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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詩는 뒤에 오는 자들의 몫

윤동주 평전 작가가 본 영화 ‘동주’

  • 송우혜 | 소설가 swhoo@daum.net

남은 詩는 뒤에 오는 자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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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지금 윤동주 붐인가. 과거를 돌아보면 이 의문에 쉽게 답할 수 있다. ‘시대 상황이 어떠한가’에 따라 윤동주를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자세와 움직임이 달랐다. 하지만 이번 붐의 중심에는 영화 ‘동주’가 있다. 윤동주 평전 작가에게 영화 ‘동주’를 물었다.
남은 詩는 뒤에 오는 자들의 몫

연희전문 시절의 윤동주, 사진제공·푸른역사(위)와 송몽규, 사진제공·연세대학교. 
영화 ‘동주’는 윤동주의 문학과 죽음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윤동주의 고종사촌형이자친구 송몽규를 제대로 조명했다.

식민지 시대에 민족의식을 지닌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본질적으로 개인적 선택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런 삶의 과정은 세계사라는 대지에 민족의 뿌리를 굳게 내리고 민족의 생존권을 쟁취하는 처절한 전투였다.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간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 중에 민족시인 윤동주가 있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온 이래, 그를 기리는 여러 장르의 작품이 나왔다. 시, 소설, 평전, 연극, 뮤지컬, 텔레비전의 다큐 프로그램…. 그러나 영화는 없었다.

그의 옥사(獄死) 71주기인 올해, 드디어 그를 기리는 영화 ‘동주’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예상을 넘어선 호응, 특히 젊은이들에게서 매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실은 영화뿐이 아니다. 올초부터 ‘윤동주 시인 기리기’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TV 다큐 프로그램,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 신문과 잡지에서도 조명이 이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의문을 드러낼 만도 하다. ‘왜 지금 갑자기 윤동주 붐인가.’



시대의 민낯 드러내는 지표  

이 의문은 과거를 돌아보면 쉽게 답할 수 있다. ‘시대 상황이 어떠한가’에 따라 윤동주를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자세와 움직임이 달랐던 것이다. 그건 윤동주가 지닌 캐릭터가 결정적 작용을 하는 반응 체계에 해당한다. 그가 워낙 청신하고 결백하고 곧은 이미지를 지닌 시인이기에, 험악하고 굴욕적이고 힘든 시대를 사는 이들일수록 더욱 그와 그의 시에 열광하며 그의 시를 통해 견딜 힘을 얻고 치유의 길을 찾았다. 그러나 시대 상황이 좋아지고 살기가 편안해지면 그와 그의 시를 찾는 움직임과 관심은 줄어들었다.

예를 들자면, 우리의 어두운 현대사인 군사독재 시절에 많은 이가 그의 시를 찾았고 그의 시에서 힘을 얻었다. 그 시절 매스컴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인은?’을 묻는 설문조사를 자주 했는데, 으레 윤동주가 1위에 올라 ‘국민시인’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민주화 시기에 접어들어선 그와 그의 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다.

이렇게 보면 현재 우리 사회가, 특히 젊은이들이 윤동주와 그의 시에 열광한다는 사실은 현재 우리 사회가, 우리 젊은들이 처한 시대 상황이 무척 힘들다는 것, 삶은 팍팍하고 국제정세는 암울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어둡고 경제 상황도 어려워 고통받고 있음을 반영한다.

주인공의 캐릭터 때문에 우리가 처한 시대의 민낯을 절로 선명하게 드러내는 지표가 된 영화 ‘동주’. 그 내용을 고찰해 장점 세 가지와 아쉬운 점 세 가지를 들어본다.

장점 ①  영화 ‘동주’의 가장 큰 장점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장르인 영상매체로 윤동주라는 시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는 중·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읽고 국어시험에 대비해 분석하는 과정까지 거쳤기에 대부분의 국민에게 매우 익숙하다. 윤동주의 시 한두 구절 못 외우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그 시를 쓴 윤동주 본인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의 생애를 상세하게 추적한 평전이 나와 있긴 하지만,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요즘 추세 탓에 평전이 미치는 영향력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영화는 대중적이고 사실적이고 즉물적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상영시간 110분인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윤동주의 삶을 생생하게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 영화 ‘동주’는 그 역할을 충분하게 해냈다. 다만 그의 삶에 대한 묘사에서 실제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끼어 있어 혼란을 유발하는 것이 유감 스럽다.

장점 ②  윤동주의 동갑내기 고종사촌형이자 친우이던 송몽규를 제대로 조명한 것이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문학과 죽음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송몽규를 모르면 윤동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송몽규는 윤동주와 한집에서 태어나 중학교 3학년을 수료할 때까지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연희전문 문과에도 함께 입학해 4년 동안 같이 공부한 뒤 나란히 일본에 유학했다.



송몽규 없이 윤동주 없다

송몽규는 18세이던 1935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문에 당선돼 윤동주의 문학 인생에 큰 자극을 줬다. 또한 그해에 독립운동에 투신하느라 학업을 포기하고 집과 가족도 떠나 중국 남경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군관학교에 가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 군관학교는 중국 장제스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관련 정보가 일본에 모두 유출됐다. 그 결과 일본 정부의 항의로 학교는 폐쇄되고 학생들은 속속 일본 공안 당국에 체포됐다. 송몽규도 중국 제남 주재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됐고 극심한 고초를 겪은 뒤 풀려났다. 송몽규의 국적이 만주국인 데다 중국에서 공부한 것을 일본 법률로 처벌할 근거가 없어서 풀어준 것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송몽규는 일경의 ‘요시찰인(要視察人)’ 명단에 올라 철저하게 감시당했다.

1943년 7월, 교토제국대학에 다니던 송몽규, 도쿄 릿쿄(立敎)대학에 다니다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으로 전학해 공부하던 윤동주가 ‘조선독립운동’ 혐의로 교토의 일경에게 체포됐다. 요시찰인 송몽규를 날카롭게 감시하던 일경의 감시망에 그와 어울린 윤동주도 걸려들어 함께 체포된 것이다.

두 사람은 이때 체포된 후 징역살이를 하던 후쿠오카 감옥에서 나란히 옥사했다. 1945년 2월 윤동주에 이어 3월엔 송몽규도 사망했다. 윤동주가 처음 유학하던 릿쿄대학에 그대로 다녔다면 체포도, 옥사도 없었을 것을 생각하면 그의 삶에 송몽규가 미친 영향의 크기와 깊이가 새삼 가슴을 친다. 참으로 애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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