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

책 속으로 | 서가에 들어온 한 권의 책

'나만 잘되게 해주세요'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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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19-08-13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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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잘되게 해주세요: 자존과 관종의 감정사회학
    혼자여도 안녕한데 왜 그러시죠?

    강보라 지음, 인물과 사상사, 256쪽, 1만4000원

    강보라 지음, 인물과 사상사, 256쪽, 1만4000원

    나는 A를 알면서도 모른다. 한번은 서울 마포 G편의점에서 ‘붉은대게딱지장’과 감자로 만든 과자, ‘4캔 만원’ 수입산 맥주를 고르는 그를 봤다. ‘소주가 더 어울릴 텐데’라는 말을 목구멍에 가둔 채 A의 어깨를 스쳤다. A는 “편의점을 나서는 순간 신기루처럼 홀연히 사라졌다.”(93쪽) 

    그 후 족히 6~7번은 A와 편의점에서 마주쳤다. A와 나는 늘 의례처럼 ‘각자의 구매’에 탐닉했다. 점원은 말수가 적을수록 대하기 편안했다. “이 과자는 2+1 이벤트 중이니 하나 더 챙기세요”라거나 “영수증 필요하세요?” 정도면 족할 뿐. ‘선을 넘지 않는 것’, 그것이 ‘편의점 세계’의 규율이다. 

    단, 편의점을 ‘사람다움이 소멸된 곳’이라 단정해선 곤란하다. 나와 A, 점원은 20평 남짓 편의점 덕에 한 사회의 일원이 됐다. 편의점은 ‘함께 홀로(Alone together)’를 오롯이 구현하는 장소다. 이 책 저자의 이러한 분석은 ‘편의점 4만 개 시대’를 관통한다. 

    “‘장소 상실의 시대’에 편의점은 불완전하지만 그나마 다수의 사람에게 열려 있는 ‘틈 혹은 장소’가 된다.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도는 삶일지언정 편의점에서 잠시 머무르는 시간만큼은 이 시대와 이 사회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안정감을 갖도록 만들어준다.”(93쪽) 

    한편으로 저자는 “본디 성스러운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장소로 여기는 누군가에 의해 모든 장소가 성스러운 장소로 태어날 수 있는 것”(94쪽)이라고 썼다. 살짝 비틀자면 ‘성스러운 인간관계’가 선험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모든 인간관계가 성스러운 인간관계로 태어날 수 있다. “면대면의 관계 맺음이 유일무이한 선택지였던 역사적 시기가 지나”(23쪽)갔다. 혼밥(혼자 밥), 혼영(혼자 영화), 혼코노(혼자 코인노래방), 개취존중(개인의 취향을 존중)이 사회의 한편에서 정언명령으로 작동하고 있다. 



    다시 A. 그는 어느 날 편의점 앞 푸른색 간이테이블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맥주 캔을 땄다. 종종 나에게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B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빈곤은 외로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겉이 젊어지려면 곁에 젊은이를 두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A는 곁도 없이 처량하게 ‘가난한 사랑 노래’를 부르는 ‘마포처사’인가. 

    관점을 바꾸면 외로움도 성스러움이 된다. 온갖 미디어가 홍수처럼 차고 넘쳐 “인간의 기본적인 연결욕구를 넘어서는 ‘과(도)함’”(19쪽)이 일상에 똬리를 틀었다. 잠시 ‘함께하지 않음’을 택하는 건 “고독 속에서 나다움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23쪽)다. A는 편의점을 ‘곁’ 삼아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에 나섰다. 

    책은 균질적이지 않은 여러 미디어·문화 현상을 다룬다. 자칫 잡다해질 법한 구성은 ‘혼자도 안녕합니다’라는 큰 주제 속에 씨줄과 날줄로 잘 엮였다.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렌즈를 활용해온 저자의 핍진한 공력이 곳곳에 묻어 있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청소년, 세상에 서다 
    차광진 지음, 책과나무, 340쪽, 1만6000원.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읽을 만한 인생 안내서. 필자는 신체적·정신적으로 성숙하는 시기인 사춘기에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바른 인성을 함양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때 청소년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열어갈 수 있도록 인생 목표 세우는 법, 인성 닦는 법, 제대로 공부하는 법, 건강관리법, 진로계획 세우는 법 등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제공한다. 





