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동물萬事

그 많던 ‘긴 뿔 소’는 어디로 갔을까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입력2019-03-3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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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길을 찾다가 아메리카 대륙에 온 것처럼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에서 긴 뿔 소의 시대를 열었다. 콜럼버스가 데리고 온 긴 뿔 소는 아메리카 대륙의 첫 유럽 혈통 소다. 긴 뿔 소는 버펄로를 몰아내고 이 대륙에서 전성기를 열었으나 지금은 극소수만 살아남았다.
    텍사스 롱혼.

    텍사스 롱혼.

    텍사스(Texas)는 미국 연방을 구성하는 50개 주 중 하나다. 미국의 50분의 1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텍사스의 크기가 남다르게 크다.
    텍사스의 면적은 70만㎢에 달한다.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main land) 모든 주 중 가장 넓다. 심지어 서유럽에서 국토 면적이 가장 넓어 농업이 발달한 프랑스보다도 크다. 

    텍사스는 인구도 많다.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라는 초대형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를 두 개나 가진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3000만 명에 육박하는 텍사스 인구는 오세아니아의 대표 국가인 호주(2500만 명)보다 많다.
     
    텍사스는 주민소득이 미국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 경제 규모는 독립국가로 치면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로 크다. 매년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 진입을 놓고 경쟁하는 캐나다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할 정도다.

    독립국 역사 가진 텍사스

    넓은 땅과 많은 인구를 가진 텍사스 사람들은 인심도 넉넉하다. 텍사스인은 도움이 필요한 외지인이나 곤란함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무엇을 도와줄지 먼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음식문화가 유명하다. 미국에서는 예상을 벗어나게 푸짐한 음식이 제공되면 흔히 텍사스 사이즈(Texas size)라고 한다. 여기서 텍사스는 지명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명사인 사이즈를 수식하는 형용사로 빅(big)과 같은 뜻을 가졌다. 그만큼 텍사스의 음식문화가 푸짐한 편이다. 

    넓은 초원을 가진 텍사스는 소를 키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축산 단지로 손꼽힌다. 쇠고기가 많이 생산되는 텍사스는 스테이크, BBQ, 햄버거가 유명한데, 맛도 맛이지만 양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인들은 “텍사스에서는 모든 것이 크다(Everything is big in Texas)”라고 말하기도 한다. 



    텍사스는 28번째 주로 미국에 편입됐지만 한때 독립공화국이던 역사도 가졌다. 스페인 식민 지배 이후 멕시코 통치를 받던 시절 텍사스인들은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텍사스공화국(1836~1845)이라는 독립국을 건국했다. 지금도 텍사스주의 주 깃발은 과거 텍사스공화국 국기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텍사스인은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고, 자존심도 무척 높은 편이다. 

    텍사스 지도를 살펴보면 북부지역이 마치 달걀 프라이를 만드는 프라이팬의 손잡이처럼 기다랗게 튀어나와 있다. 텍사스인들은 그곳을 프라이팬의 손잡이라는 의미를 가진 팬핸들(panhandle)이라고 한다.

    텍사스인의 가슴에 남은 긴 뿔 소

    텍사스대 미식축구팀 상징물은 긴 뿔 소다.

    텍사스대 미식축구팀 상징물은 긴 뿔 소다.

    팬핸들의 주요 산업은 텍사스의 대표 산업 중 하나인 축산업이다. 팬핸들에는 소가 사람보다 더 많다는 말이 있다. 팬핸들에서 자동차 핸들을 잡고 여행을 해보면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많은 소를 볼 수 있다. 

    농장이 즐비한 팬핸들에는 대도시가 없다. 댈러스, 휴스턴, 오스틴 같은 텍사스를 대표하는 도시에 가려면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인구 1만 명도 되지 않는 팬핸들의 소도시인 댈하트(Dalhart)에는 텍사스의 역사, 문화, 자연을 소개하는 XIT라는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 가면 매우 익숙한 인물이 펼친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다. 

    낯선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그는 스페인 국왕 부부의 후원으로 아메리카를 발견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축산업이 발전한 텍사스에서는 스페인으로부터 아메리카로 유럽 혈통의 소를 최초로 데려온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신대륙으로 데리고 온 소는 뿔 길이가 1m 넘는 긴 뿔 소인 롱혼(Longhorn)인데, XIT박물관에 가면 콜럼버스의 긴 뿔 소와 그 후손인 텍사스의 긴 뿔 소(Texas Longhorn)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롱혼은 이름 그대로 긴 뿔을 가진 소다. 과거 텍사스에 많던 롱혼은 이제는 전성기가 지난 동물이다. 그래서 롱혼의 실물을 보기는 어렵지만 롱혼의 지나간 영광이나 흔적을 텍사스에서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미국의 각 주에는 주를 대표하는 대학이 있다. 텍사스에서는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가 그렇다. 한국인 유학생이 많은 텍사스대는 학업 성취도가 뛰어난 대학으로 이름 높다. 

