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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두운 그림자를 최고의 친구로 만들기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내 어두운 그림자를 최고의 친구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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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두운 그림자를 최고의 친구로 만들기
얼마 전 영화 ‘러더리스(Rudderless)’를 보며 자신의 가장 아픈 그림자와 마주하는 게 얼마나 쓰라린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아들이 총기난사 사건에 연루돼 사망하자, 아버지는 그야말로 영화 제목처럼 ‘방향타를 잃은’ 상태로 표류한다. 아버지는 고통스럽게 죽어간 아들을 마음껏 그리워할 자유조차 누리지 못한다. 아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중 삼중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일자리마저 잃고, 초라한 보트에서 난민처럼 살아간다. 1년 넘도록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원래 직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페인트공 일을 하며 술에 절어 지낸다. 아들이 죽은 후, 그의 인생 시계는 완전히 멈춰버린 것이다. 전처가 찾아와 아들의 유품인 음악 CD와 전기기타를 전해주고 가자, 그는 비로소 고통스럽게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기 시작한다. 아들과 아버지는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그 아름다운 추억이 이제는 참혹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직장을 잃고, 모든 인간관계로부터 도망치며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도피하려 하지만, 아무리 도망쳐도 사랑하는 아들과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가장 아픈 그림자를 드리울 때,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대면해야만 했다. 자신의 쓰라린 그림자를 돌보지 않는 한, 그는 결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자와 대면하기

그림자와의 대면이란 이토록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림자 전체를 지우고 싶어도, 그림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우리의 존재를 짙게 물들이는 슬픔이다. 과연 이 아픈 그림자와 화해할 수 있을까. ‘그림자와 대면하는 것’은 고통과 우울을 동반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그 자체를 회피하려 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진정한 치유는 ‘그림자와 용감하게 마주하기’부터 시작된다고.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조언한다. 그림자를 계속 부인하는 것은 동전의 뒷면을 문질러 지우는 것과 같다고. 뒷면이 없다면 동전이 가치를 잃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그림자라는 ‘마음의 뒷면’을 통해 비로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콤플렉스, 트라우마, 나아가 무력감과 우울증을 동반하는 모든 감정의 편린들은 그림자의 구성 성분이다. 하지만 그림자로 인한 슬픔을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면 그림자는 오히려 정신적 성장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심리적으로는 괴로움을 느끼더라도 영적으로는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속을 썩이는 아이들을 통해 어머니들이 깊은 슬픔을 느끼면서도 인격적으로는 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강인한 사람들은 고통을 제거하거나 고통으로부터 회피하려고만 하지 않고, 고통을 통해 끝내 성장한다. 고통 자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고통과 친해지는 법’ 또는 ‘고통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그리하여 내면의 그림자야말로 성장의 동력이자 창조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욕망이라는 동전의 뒷면이 바로 ‘내면의 그림자’다. 즉, 그림자는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그늘 때문에 생기는 어두운 그림자다. 자식을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보상받으려 하는 부모는 자식의 ‘성취’에는 환호하지만 자식이 조금이라도 뒤떨어질 때는 좀처럼 참아내지 못한다. 자식의 성취가 곧 자신의 성취라 믿는 가치관 때문에, 자식의 탁월함만이 자신을 빛내준다는 믿음 때문에, 그 부모는 자식의 인생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공부를 잘한다’는 자만심에 빠진 우등생도 마찬가지다. 늘 공부를 잘했던 사람은 조금이라도 남에게 뒤처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공부를 잘한다’는 빛이 ‘자신이 잘하는 공부 말고는 다른 것에 관심이 없거나 무능력한’ 그림자를 만드는 셈이다.

자기 안의 그림자를 인식하려면 먼저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학벌에 콤플렉스가 있다면, 단지 ‘학벌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스스로를 윽박지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뛰어난 사람들을 질투하거나, 그가 가진 지식을 폄하하는 공격적인 행동으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그림자의 고통을 더욱 심화할 뿐이다. 자신이 단지 ‘남이 좋다고 하는 학교’를 나오지 못해서 괴로운 것인지, 진정한 배움의 기쁨을 느껴보지 못해서인지, 지식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지 못해서 괴로운 것인지, 좀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림자의 ‘정체’에 접근해야 한다.

자신과 비슷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를 극복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단한 학벌이 없이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쟁취해낸 사람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진짜 중요한 것은 ‘학벌’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인생을 바꾸는 능력’임을 알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그림자와의 대면을 통해 자기 안의 더 큰 힘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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