록적인 장치를 잘 녹여내는 그들의 음악에 맞는 역동적 자극이 꿈틀댔다. 종류는 다르되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자극이었다. 10대 후반, 당시 음악 좀 듣는 친구들이라면 필수적으로 들었던 헤비 메탈의 그것과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음악인을 만나 그때의 소회를 이야기했다. 그는 말했다. 

“요즘 애들한테는 방탄소년단이 우리 때 메탈이야.” 

퍼포먼스는 시각에 호소한다. 인간의 모든 감각 중 시각은 가장 즉각적이고 뇌에서 차지하는 영역도 크다. 무엇보다 언어를 뛰어넘는다. 괜히 뮤직비디오의 등장이 라디오를 죽였다는 게 아니다. 여타 한국 아이돌보다 방탄소년단의 안무는 역동적이다. 7명도 충분한 것 같은데 많은 백댄서까지 동원해 스케일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동작은 손끝 하나까지 합이 딱 맞는다. 디테일이 폭발한다. 스케일과 디테일, 그리고 파워가 만나 형성되는 스펙터클, 방탄소년단이 세계적 팬덤을 구축한 첫 번째 동인이다. 

유튜브의 큐레이션이건 친구 추천을 통해서건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나 방송 출연 영상을 한번 본 사람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2015년을 전후해 유튜브에서는 ‘리액션 비디오’가 유행했다. 뮤직비디오, 영화 등을 처음 시청하는 이의 반응을 보여주는 이 비디오에서 방탄소년단의 영상은 큰 화제가 됐다. 리액션 영상을 보던 이들 역시 방탄소년단의 스펙터클을 보고 같은 표정을 지었다. 케이팝에 관심 없던 북미권에 BTS(방탄소년단)라는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였다.


스스로 플랫폼이 되다

하나의 인기 상품이 브랜드가 되려면 충성도 높은 고객이 있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면 계속해서 양질의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다. 그것이 들을 거리든 볼거리든. 칼군무에 반해 방탄소년단에 호기심을 느낀 이들을 팬덤의 가두리양식장으로 끌어들인 건 바로 그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방대한 콘텐츠였다. RM을 비롯한 멤버들의 자작곡을 일찌감치 선보이고, TV 출연이 예정돼 있으면 그에 앞서 유튜브에 방송국 복도에서 안무를 연습하는 영상을 올렸다. 공식 활동이 없을 때도 멤버들의 자잘한 일상 및 음악과 팬에 대한 가볍고 진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했다. 모든 콘텐츠는 오직 방탄소년단 공식 계정을 통해서만 선보였다.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V-앱 등 점점 채널이 늘어나고 콘텐츠가 쌓여갔지만 그 어떤 내용도 멤버들의 개인 계정으로 분산하지 않았다. 팬이 모이는 창구를 단일화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다. 

사람의 외모에 반하면 그 사람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고, 남이 모르는 것을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게 보편적 심리. ‘유사연애’에 가까운 아이돌 산업에서 방탄소년단은 화려한 무대와 민낯의 일상을 여과 없이 팬들에게 제공했다. 방송 등 기존 콘텐츠보다 자체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저작권 등의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거뒀다. 또한 후작업 등의 시간을 줄여 그들의 행동 시점과 팬들의 소통 시점에 시차가 발생하지 않는 이점도 있었다. 세계 각국으로 뻗어나가는 팬덤은 구글 번역기를 돌려 자국어 자막을 입혀가며 방탄소년단의 콘텐츠를 다국적화했다. 호구지책으로 택한 태초의 활동 방향이 어느덧 그들 스스로를 플랫폼으로 만든 것이다. 

뛰어난 퍼포먼스가 있고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소통이 있다. 그다음에는? 메시지다. 모든 뛰어난 브랜드는 비주얼과 스토리, 그리고 메시지가 있는 법 아니겠나. 음악인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다면 아이돌과 아티스트다. 아이돌이 음악 ‘산업’을 대표한다면 아티스트는 ‘음악’ 산업을 대표한다.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얻으려면 자기 음악을 직접 창작할 수 있어야 한다. 방탄소년단은 데뷔 때부터 스스로의 음악을 직접 만들어왔다. 아이돌 시스템이라고 하는 컨베이어 벨트의 통제권을 상당 부분 소유해온 것이다. 남이 만들어준 노래와 내가 만든 노래에서는 필연적으로 진정성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생긴다. 

듣는 사람에게도 차이가 있다.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의 음악에 자기 또래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는다. 심오하다고 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뻔한 사랑 노래는 아니다.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지역을 초월해 청춘이라면 겪는 문제들이다. 발현하는 자아를 둘러싼 고민, 학교 생활에서 겪는 소외감 등등 말이다. 방탄소년단의 팬들은 그들이 환상 속이 아닌, 현실 속에서 자신들을 위해 노래한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밀레니얼 세대에게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는 예전 너바나, 투팍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방탄소년단의 가사를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나온 건, 그저 상술에 머물지는 않을 것 같다.


밀레니얼 세대의 히어로

[스포츠동아]

[스포츠동아]

방탄소년단은 이 세 과정을 거쳐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단순한 케이팝 스타 자리를 넘어 밀레니얼 세대의 히어로가 됐다. 그들의 성공 이전, 틴 팝을 대표하던 저스틴 비버와는 다른 ‘아티스트’로서의 뉘앙스를 간직한 채. 

방탄소년단의 충성스러운 팬덤은 ‘ARMY(군대)’라는 공식 명칭에 맞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그들과 함께 행동했다. SNS를 하나 업데이트할 때마다 #BTS라는 태그를 달고 주변에 방탄소년단을 알렸다. 한국 아이돌 팬덤의 단순한 소비를 넘어 응원과 충성을 아끼지 않는 독특한 문화가 세계 방탄소년단 팬덤으로 확산됐다. 기존 북미권 팝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유형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어워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한 배경에는 SNS의 광활한 초원을 칭기즈칸의 군대처럼 누비고 다닌 ARMY의 활약이 있다. 그들과 함께 방탄소년단은 마침내 빌보드 정상에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 

빌보드는 의외로 보수적이다. 애초 빌보드 메인 차트는 컨트리, 스윙 등 오직 백인 음악을 다루는 차트로 시작했다. 로큰롤의 시대를 거치며 흑인과 백인이 한 차트에 머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히스패닉 인구가 증가하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같은 라틴계 뮤지션이 시장에 편입됐다. 그러나 동양인의 자리는 나지 않았다. 디 라이트, 린킨 파크 등 백인 중심 팀의 멤버로 머물렀을 뿐이다. LA 교포들이 중심이 된 그룹 ‘파 이스트무브먼트(Far East Movement)’가 ‘Like A G6’로 2016년 빌보드 핫100 정상을 밟은 데 이어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200의 1위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의 진정한 성과는 그들의 앨범에 한국어 가사가 포함됐으며 미국 국적을 가진 멤버가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영미권에서 제작되지 않은 앨범으로 처음 빌보드의 벽을 ‘부쉈다’는 데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케이팝의 선전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팝 시장의 패러다임 시프트다. 방탄소년단은, 역사를 만들고 있다.


신동아 2018년 7월 호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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