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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말살하는 근친상간

죽음보다 더한 고통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영혼 말살하는 근친상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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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은 피해자의 육체로부터 생명을 앗아가지만 근친상간은 한 인간의 마음속 영혼을 말살한다.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주기에 살인보다 더한 범죄다.
영혼 말살하는 근친상간

일러스트·김영민

지난해 10월 40대 이모 씨는 남편과 시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두 아들도 목사인 남편 허씨 등 가족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두 아들과 함께 혼음과 성매매를 강요당했다고 밝히면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른바 ‘세 모자 성폭행 사건’이다. 결국은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이 사건이 엄청난 충격파를 던진 것은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아들을 성폭행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대중은 근친상간이라는 금기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상당한 호기심을 갖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상담 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면서 부모를 고발하는 사건이 잇달아 벌어졌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너무나 괴로운 기억은 억압돼 한동안 떠오르지 않는다. 어려서 부모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부정하고 싶다보니 기억이 떠오르지 않게끔 억누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억을 못한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심해 해저화산이 꿈틀대면 지표면이 흔들리듯, 무의식 속에 묻힌 기억이 꿈틀대는 한 삶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불안하고, 잠을 못 자고 술에 의존한다.

하지만 당사자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억압된 기억의 봉인이 풀린다. 자신이 왜 그동안 이유 없이 불안하고, 잠을 못 자고,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기억 속에 묻힌, 어려서 당한 성폭행 때문인 것이다. 분노가 솟구치면서 부모를 고발한다.



왜 ‘터부’가 됐을까

특히 겉으로 보기엔 행복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중의 뜨거운 관심 속에 법정 싸움이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아버지에 의한 근친상간을 소재로 한 소설 ‘천 에이커의 땅에서’(제인 스마일리)는 1992년에 퓰리처상을 받았고, 케시 베이츠 주연의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븐’(1995)도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들의 기억이 과연 사실인지를 놓고 의문이 증폭됐다. 결국 그중 상당수가 거짓 기억에 의한 고발이었음이 밝혀지면서 또 다른 파장을 불러왔다. 근친상간이 이렇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뭘까. 그 무엇보다 두려움 때문이다.

근친상간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한다. 진화론자들은, 근친결혼을 하면 종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유전질환이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는 본능적으로 근친상간을 회피한다고 주장한다. 개에 비유하자면, 순종견은 예쁘긴 해도 길에서 살아가는 잡종견보다 생존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수의사 중에서는 일부러 다른 종들끼리 교배해 잡종을 키우기도 한다. 

유전질환의 경우 ‘질병 유전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질병이 없는 정상 유전자끼리 만나면 유전질환이 생길 이유가 없다. 그런데 부모 중 한쪽은 정상 유전자, 한쪽은 질병 유전자를 지닌 경우 문제가 된다.

정상 유전자를 무력화할 만큼 강력한 질병 유전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유전질환이 발생하면 아이의 생명을 위협한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엔 아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하지 못했다. 생존하더라도 너무 허약해서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이런 강력한 질병 유전자는 후세로 전달되지 못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은 유전질환은 부모 중 한쪽으로부터는 정상 유전자, 다른 한쪽으로부터는 질병 유전자를 받아 그 증상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정상 유전자와 질병 유전자를 반반씩 지녔다고 하자. 최악의 경우 자녀는 부모에게서 각각의 질병 유전자를 받는데, 이 경우 그 증상이 심각해 성인이 되기까지 성장 못할 수도 있다. 설혹 성장하더라도 자손을 남기지 못한다. 따라서 근친상간은 유전질환이 발생할 확률을 높인다. 이 때문에 인간이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한 ‘터부’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정치·경제적 목적의 근친 禁婚

 근친상간 기피 관습을 역사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중세 유럽에서 교회가 근친결혼을 허락하지 않던 관습이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과거 유럽 귀족들은 근친결혼을 통해 재산을 지키고자 했다. 중세에는 딸이 결혼하면 사위 집안에 지참금을 줘야 했다. 영주는 딸이 결혼하면 지참금으로 영토를 내주기도 했다. 따라서 집안의 재산을 지키려면 서로의 재산을 맞바꾸는 정략결혼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A 집안의 딸이 B 집안의 아들과 혼사를 맺는다면, B 집안의 딸이 C 집안에 시집을 가고, C 집안의 딸이 A 집안에 시집을 오는 식이다. B 집안의 딸이 A 집안에 시집오는 것은 겹사돈이 되기에 불가능하다. A 집안의 딸이 결혼할 때 B 집안에 준 만큼의 지참금을 C 집안의 딸이 A 집안에 시집올 때 갖고 오면 완벽한 교환이 이뤄진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다보면 혼인 사슬은 복잡해지고 명문가 집안은 혼맥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귀족 간에 전쟁이 벌어지면 많은 남자가 죽었다. 이로 인해 결혼 사슬을 통한 재산 보존이 어렵게 되자 사촌 혹은 팔촌 간 근친결혼을 통해 재산을 보존하려 했다. 아들은 죽고 딸만 있는데, 딸이 결혼하지 못해 자손을 못 남기고 사망하면 그 재산은 교회 소유가 될 수 있었다. 중세에는 왕가와 귀족 집안의 결혼에 교회의 승인이 필요했다. 교회는 귀족 간 근친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식으로 상속을 방해했는데, 그러한 관습이 일반인에게 퍼지면서 기독교 국가에서 근친결혼이 금기시됐다는 주장이다.

동양에선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예학이 자리 잡았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에서 보듯 양반 집안에서는 어른들이 자녀의 결혼을 완벽하게 통제했다. 혼인 당사자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결혼은 문중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도구였다. 문중의 경제적,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집안과 관계를 맺기 위해 혼인을 이용했다.

그런데 한 집안 내에서 결혼을 하게 되면 그만큼 다른 유력 가문과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먼 친척이라도 남녀가 몇 번 만나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됐다. 그래서 동성동본 간 결혼을 차단해 서로 알고 지내던 친척 사이의 결혼을 근본적으로 막았다.

동성동본 금혼은 비과학적이다. 역사학자들은 조선 초기 인구의 약 90%, 중기 인구의 약 40%에 성씨가 없었다고 본다. 성씨와 족보가 없으면 군역을 져야 했기 때문에 호적과 족보를 위조하는 일도 많았다. 이런 경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족보상에는 동성동본으로 기록이 남게 됐다. 1909년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그때까지 성이 없던 이들은 성과 본을 신고해야 했다. 이들이 널리 알려진 김씨, 이씨, 박씨 등으로 신고하면서 이러한 성씨가 급격히 늘었다. 동성동본이 결혼 하더라도 그들이 실제 동성동본이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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