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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 멸종위기종 ‘우리가 지켜줄게’

용인 한택식물원

한 남자의 40년, 한국 식물원의 역사를 쓰다

  • | 글·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용인 한택식물원

  • 우리 동네 뒷산에 오르는 것 같은 편안함. 한택식물원의 첫인상이 그랬다. 하지만 비봉산 자락 전망대에 올라 식물원 전체를 조망하니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마다 거기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한 남자의 집념이 한국 식물원의 역사를 썼다.  
용인 한택식물원
‘하얗게 피어난 얼음꽃 하나가 달가운 바람에 얼굴을 내밀어 아무 말 못했던 이름도 몰랐던 지나간 날들에 눈물이 흘러…’(박효신 노래 ‘야생화’에서) 

가을 문턱에 선 10월 초, 용인 한택식물원 모란작약원 앞에 서니 문득 이 노랫말이 떠올랐다. 지난봄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모란과 작약은 사라졌지만 저 땅 밑에선 복수초가 또 내년 봄을 기약하고 있을 것이다. 복수초는 이른 봄 얼음을 뚫고 피어나 얼음새꽃이라고도 한다. 

“한택식물원은 1995년 중국 베이징식물원과 상호교류협약을 맺고 모란 350품종, 작약 80품종을 기증받아 이 정원(모란작약원)을 조성했습니다. 작약 사이사이에 복수초, 산개불주머니를 심고 곳곳에 피나무와 팥배나무를 심었어요. 이른 봄 복수초가 필 때에는 나뭇가지에 잎이 하나도 없어 햇살을 받기 좋고, 반그늘을 좋아하는 작약이 피는 5월 무렵이면 나뭇잎이 무성해져서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복수초에 이어 노란 산개불주머니가 나오고 그다음 모란과 작약이 경쟁하듯 꽃을 피우고 어느새 나무 그늘이 깊어질 때면 복수초는 휴면에 들어갑니다. 이처럼 한택식물원의 정원은 생태계의 순환에 맞춰 조성됐습니다.” 


왜승마

왜승마

참취

참취

상록인동

상록인동

과남풀

과남풀

용왕꽃

용왕꽃

21년째 한택식물원을 지키고 있는 강정화(49) 식물관리팀·식물연구소 이사의 설명을 듣노라니 식물원의 사계가 파노라마 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한택식물원에는 이런 테마가든이 36개 있다. 아이리스원, 원추리원, 침엽수원, 무궁화원, 숙근초원, 암석원, 관목원, 나리원, 억새원, 음지식물원, 수생식물원, 희귀식물원, 호주온실, 중남미온실, 남아프리카온실 등 어디를 가든 이름을 불러주기만 기다리는 사연 많은 식물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식물원 내 침엽수길, 계류원, 백송길, 매화길, 목련길, 산수유길, 아까시나무길, 구상나무산림욕장 길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다.


소 키우다 식물에 미쳐

생태원 산책길

생태원 산책길

산딸나무

산딸나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153번지 비봉산 자락에 한택식물원이 정식 개원한 것은 2003년 5월이나 시작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원 준비기간만 무려 24년. 1998년 본격적으로 식물원 조성이 시작되고도 개원까지 5년이 더 걸렸다. 그사이 식물원은 개인 자산이 아닌 식물을 사랑하는 모든 이가 공유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바꾸었고(2001년), 이듬해 환경부로부터 희귀멸종위기 식물들의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받았다. 이택주(77) 원장의 집념이 없었다면 현실이 될 수 없는 몽상이었다. 


이택주 한택식물원장.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한택식물원을 한 번씩은 방문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과 대통령비서실장 시절 네 차례나 다녀갔다. 이 원장은 반디지치(지치과 여러해살이풀)에 대해 진지하게 묻던 문 대통령의 모습을 기억했다.

이택주 한택식물원장.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한택식물원을 한 번씩은 방문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과 대통령비서실장 시절 네 차례나 다녀갔다. 이 원장은 반디지치(지치과 여러해살이풀)에 대해 진지하게 묻던 문 대통령의 모습을 기억했다.

“처음엔 목장을 했어요. 외국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초지가 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거기에 소를 방목하는 게 꿈이었어요. 회사(건설회사)를 그만두고 고향 용인 선산에 초지를 일궈 소를 키웠는데 한 마리에 150만 원 주고 산 소가 2년 반 키웠더니 90만 원으로 폭락하더군요. 목장을 접고 나무를 심었는데 자꾸 말라죽는 거예요. 전문가가 가르쳐준 대로 했더니 더 잘 죽어요. 안 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유럽 30여 개국을 돌며 식물원을 견학했죠. 그때 유엔 가입국 중 식물원이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것을 알고 결심했죠. 내가 식물원을 하자.” 