    산 자들
    장강명 지음, 민음사, 384쪽, 1만4000원. 


    ‘표백’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등 출간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모은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10편을 골라 묶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알바생 자르기’를 비롯해 수록 작품 모두가 2010년대 한국 사회의 노동과 경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각각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 등 3부로 나눠 수록했다.

    비욘드 앵거
    ‘분노의 일상’에서 벗어나는 법

    토마스 J. 하빈 지음, 김수정 옮김, 
교양인, 352쪽, 1만6000원.

    토마스 J. 하빈 지음, 김수정 옮김, 교양인, 352쪽, 1만6000원.

    평소 ‘나이 드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주의지만, 한 가지 두려운 게 있다. 다른 데는 몰라도 눈과 눈 사이, ‘미간’에 내 천(川)자로 골이 점점 깊게 파이는 것이다. 그걸 감춰보겠다며 보톡스 주사를 맞은 적도 있다. 주름진 얼굴이 싫어서가 아니다. 내 안의 분노가 겉으로 드러나는 게 싫어서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나를 ‘평소 화를 많이 내는 사람’으로 평가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화나는 일이 많아진다. 사는 것 자체가 고행이란 걸 알면서도 우리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에 화부터 내고 만다. ‘비욘드 앵거’는 화를 참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남자들과, 그 남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임상심리학자이자 ‘분노한 남자들’을 상담하고 치료해온 토머스 J. 하빈 박사는 자신처럼 화를 적절히 삭이지 못하는 남자들을 위해 이 책을 썼노라 말한다. 하지만 시한폭탄처럼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건 남자나 여자나 다르지 않다. 

    문제는 항상 화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은 늘 불안하고,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화난 사람의 공통점은 주위 사람을 편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화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화가 나서 폭발하는 이유가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 역시 분노 문제로 결혼 생활에 위기를 맞는 등 위태로운 일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분노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할 일은 ‘감정 털어놓기’다. 다른 사람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할 때마다 그 사람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뭐 때문에 화가 나는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가 한꺼번에 쏟아내지 말고, 화가 날 것 같은 감정을 미리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칭찬하는 것 또한 분노를 삭이는 방법 중 하나다. 누군가를 칭찬하기 위해서는 화를 낼 때보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비판뿐 아니라 찬사도 솔직하고 과감하게 하라’고 조언한다. 화가 났을 때 그러는 것처럼, 다른 사람 덕분에 행복해졌다면 그 또한 상대에게 말해주는 게 좋다. 

    가끔은 남의 도움을 받으며 끌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모든 일을 혼자 통제하려는 행동이 자신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분노로 표출된다. 다른 사람을 내리누르려 하지 말고 평온하게 대화하며 상대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저자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는 자신을 부정하고 전적으로 혼자서 모든 일을 하려 하면 결국 분노를 불러오는 좌절만 겪을 것”(345쪽)이라고 말한다. 종교 활동을 하는 이들 대부분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분노 수치를 줄이고 평온한 삶을 사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붕괴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아카넷, 964쪽, 3만8000원. 


    애덤 투즈는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사 교수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가 진원지였던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 러시아 신흥시장국가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적 규모로 확산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것이 경제 영역을 넘어 국제 정치에까지 심대한 변화를 야기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대공황이 히틀러를 낳고, 금융위기는 트럼프를 낳았다’는 통찰이 인상적이다.





    암시
    한사오궁 지음, 문현선 옮김, 책과이음, 520쪽, 1만8000원. 


    한사오궁은 위화, 모옌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 소설가로 손꼽힌다. 2007년 루쉰문학상을 받았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암시’는 작가 스스로 ‘새로운 시도’라고 밝힌 작품으로, ‘언어 밖의 이미지’를 다룬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온갖 구호부터 현대 텔레비전 연속극과 행위예술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물과 개념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이어진다.

    북한의 오늘 Ⅱ
    ‘있는 그대로의’ 김정은을 봐야 할 때

    윤영관 엮음, 늘품플러스, 249쪽, 1만4000원.

