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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사라진 시대 기다림의 가치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 기다림의 가치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 기다림의 가치

1. 기다림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불안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먼저 느낀다. ‘마음대로 되지가 않네, 거 참 기분 좋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감성을 시험당한다.
모든 게 마음대로 술술 풀리는 일은 드물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턱없이 많다. 우리는 그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재능과 인격을 시험당한다. ‘그 시험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조차 사실은 자발적 선택의 문제다. 이 어쩔 수 없는 시간을 견디는 힘을 가리키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바로 ‘기다림’이다.
기다림이라는 말을 가만히 한 글자 한 글자 발음해보면 선조들은 기다림을 매우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겼음을 느낀다. 작게는 인터넷 속도가 느려 짜증이 치밀어오를 때부터, 크게는 중요한 시험 결과 발표를 앞두고 가슴 졸이는 일까지, 좀처럼 기다림을 좋아하지 않는 현대인에게도, 기다림이라는 단어의 울림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기다림의 박물관이다. 인생의 모든 결정적 전환점에 ‘기다림’이라는 마음의 정거장이 자리잡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기까지의 기다림, 걸음마를 떼고 옹알이를 할 때까지의 기다림, 그 아기가 어엿한 성인이 돼 한 사람의 몫을 하기까지의 기다림, 그가 사랑을 찾고 직업을 찾고 인생의 진정한 소명을 찾을 때까지의 기다림. 이렇듯 삶의 뼈대가 되는 원초적 기다림이 있는가 하면, 일상을 구성하는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한 기다림들이 인생의 피와 살을 이룬다.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버스나 지하철이 오기까지,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기까지, 은행창구에서 내 번호를 부를 때까지, 군대 간 연인이 돌아올 때까지, 말없이 떠난 그 모든 인연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기다린다. 어떤 기다림도 없는 곳엔 삶의 온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모든 기다림을 멈추는 순간, 삶은 끝나니까.  
기다림은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럽다. 기다림의 지혜를 말하는 사람들은 기다림의 고통을 다른 무엇으로 승화한 이들이다. 문명의 발전은 기다림의 불가피한 고통을 완화하거나 없애는 쪽으로 이뤄져왔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비롯한 온갖 문명의 편의가 삶을 ‘고속화’하는 동안 우리는 점점 기다림에 취약한 신체로 변화해왔다. ‘와이파이가 느리다’고 짜증을 내고, 잠깐의 기다림을 참지 못해 휴대전화로 게임을 한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흐름 자체를 기다리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최단 시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며 장기적 안목에서 시간과 인력도 투자하지 않으려 하고, 스펙이나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발전의 속도’를 평가한다. 영화의 전개가 조금만 느려도, 소설에서 ‘사건’이 조금만 늦게 일어나도, 사람들은 채널을 돌리거나, 책장을 덮는다. ‘기다린다는 것’의 저자는 이 ‘기다림의 불가능성’이 우리 삶을 황폐화한다고 지적한다. 기다림의 의미와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잃어버린 불씨를 되찾는 것이 아닐까.



2. 기다리게 하는 자가 이긴다?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은 초조하다. ‘기다리는 쪽’과 ‘기다림을 당하는 쪽’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많은 사람이 ‘기다리는 쪽’보다는 누군가 나를 기다려주길 바랄 것이다. 기다림은 권력을 발생시킨다. 기다리는 쪽은 패배하기 십상이다. 기다리게 만드는 쪽이 관계의 열쇠를 쥐고 있다.
시바 료타로의 ‘미야모토 무사시’는 ‘기다림의 권력’을 생생하게 그린다.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간류지마 결투에서 승리한 쪽은 상대를 기다리게 해 그 마음을 바작바작 타들어가게 한 쪽이었다. 무사시는 일부러 약속 시간을 어김으로써 기다림에 지쳐 잔뜩 긴장한 고지로가 더 이상 처음의 긴장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게 했다. “승부는 한순간에 결정 났다. (…) 고지로는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림에 지친 그는 차마 끝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 이것이 무사시의 전략이었다.” 무사시는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심리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상대방에게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은 상대를 기다리게 한다. 연락을 기다리며 줄다리기를 하고, 약속 시간에 일부러 늦어 상대를 노심초사하게 한다. 록스타 믹 재거는 이 같은 ‘기다림의 심리전’을 자신의 콘서트에 적용해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관객을 초주검으로 만들었다. 믹 재거가 이끈 롤링스톤스 공연에서는 한 시간 넘게 관객을 기다리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는 관객이 환상적인 공연을 기다리다 못해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를 때까지, 태연자약하게 트레일러 속에서 카나페를 먹으며 마리화나를 피우고 샴페인을 마셨다고 한다.
그렇게 관객을 ‘광적인 기다림’의 황홀경과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로 밀어 넣은 후에야 롤링스톤스는 계시처럼 나타나 기적처럼 공연을 마치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크리스토퍼 앤더슨은 ‘믹 재거의 진실’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다리게 하는 그의 기술은 일류였다. 언제까지 질질 끌면 관객의 기대가 최고조에 달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관중이 황홀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기다린다는 것’의 저자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기다림은 이렇듯 상대를 향한 공격적 심리전이 아니다. 그가 ‘기다림의 기술’로 추천하는 것은 초조함을 참고, 불안감을 이겨내고, 때가 무르익기를 조용히 바라보는 것, 온힘을 다해 기다리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떠들썩한 천지’라는 작품에는 ‘때를 기른다’는 표현이 나온다. “때를 기른다. 깊은 상처도 원숙한 주름으로 바꾸는 때라는 것을….”