    텍사스대는 학업 성적 못지않게 롱혼스(Longhorns)라고 하는 대학교 스포츠 팀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대학 스포츠 중 미식축구팀의 인기는 여타 종목을 압도한다. 대학 미식축구팀은 프로팀보다 더욱 강한 지역 연고 의식을 갖고 있다. 주민들의 강력한 지원과 응원을 받는다. 텍사스에서 가장 강한 대학 미식축구팀은 롱혼스로 미국 전체에서 최상위권에 속할 만큼 우수하다. 비록 텍사스에서 롱혼이라는 소는 100여 년 전에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텍사스인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콜럼버스의 바닷길

    텍사스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롱혼의 영광과 몰락의 과정을 파악하려면 그 소를 아메리카 대륙에 첫 도입한 콜럼버스의 탐험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특히 그가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1492년과 제2차 탐험이 있던 1493년으로 되돌아가 살펴봐야 한다. 

    1492년 이베리아반도에서 무어인을 몰아내고 반도를 통일한 신흥 스페인왕국의 국왕 부부는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찾겠다는 이탈리아인 콜럼버스를 후원한다. 스페인 왕실의 후원하에 콜럼버스는 오랜 항해 끝에 당시 인도라고 생각했던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다. 

    콜럼버스가 원양 항해를 기획하고 자금을 모은 이유는 단순하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다. 동서고금의 모든 이가 갈구하는 부와 명예를 얻고자 콜럼버스가 선택한 수단은 당시 황금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아 ‘검은 황금’이라고 불린 후추였다. 인도로 가는 바닷길을 개척하려 한 까닭은 후추를 유럽으로 가지고 오는 빠른 길을 열려는 것이었다. 

    향신료 후추는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유럽인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닌 생존에 필수적인 존재였다. 냉장·냉동 기술이 전무하던 시절, 후추는 누린내 풀풀 나는 고기의 잡냄새를 제거하고 풍미를 올려주는 가장 확실한 향신료였다. 

    후추를 사랑하는 유럽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터키인이 후추의 산지인 인도로 가는 길을 장악하고, 비싼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 터키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새로운 바닷길로 인도에서 유럽으로 후추를 가져오는 것이야말로 콜럼버스를 포함한 유럽의 탐험가가 꿈꾸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콜럼버스는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찾은 길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기에 후추를 구할 방법은 없었다. 

    쇠고기 요리와 관련한 콜럼버스의 활동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후추는 찾지 못했지만 엄청난 양의 쇠고기를 생산할 목초지를 찾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메리카 대륙에 속한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쇠고기 생산에 필요한 목초지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180㎝나 되는 긴 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했다.

    1492년 1차 원정에 성공한 콜럼버스는 이듬해 대규모 선단을 구성해 2차 원정에 나선다. 1493년 콜럼버스의 선단에는 스페인의 덩치 큰 소인 롱혼들이 실려 있었다. 롱혼은 수컷 기준으로 180㎝나 되는 긴 뿔을 갖고 있기에 비좁은 배에 많은 수의 롱혼을 싣고 항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콜럼버스가 유럽에서 데려간 롱혼의 숫자는 불분명하지만 그가 데려간 롱혼들이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유럽 혈통 소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콜럼버스가 덩치 큰 롱혼을 좁은 배에 싣고 대서양을 건넌 것은 유럽인의 식문화와 관련이 있다. 한국인은 밥과 김치를 오랫동안 먹지 못하면 힘들어한다. 쇠고기는 유럽인에게 밥과 김치를 합친 존재와 같다. 따라서 콜럼버스는 신대륙에 정착하는 스페인 이주민의 입맛을 위해 소를 배에 실은 것으로 보인다. 신대륙을 안정적인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 스페인 당국의 세심한 준비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1493년 롱혼이 도착하기 이전에도 아메리카 대륙에는 거대한 소과 동물이 존재했다. 후일 미국, 캐나다, 멕시코 땅이 되는 북미의 넓은 초원에는 수천만 마리에 달하는 아메리칸 바이슨(American bison) 또는 버펄로(Buffalo)라고 불린 야생 들소가 살았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버펄로 수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내가 본 자료의 추정치 중 가장 큰 것은 6000만 마리다. 

    버펄로는 선주민인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s)에게 요긴한 존재였다. 그들은 식생활에 필요한 단백질 상당 부분을 버펄로에게서 얻었다. 가죽과 뼈도 요긴하게 사용했다. 가죽은 옷과 텐트로, 텐트의 뼈대는 버펄로의 뼈로 만들었다. 우리 선조들이 “소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첫 유럽 혈통 소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버펄로 사냥.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버펄로 사냥.

    네이티브 아메리칸은 버펄로를 가축화하지 못했다. 버펄로는 사육하기에 체구가 너무나 컸고, 성질도 사나웠다.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최소한의 수만 사냥했다. 이처럼 아메리카에서는 사람과 버펄로가 아주 오랫동안 큰 문제없이 잘 지냈다. 