    윤영관 엮음, 늘품플러스, 249쪽, 1만4000원.

    언론계 은어 중 ‘야마’라는 게 있다. 야마는 기사의 주제나 방향을 가리킨다. 기자들은 야마에 맞는 사례는 살리고, 어긋나는 주장은 버리면서 사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곤 한다. 이 과정에서 진실이 왜곡되기도 한다. ‘악마의 편집’이 돼버리는 것이다. 

    딜레마가 있다. 어젠다를 선명하게 하려면 취사선택이 불가피하다. 반면 복잡한 현상을 일렬로 세우면 현실을 올바로 반영할 수 없다. 야마가 또렷한 기사가 더 잘 읽히는 것도 딜레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기사엔 ‘뭔 소리냐’는 댓글이 달리기 일쑤다. 

    TV에 나와 북한 문제를 해설하는 이들도 이 같은 함정에 빠진다. “문재인 대통령 중재 덕분에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거나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진실은 충돌하는 ‘야마’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거나 지금도 변화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오늘 Ⅱ’는 변화하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 책이다. ‘방향’을 설정해놓고 ‘단언’하거나 ‘장담’하지 않는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발언하는 폴리페서들의 졸고(拙稿)나 편견(偏見)에 익숙한 독자라면 책이 ‘재미없을’ 수도 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서울대 명예교수)이 엮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김흥규 아주대 교수가 집필했다. 

    2014년 출간돼 심도 있는 분석으로 학계와 연구소, 정부 기관 등으로부터 호평받은 ‘북한의 오늘’ 2019년 버전이다. 김정은 체제하 북한의 변화와 정치전략·경제·사회·군사·핵·외교 문제에 대한 다방면의 분석과 한국 정부를 향한 대북정책 제언이 담겼다. 

    필자들은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의지에 대체로 회의적이다. 김흥규 교수는 “북한은 핵무력 완성 선언을 통해 ‘강국’의 길에 들어섰다고 믿고 있다”면서 “북한이 국제 무대의 중요한 변수로 남으려면 핵무장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근식 교수는 “북한이 핵 보유 자체를 목표로 하는 공세적 핵질주 전략을 지속하는 동시에 단계별 등가교환에 의거한 핵 협상에 나서고 있다”고 봤다. 전봉근 교수는 “김정은은 핵무장을 토대로 한미동맹의 억제와 대남 전면적 수행 체제를 건설 중”이라고 지적했다. 

    필자들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시장화 및 개방화가 심화된 북한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대북제재만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단번에 이룰 수 있다든가 심지어는 북한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믿는 제재 만능론은 근거가 희박하다”(김병연 교수)고 지적한다. 

    북한의 핵 협상 목표가 핵보유국 지위 확보인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제재만으로는 북한을 굴복시킬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윤 전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핵 없이도 자신의 정권 유지와 경제 발전이 가능하도록, 특히 그가 가지고 있는 안보불안감의 해소를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흥규 교수는 ‘대항적 공존’을 제안한다. “비핵화가 중장기적 과제로 남겨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북한 정권 붕괴를 목표로 두기보다는 ‘대항’을 염두에 두고 ‘안보적 균형’을 맞춰가면서 ‘공존’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헬렌을 위한 경제학
    힐레어 벨록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 360쪽, 1만7000원. 


    힐레어 벨록은 20세기 초중반 활동한 영국의 사회사상가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극에 달하던 시절, 그는 자유와 평등을 함께 누릴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이른바 ‘분산주의’를 주창한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은 “집중화된 권력을 받아들이더라도 이윤이 아주 많은 시민에게 지급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권력이 작은 산업에 의해 행사되도록 애쓸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멸종 연대기
    피터 브래넌 지음, 김미선 옮김, 흐름출판, 448쪽, 2만2000원. 


    지구사에는 거의 모든 동물이 갑작스레 소멸한 대멸종 사건이 다섯 차례 있었다. 저자는 산호초부터 공룡까지, 한때 지구를 뒤덮었으나 지금은 간 데를 알 수 없는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인류가 또 한 번의 대멸종을 앞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는 현재 지구상 동·식물의 8분의 1이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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