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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남부군’과 보경사 12폭포

‘마음의 눈’을 열고 역사 속으로

  • 글 · 오동진|영화평론가|사진 · 김성룡|포토그래퍼

‘남부군’과 보경사 12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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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과 ‘남부군’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경사 앞 ‘영화 남부군 촬영지’ 입석(立石)은 다소 뜻밖으로 느껴진다. 문득, 지금 우리 역사는 미완의 진행형이며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남부군’과 보경사 12폭포


이연재를 시작하면서 우리(나와 포토그래퍼)의 ‘로망’은 지리산이었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부군’을 생각하며 지리산을 종주하는 것, 노고단을 오르고 천왕봉까지 다녀오는 것. 둘 다 그렇게, 마음 단단히 먹고 다녀오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늘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엄두를 못 냈다는 말이 더 옳다. 지리산 종주? 언감생심이었다.

물론 차로 움직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지리산을 그런 방식으로 다녀오면 안 될 것 같았다. 영화 속 안성기처럼, 곧  ‘빨치산(partisan)’처럼, 마치 보급투쟁을 하듯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걷고, 오르고, 누벼야 할 것 같았다. 실로 오랜만에 그러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욕망일 뿐이었다. 도시의 찌든 삶에 거의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나 같은 오랜 당뇨 환자라면 절대 피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리산행은 늘 막바지에 와서 다음으로 미뤄지곤 했다.



찬란한 것은 한순간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남부군’이 꼭 지리산에서 찍힌 것이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됐다. 반드시 지리산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남부군’을 더 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급히 포항으로 발걸음을 향한 것은 그 때문이다.

포항을 포항이구나 여기게 하는 건 일출이다. 늦은 저녁 포항에 도착해 그래도 밤을 그냥 넘기기는 맹숭맹숭하다며 과메기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고 잠들었다가 약간의 갈증이 느껴진 게 다행이었다. 침대 밑에 뒹굴던 페트병의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커튼을 걷었을 때 마침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태양은 매일같이 떠오르고 그 과정도 그리 짧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절정의 순간은 딱 한순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바닷속을 힘들게 헤집고 나오는 듯, 작은 불덩이가 바다를 조금씩 붉게 물들인다. 마치 엄마 배 속을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 바다는 엄마의 자궁이고 양수이며 태양은 갓난아기가 된다. 그러다 태양은 곧 작은 아이가 되고, 또 조금 있다가는 청소년으로 성장하더니 어느 순간 확 태양으로 커져 사위에 빛을 산개하며 사라져버린다. 일출은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생도 저렇게 짧은 시간에 한 번 폈다가 지는 것이다. 찬란한 순간은 단 몇 초간이다.

그러니 아웅다웅하며 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늘 그걸 잊고 살아간다는 게 문제다. 지난밤에도 아웅다웅했다. 포항에서 만난 이들과의 술자리. 얼마 안 남은 총선이 화두가 됐고, 정치적 이견(異見)이 술상 위를 떠다녔다. 포항은 전통적으로 여권이 장악한 공간이고 보수주의의 철옹성 같은 느낌이다. 오히려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진박’ ‘친박’ ‘비박’이니 하는 동네는 여기와 달리 역설적으로 ‘다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데 포항은 ‘몰표’의 동네 같다. 그래도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영화가 취향이듯 정치도 취향이니까. 어떤 영화를 좋아하든, 어떤 당파를 좋아하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사달은 박유하 사관(史觀) 논쟁에서 터졌다. 박유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친일사관을 대변하는 위치에 선 듯한 사학자다. 술자리 대화는 현 정부가 한일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해 할 만큼 했냐, 그렇지 않냐에 대한 얘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 태도의 문제로까지 번졌다. 누군가가 박유하 교수를 지지한다 했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황급하게 술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 것이 취기가 급속히 퍼지기 직전의 기억이었다.



‘친북·종북 영화감독’

‘남부군’과 보경사 12폭포

정지영 감독은 영화 ‘남부군’으로 레드 콤플렉스에 일격을 가했다. 동아일보

돌이켜보니 박유하와 그녀의 이즘(ism)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영화 ‘귀향’을 어떻게 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위안부 여성들의 비극에는 동정심을 느껴도 역시 ‘자발적 동원’이라는 이론에 대해서는 고집을 버리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한쪽에서 권력을 잡으면, 그것이 어느 쪽이든, 그 생각을 뿌리째 바꾸겠다며 ‘집단의 폭력’을 행사하는 법이다.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에서 보듯이.

 6·25전쟁 직후 북한 김일성 정권이 남로당을 숙청한 것도 한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사상을 개조하겠다, 아니 개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일념 때문이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은 다른 대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북한은 잘 배우지 못했으며 지금도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건 우리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인데 5·17 군사정권(전두환 정권)이 언론을 통폐합하고 삼청교육대를 만들고 한 것도 ‘한 가지 생각’으로만 일치하기를 바라는 그릇되고 모자란 욕망 때문이었다.