3. 기다림 없는 기다림을 위하여

깊은 상처를 원숙한 주름으로 바꾸는 기다림. 방금 칼에 베인 상처는 끔찍하게 아프고 시리지만, 시간이 오래 흘러 상처가 아물면 그곳엔 ‘원숙한 주름’처럼 자연스러운 시간의 흔적이 아로새겨진다. 깊게 베인 상처가 나도 모르는 사이 넉넉한 주름으로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아이를 기르는 엄마의 마음, 환자가 낫기를 바라는 의사의 마음, 제자가 깨닫기를 바라는 스승의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시간의 야속한 흐름을 견디게 만드는 기다림, 삶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기다림은 마음속에 ‘빈 공간’을 만듦으로써 가능해진다. 무언가가 언제든지 찾아와도 내 삶에 깃들 수 있도록, 내 안에 빈 공간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저자는 기다림의 원숙한 경지로서 치매 환자를 보살피는 도우미들의 기다림 중 ‘패칭 케어(patching care)’를 예로 든다. 패칭 케어는 처음부터 완벽한 설계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치매 환자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뜯어진 부분을 응급처치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치매 환자는 자신의 심각한 상황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에 그가 상황을 받아들일 때까지 조용히 대기하며, 조금씩 환자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만족한다.  
패칭 케어에는 위계질서가 없다. 통제도 계획도 ‘누가 더 잘해냈다’는 칭찬도 없다. 그저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보살핌만이 있을 뿐이다. 환자를 재촉하거나 겁박하는 일 없이 환자와 그 주변의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도록 조용히 기다리는 패칭 케어를 우리 삶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치매 환자를 향해 사람들은 ‘병이 낫기’를 감히 기대하지 못한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저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를, 그 마음이 덜 고통스럽기를 기대할 뿐이다.
이렇듯 마음을 비울 때야말로 진정한 기다림이 가능한 것 아닐까. “누구도 자신을 내세우거나, 억지로 통제하려는 시도 없이 그저 시간의 힘이라고 할 만한 혹은 자리의 힘이라고 할 만한 것에 모든 것을 맡기기”, 이러한 태도야말로 패칭 케어의 본질이다. 기다림 없는 기다림, 즉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기다림 없는, 순수하고 무목적적인 기다림이야말로 ‘빨리빨리’ 시스템에서 우리를 잠시나마 해방시킬 영혼의 비상구일 것이다.
‘난 기다릴 만큼 기다렸어’,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런 식으로 마음의 한계를 정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우연을 겨냥하지 않는다. 아무런 예감과 전조도 없는 곳에 스스로를 열어두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열림’ 속에 진정한 기다림이 있다. 기다림 없는 기다림은 화려하거나 멋져 보이지 않는다. 언뜻 매우 수동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은 설렘이 사랑으로 바뀔 때까지, 봄의 새싹이 가을의 결실이 되기까지, 천지분간을 못하던 아기가 어느새 지혜와 열정으로 가득한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기다리는 일의 소중함을 ‘인생의 일부’로 당당히 기입할 줄 안다. 기다림은 인생에서 불필요한 시간, 쓸데없는 시간이 아니라 인생을 더욱 찬란하고 농염하게 만드는 위대한 영긂의 몸짓이다.



신동아 2016년 4월 호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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