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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도시를 걷다

창덕궁, 종묘, 정릉에 비친 서울의 朝鮮

대한민국 서울〈마지막회〉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창덕궁, 종묘, 정릉에 비친 서울의 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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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창덕궁, 종묘, 정릉에 비친 서울의 朝鮮


종묘는 한국이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이후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 불국사와 함께 한국의 세계유산으로 처음 등재됐다. 등재 당시 종묘는 ‘유교예제에 따른 왕실 사당의 걸출한 예’라는 평가를 받았다. 16세기 이래 비교적 그 원형이 잘 보존됐고, 건축물과 함께 전통의례 등 무형문화유산 또한 지속적으로 강화됐다는 평도 따랐다.
종묘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왕실 사당이다. 14세기 말 처음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7세기 초에 중건됐다.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증축을 거듭했다. 19ha의 경내는 주 공간인 정전(正殿)과 별묘인 영녕전(永寧殿)으로 나뉜다. 이 밖에 재실, 전사청, 향대청 등이 있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 뜰 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조선시대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정전에는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선왕과 그 왕비의 신주를 순위에 따라 모시고, 영녕전에는 추존된 선왕의 부모나 복위된 왕들을 따로 모신다. 정실 출생이 아닌 왕이 그 사친(私親)을 봉안하는 사당으로서 따로 궁묘(宮廟)를 뒀다.
종묘 정문을 들어서면 삼도(三道)가 북으로 길게 뻗어 가는데, 가운데 약간 높은 길이 신향로(神香路)이고 동측은 어로(御路), 서측은 세자로(世子路)라고 한다. 삼도와 망묘루(望廟樓) 사이 네모난 연못 가운데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하는 둥근 섬이 있다. 소나무를 심는 대개의 궁궐 연못 섬과 달리 여기에는 향나무를 심었다.
종묘 정전 일곽은 담으로 둘러싸였다. 너른 묘정(廟庭)을 중심으로 남쪽 담 중앙에는 신문(神門), 동서쪽에는 동문(제례 때 제관이 출입)과 서문(제례 때 악공과 종사원이 출입)이 각각 있다. 담 안에는 동서 109m, 남북 69m 크기의 넓은 묘정 월대(月臺)가 있다. 월대란 궁궐의 정전이나 묘단 향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기단 형식의 대(臺)를 말한다.
종묘 영녕전(永寧殿) 일곽은 종묘의 별묘(別廟)다. ‘영녕’은 ‘조종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왕릉

조선왕릉 중 현재 북한 개성에 있는 2기, 즉 제릉(齊陵, 태조왕비 신의왕후의 능)과 후릉(厚陵, 정종과 정안왕후 김씨의 능)을 제외하고 온전하게 남아 있는 서울 및 근교의 왕릉은 40기, 원은 13기다. 이 가운데 단종의 능인 강원도 영월의 장릉(莊陵)과 여주에 있는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능인 영릉(英陵), 그리고 효종의 능인 영릉(寧陵)을 제외한 왕릉은 서울에서 약 40km 이내에 있다. 조선시대의 축척으로는 100리에 해당하는 거리다.
서울 및 근교의 조선왕릉 40기가 등재 당시 세계유산적 가치로 특히 부각된 것은 조선시대 특유의 세계관, 종교관, 자연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당대의 시대적 사상과 정치사, 예술관이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고, 왕실 제례가 정기적으로 이어져 ‘살아 있는 전통’으로 연계되고 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선왕릉 40기 중 서울에 있는 왕릉은 다섯 지구, 8기다. 그중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고황후 강씨의 능인 정릉(貞陵)을 둘러보자.



정릉의 운명

창덕궁, 종묘, 정릉에 비친 서울의 朝鮮


창덕궁, 종묘, 정릉에 비친 서울의 朝鮮

서울 성북구의 흥천사(興天寺). 신덕왕후 강씨가 죽자,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태조가 창건했다가 훗날 현 위치에 오게 됐다(위). 흙을 반구형으로 쌓아올린 정릉의 봉분과 혼유석(魂遊石),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鼓石).