    그런데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온 이주민은 그렇지 않았다. 터줏대감인 버펄로와 그런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쇠고기를 버펄로가 아닌 유럽에서 데리고 온 육우로부터 얻었다. 육우를 키우기 위한 농장을 지었으며 생산된 쇠고기를 포함한 다양한 물류를 운송하기 위한 철도도 건설했다. 유럽인들은 농장에 해가 되는 버펄로를 마구 학살했다. 덩치 큰 동물을 죽이는 재미를 느끼고자 도륙하기도 했다. 그 결과, 바다의 물고기처럼 많던 버펄로가 단기간에 사라지고 만다. 

    버펄로 학살에는 정치적 목적도 숨어 있었다. 버펄로로부터 많은 것을 의존하던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생존을 어렵게 하기 위해 학살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초원에서 버펄로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자 일부 네이티브 아메리칸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저항을 포기하기도 했다. 

    콜럼버스 이후에도 스페인 계열의 이주민은 롱혼을 아메리카 대륙에 도입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롱혼은 스페인 식민지가 아닌 미국에서도 인기를 누렸다. 스페인 출신 롱혼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곳이 스페인의 지배를 경험한 텍사스다. 미국 최대 축산 단지인 텍사스에서 롱혼이 전성기를 누린 시절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다. 100여 년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롱혼이라는 소의 처지에서는 찰나와 같은 시간이었을 것 같다.

    급격하게 저문 롱혼의 전성기

    텍사스에서 사육된 롱혼은 콜럼버스가 스페인에서 도입한 롱혼의 후예로 현지 지명인 텍사스를 붙여 텍사스 롱혼으로 불렸다. 그들은 롱혼의 후손답게 다른 품종의 소들이 가지지 못한 많은 장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텍사스 롱혼은 텍사스처럼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이는 그들의 선조인 롱혼이 유럽의 이베리아반도에서 건조한 기후에 대한 적응을 마쳤기 때문이다. 후손들이 선조의 장점을 이어받은 것이다. 

    텍사스 롱혼은 식성도 별로 까다롭지 않았다. 입맛이 까다로운 다른 육우들과는 달리 조악(粗惡)한 수준의 먹이도 잘 먹었다. 이는 사료 작물이 많지 않아도 사육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텍사스 롱혼의 장점이 목장 경영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롱혼의 전성기 시절, 목장과 도축장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대부분의 대규모 도축장은 소비자가 많은 대도시에 있었다. 소를 키우는 목장에서 도축장이 있는 도시까지 보통 수백㎞나 이동해야 했다. 까다롭지 않은 식성, 갈증에 대한 극복 능력이 있는 텍사스 롱혼은 아주 좋은 품종으로 대접받았다. 

    농업에 과학기술이 본격적으로 접목되면서 텍사스 롱혼의 전성기는 급격하게 저물어갔다. 텍사스 롱혼이 살을 찌우기 위해 전문적으로 개량된 육우 품종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텍사스 롱혼은 가뭄에 대한 저항 능력이 뛰어나지만, 지하수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기술과 먼 곳의 지표수를 끌어들여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상용화하면서 가뭄에 대한 대응 능력은 더는 장점으로 대우 받기 어렵게 됐다. 

    냉장·냉동 기술 발달과 철도의 연장도 텍사스 롱혼에게는 악재였다. 장거리 이동에서 다른 품종에 비해 강점이 있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소나 사람 모두에게 힘든 장거리 이동이 쉬워지면서 텍사스 롱혼의 장점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극소수만 살아남아

    텍사스 롱혼이 가진 장점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오히려 단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다. 롱혼 고기는 지방이 많지 않다. 지방이 많이 침착되는 다른 육우 품종보다 육즙이 풍부하지 않으며 부드럽지 않다. 텍사스 롱혼 고기는 맛이 없다는 평가를 시장에서 피할 수 없었다. 소비자의 선택에서 외면받는 신세가 된 것이다. 

    현대식 축산에서는 가축의 ‘사료 효율’을 강조한다. 목장 경영자는 살이 빨리 많이 찌는 소를 선호한다. 하지만 텍사스 롱혼은 그런 점에서 농장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빨리 살찌도록 특화된 품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대 축산 경영이 강조하는 증체능력(ability to gain weight)이나 일당 증체량(daily gain·日當增體量)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이렇듯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이 부각되면서 텍사스 롱혼의 인기는 차갑게 식어버린다. 결국 버펄로처럼 극소수만이 살아남은 처량한 신세가 됐다. 

    목장 경영자들이 텍사스 롱혼의 단점이라고 부각한 것을 다른 시각에서 살펴보면 장점으로도 볼 수 있다. 고기에 기름기가 적다는 점은 축산물 소비자의 건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저지방, 저칼로리 쇠고기는 비만은 물론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도 좋은 작용을 할 수 있다.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길을 찾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길을 연 것처럼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에서 롱혼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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