일명 ‘빨치산 영화’, ‘빨갱이 영화’라는 ‘남부군’ 때문에 포항에 온 터였다. 여기서 박유하 논쟁을 벌이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건 기이한 조화라는 느낌을 줬다. 역사는 청산되지 않았고, 그 청산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북한과 청산을 포기하다시피 한 남한은 서로 총부리를 겨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포항의 술자리조차 그 엄혹한 역사의 현실을 알려준 셈이다.

1990년 정지영 감독이 만든 ‘남부군’은 지리산 빨치산 얘기인 척하지만 사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쟁의 아픔과 그 무의미함을 토로한, 무엇보다 분단의 비극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꽤나 지식인다운 영화다. 저쪽의 사상과 표현 기법으로 얘기하면 일종의 프티 부르주아 영화다. 김정은 체제의 지금이든 예전의 김일성, 김정일 체제에서든 북한 정권이라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영화다. 오히려 그쪽 식으로 강력한 자아비판을 요구하는 작품일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 영화부터 해서 ‘정지영’ 하면 마치 ‘친북’ ‘종북’ 영화감독처럼 치부했다. 무식과 편견이 빚어낸 아이러니다. 작품을 오독(誤讀)한 것이다.

‘남부군’의 주인공 이태(안성기)는 원래 북한 기자다. 기자는 전쟁이 일어나면 각각의 전투 상황을 알리고 기록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입대를 자처한다. 이태는 조선중앙통신 기자로 조선 노동당 유격대에 들어와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처음엔 종군기자였으나 뒤엔 펜 대신, 아니 펜과 함께 총을 든다. 전황(戰況)은 순간순간 뒤바뀌고 이태 기자는 어느덧 남부군으로 재편돼 부대를 좇아 지리산까지 들어간다. 전쟁이 휴전 국면으로 전환되자 남부군은 남북 모두로부터 버림받는다. 북한은 이들을 정규군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남한이 이들을 토벌 대상으로 삼는 것을 방치한다. 그들은 전쟁포로가 될 수조차 없다. 남부군은 혁명군이 아니라 오합지졸의 무장괴뢰로 전락한다.



‘자기 안의 파시즘’

전쟁은 모두를 괴물로 변하게 만들지만, 이태와 이태의 ‘무리’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끝까지 노력한다. ‘남부군’이 한국 현대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것은 그 때문이다. ‘남부군’에 대한 평가가 이념적 태도에 따라 다를지언정, 영화 속 인물들이 끝까지 분투하려 한 것은 신념에 대한 얘기였다. 인간이 그래도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이념을 어찌 됐든 지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인본주의에 입각하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태도의 문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의지다. ‘남부군’은 바로 그 ‘의지의 결정론’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1990년을 생각하면 다소 뜻밖이란 생각이 든다. 노태우 정부 시절, 여전히 군사독재의 그림자가 역력하던 시절이다. 1987년 6·10민주화운동으로 정권이 유화적 제스처를 쓰던 때였으나 아직은 억압의 잔재가 꽤나 두텁던 때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광주사태로 불리던 때, 제주 4·3이나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도 역사적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던 때다.

그럴 때 정지영 감독은 ‘남부군’을 들고 나왔다. 사회가 아주 조금, 비죽이 그 틈을 보일 때 이 뾰족한 영화 지식인은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정지영 감독과 함께 장선우 감독이 있다. 정지영과 장선우는 ‘남부군’의 시나리오를 같이 썼다. 영화는 닫혀 있는 사회를 여는 기능을 한다. ‘남부군’이 바로 그때 그 일을 해냈다.

결코 ‘빨치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정지영이 가격(加擊)하고 싶어 한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자기 안의 파시즘’, 곧 레드 콤플렉스였다. 영화에서 주인공 이태로 하여금 끝까지 빨치산으로 남게 하는 건 감독의 그런 생각과 의지다. 영화 ‘남부군’은, 종래에는 빨치산도 역사 속에 스러져 간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임을, 궁극적으로 그들 역시 전쟁과 이념의 희생자임을, 그래서 우리와 그들은 사실 같은 ‘인간’임을 보여준다.   

1990년이라는 시기는 한국 영화가 자본의 측면에서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나 완숙한 스타일을 만들어낼 때가 못 됐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경북 포항과 전북 순창을 잇는 대장정 로케이션을 비롯해 당시로서는 큰돈인 14억 원이라는 제작비, 무엇보다 수많은 캐릭터를 ‘출동’시킨, 말 그대로 대작 중의 대작이다.

이태를 비롯해서 골수 빨치산 김희숙(이혜영)과 전쟁 중에 ‘시(詩) 나부랭이’를 읊조리는 로맨티시스트 김영(최민수), 이태와 사랑에 빠지는 여인 박민자(최진실), 빨치산 부대를 따라다니는 아이(임창정)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드라마를 채운 것은 당시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역작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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