결심한다고 식물원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식재할 식물이었다. 우리나라 식물원이라면 당연히 우리 식물이 있어야 하는데 자생식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키우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부터 이 원장은 직접 전국을 돌며 야생화를 채집했다. 설악산 만주바람꽃, 울릉도 두메부추, 한라산 고산술패랭이, 주왕산 둥근잎 꿩의비름. 이 땅의 자생식물이 하나둘 비봉산 자락으로 옮겨졌다. 현재 한택식물원이 보유한 식물 9700여 종 가운데 자생식물만 2400여 종에 달한다. 또 ‘천리포수목원은 목련, 한택식물원은 산딸’이라 할 만큼 한택의 대표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산딸나무는 약 250품종을 보유하고 있어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6~7월에 흰꽃이 피고 딸기 모양의 빨간 열매가 달려 산딸나무라 불리는 이 나무는 자생식물인 데다 관상 가치도 커서 최근 도심 공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좀개미취

좀개미취

“식물원은 일단 많은 종을 보유해야 해요. 기본종을 확보하는 것이 곧 국력이에요. 지구상에 식물 기본종이 25만~30만 종 있는데 그중에 인류에게 이로운 식물을 누가 많이 가지고 있느냐로 경쟁하는 게 ‘종자전쟁’이죠. 미국이 6만 종, 독일이 5만 종, 영국이 4만5000종을 보유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3500여 종인데 한택식물원이 제일 많아요.”


멸종위기 식물 너의 이름은…

가시연꽃

가시연꽃

가시오갈피

가시오갈피

각시수련

각시수련

개병풍

개병풍

매화마름

매화마름

삼백초

삼백초

섬시호

섬시호

나도승마

나도승마

노랑만병초

노랑만병초

단양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대청부채

대청부채

독미나리

독미나리

백부자

백부자

산작약

산작약

가시연꽃, 가시오갈피, 개병풍, 노랑만병초, 단양쑥부쟁이, 대청부채, 독미나리, 백부자, 산작약, 순채, 연잎꿩의다리, 층층둥글레, 털복주머니란, 홍월귤, 날개하늘나리, 솔붓꽃, 제비붓꽃, 각시수련. 한택식물원이 환경부 지정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서 관리하고 있는 멸종위기 식물 18종이다. 환경부 지정종 외에도 한택식물원의 멸종위기종에는 나도승마, 섬시호, 섬개야광나무, 삼백초가 있다. 

이 원장이 비봉산 자락에 첫 삽을 꽂은 지 내년이면 40년이다. “야생화가 뭐냐”고 하더니 이제는 꽃이름을 줄줄 읊고 사진 찍어 올리는 자칭타칭 야생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이 원장이 보기엔 아직도 멀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식물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일 거요.” 뜬금없이 내뱉은 이 말엔 뼈가 있다. 1990년대 초 한창 전국을 다니며 채집하다 보니 ‘북한도 우리나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직접 북한으로 가서 채집할 수 없다면 우회하는 방법을 찾았다. 중국이었다. 삼고초려 끝에 베이징식물원 원장을 만나 컴퓨터를 기증하고 상호교류협약을 맺은 뒤로는 비교적 쉽게 북한 접경지역의 식물들을 채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국내에 반입한 그 식물들은 다 죽고 말았다. 고산식물이라 생태적으로 맞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기에 이 원장은 “야생화 이름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키우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식물원은 단순히 예쁜 꽃의 전시장이 아니라 생태교육의 현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곳에선 9월 29일부터 10월 28일까지 들국화·단풍 페스티벌이 열린다. 지난여름 무더위에 시달려 일찍 잎을 떨군 나무가 많지만 그래도 계절의 순환에 따라 숲은 어김없이 물들기 시작했다. 단풍과 국화마저 떨어지면 숲은 침묵에 들어간다. 눈이 오면 드문드문 찾아오던 관람객의 발길마저 끊긴다. 하지만 식물원의 겨울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암석원 연못.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낙우송은 방송에 자주 소개돼 유명해졌다.

암석원 연못.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낙우송은 방송에 자주 소개돼 유명해졌다.

“겨울엔 꽃이 없으니까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무의 본래 모습을 보려면 겨울이 좋아요. 잎에 가려졌던 수형(樹形)과 수피(樹皮)가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목련처럼 털코트를 입은 꽃눈을 보는 것도 겨울 정원의 매력이죠.”(강정화) 

숲에는 벌써 첫서리가 내렸다.


신동아 2018년 11월 호

| 글·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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