정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 강씨의 능으로, 조선 건국 후 처음으로 조성된 능이다. 신덕왕후는 조선 건국 전, 바가지에 물을 뜬 뒤 버들잎을 띄워 이성계에게 건네준 일화로 유명하다. 신덕왕후의 소생이 왕세자로 책봉됐다가 왕자의 난으로 죽임을 당한 일도 잘 알려져 있다.
고려 말 당시 향처(鄕妻, 고향에서 결혼한 부인)와 경처(京妻, 서울에서 결혼한 부인)를 두던 풍습에 따라 신덕왕후는 태조의 경처가 되어 2남(무안대군 방번, 의안대군 방석) 1녀(경순공주)를 낳았다. 1392년 조선 건국 때 태조의 향처 한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기에 신덕왕후가 조선 최초의 왕비로 책봉됐다.
1396년 태조는 극진히 사랑하던 왕후 강씨가 세상을 떠나자 취현방(聚賢坊, 현재의 정동)에 정릉을 조성하고, 훗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만들어놨다고 한다. 그러나 태종 즉위 후 1408년 태조가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이듬해 도성 밖 사을한리(沙乙閑里, 현 정릉)로 정릉을 옮기도록 했다. 이후 청계천 광통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정릉의 석물 중 병풍석과 난간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했고, 그 밖의 목재와 석재는 태평관을 짓는 데 쓰도록 했다고 한다. 현종(顯宗·1641~1674) 때인 1669년에 이르러 신덕왕후 신주가 종묘에 모셔지면서 정릉은 제대로 된 왕릉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조선왕릉은 진입 공간-제향 공간-능침 공간으로 구성된다. 대부분 직선축을 따라 공간이 구성되는 데 반해 현재 정릉은 지형에 따라 축이 꺾인다.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 없이 흙을 반구형으로 쌓아 올린 채로 있다. 혼유석(魂遊石)을 받치는 고석(鼓石), 어두운 사후세계를 밝히고 장생발복을 기원하는 장명등(長明燈)은 조성 당시의 것이고, 나머지 석물은 현종 때 새롭게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장명등은 조선 건국 후 처음으로 조성한 것으로, 고려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조선의 궁, 종묘, 왕릉은 순서 없이 각각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관리, 보존되고 있다. 당시 기준에 고려되지 않은 칠궁, 사직단 및 원구단 등도 언젠가는 연속유산으로 추가 등재될 것을 기대한다. 이를 통해 한국 고유의 유산 관리 기준 등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
神主의 의미신주(神主)란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적어놓은 작은 나무패다. 우리 조상들은 돌아가신 분들의 혼이 신주에 깃들어 있으며 신주에서 쉬어 간다고 생각했다. 자손은 신주를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고, 전쟁이나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신주를 구했다. 신주에 모신 분의 혼은 제사상에 향을 피우면 잠시 현세로 돌아온다고 여겼다.
陵·園·墓조선시대 왕실 무덤은 왕실의 위계에 따라 능, 원, 묘로 분류된다. △능(陵) : 추존 왕, 추존 왕비를 포함한 왕과 왕비의 무덤. △원(園) :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종실로서 임금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 △묘(墓) :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아들·딸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 등의 무덤.



▼ 다양한 형태의 봉분 ▼
왕릉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는 풍수사상에 따라 조선 왕릉은 다양한 봉분 형태를 보인다. △단릉 : 왕과 왕비의 무덤을 각각 단독으로 조성했다. △쌍릉 : 평평하게 조성한 언덕에 하나의 곡장을 둘러 왕과 왕비의 봉분을 쌍분으로 만들었다. △합장릉 :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했다. △동원이강릉 : 하나의 정자각 뒤로 다른 줄기의 언덕에 별도의 봉분과 상설(象說)을 배치했다. △동원상하릉 : 왕과 왕비의 능을 같은 언덕에 위아래로 조영했다. △삼연릉 : 한 언덕에 왕, 왕비, 계비의 봉분을 나란히 배치하고 곡장을 둘렀다. △동봉삼실 : 왕, 왕비, 계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했다.



창덕궁, 종묘, 정릉에 비친 서울의 朝鮮


조 인 숙
● 1954년 서울 출생
●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성균관대 석·박사(건축학)
● 서울시 북촌보존 한옥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 現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 역사건축구조 국제학술위원회 부회장, 국제건축사연맹 문화정체성-건축유산위원회 국제공동위원장




신동아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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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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