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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나를 닮은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나보다 더 나를 닮은

서로를 分身이라 믿는 사랑

나보다 더 나를 닮은


‘비극적인 사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 속 주인공,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워더링 하이츠’는 ‘서로’와 함께하지 않으면 결코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절절히 그려내 불멸의 고전이 됐다. 이 소설의 화자인 넬리에게 캐서린이 털어놓은 사랑의 고백은 언제 읽어도 가슴 시리다. “그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그의 영혼과 나의 영혼은 같아.”
 
이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자 가장 비극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캐서린은 에드거 린턴과 결혼하기 직전에 넬리에게 이런 고백을 했다. 그런데 정작 고백의 대상인 히스클리프는 그런 속내를 알지 못한다. 가난뱅이 고아인 히스클리프 대신 부잣집 도련님 에드거와의 ‘현실적인 결혼’을 선택한 캐서린의 진짜 속내를 듣기 전에, 히스클리프는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사랑=연애=결혼’이라는 완벽한 이상이 실현된다는 것은 현대인에게도 어렵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상류층에게는 ‘사랑’보다는 ‘가문의 부’를 대대로 물려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이상이었고, 현대인처럼 대도시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거지나 다름없던 히스클리프를 가엾게 여겨 집으로 데려온 캐서린의 아버지는 히스클리프를 정식 ‘양자’로 만들지는 않았기에 그는 워더링 하이츠의 진정한 ‘가족’으로 편입되지 못했다. 그 버려진 아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의 히스클리프를 사랑한 캐서린의 마음 자체가 당시의 가치관으로는 용인될 수 없는 사랑, 불가능한 사랑이었다. 히스클리프는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는 ‘데려온 아이’일망정 간신히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죽자마자 캐서린의 오빠 힌들리에게 ‘하인’ 취급을 받는다. 히스클리프는 하인들에게조차 무시당하며 힌들리의 온갖 욕설과 학대를 견딘다. 캐서린은 그런 가혹행위를 멈추게 할 힘이 없었다. 캐서린은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죽은 뒤엔 힌들리에게 구속된다.
 
엄격한 분위기에서 자라난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는 ‘야생의 세계’로 향해 뚫린 마지막 출구였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함께할 때만 그 가부장적 억압의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뛰놀며 웃고 울며 자랐다. 그들은 서로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성장했고, 영원히 함께일 줄로만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캐서린이 결혼 적령기에 이르면서 그녀에게도 ‘현실감각’이 생기기 시작한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결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둘이 야반도주에 성공하더라도 얼마 못 가 거지 신세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무엇보다도 캐서린을 향한 에드거의 사랑은 캐서린이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부드럽고 달콤한 친절’이었다. 에드거는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캐서린 가문의 분위기를 눈치채고 나서도 캐서린에게 정중히 청혼한다. 그 온화함과 단정함, 평화로움이야말로 캐서린이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요한 삶’의 가능성이었다.
 
캐서린은 넬리에게 자신의 속물적인 욕심도 숨기지 않는다. 에드거와 결혼하면 자신은 이 지역에서 제일 지체 높은 마님이 될 것이고, 에드거는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것이며, 그렇게 훌륭한 남편을 가진 것이 자랑스러울 거라고. 그토록 완벽한 에드거의 청혼을 받고서도 캐서린은 불행했다. “내 영혼이 어느 쪽에 있든 내 영혼과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내가 잘못했다는 확신이 든단 말이야.” 캐서린의 얼굴이 침울해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현실’과 ‘현재’만 생각하면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지만, 그녀의 ‘영혼’이 ‘이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고백하기 시작한다.
 

천국이 내가 살 곳이 아니듯, 난 에드거 린턴과 결혼해선 안돼.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힌들리)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비천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난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이제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는 건 내 지체를 낮추는 일이 되고 말았어. 그래서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가 절대로 알면 안돼.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넬리,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아.
 
-‘워더링 하이츠’ 중에서 



사랑이 크면 증오도 크고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이 자기와 결혼하는 것은 지체를 낮추는 일이 된다는 이야기까지만 듣고 집을 나가버린다. 캐서린은 그것도 모르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사랑이 뭔지 모를 것이라고 짐작한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히스클리프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그와 함께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섞여 자기합리화하는 듯하다. 넬리는 히스클리프의 편에서 이야기해준다. “만약 히스클리프가 아가씨를 마음에 뒀다면 이 세상에서 그 아이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아가씨가 린턴 부인이 되는 순간 그 아이는 우정과 사랑, 그가 가진 전부를 잃게 될 것이니까요!”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함께 가난한 삶을 선택할 용기가 없었으며, 에드거와 결혼해 귀족적인 삶에 정착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캐서린은 그제야 히스클리프가 사라진 것을 알고 미친 듯이 그를 찾아 헤맨다. 그날따라 하늘은 억수같은 비를 뿌렸고, 히스클리프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들판을 샅샅이 헤맨 캐서린은 소나기를 흠뻑 맞은 채로 밤을 새우고 만다. 캐서린은 지독한 열병에 걸렸고 정신착란 증상까지 보인다. 히스클리프는 그 머나먼 들판을 가로질러 떠나가 수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흘러 캐서린이 ‘린튼 부인’이 되어 살아가는 동안, 히스클리프는 ‘매력적인 신사’로 탈바꿈해 금의환향한다. 캐서린은 계속 히스클리프를 ‘친구’로 만나고 싶어 했지만 그런 미묘한 관계를 에드거는 물론 히스클리프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히스클리프는 힌들리에게 복수하고 캐서린의 사랑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 이 와중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가 히스클리프에게 푹 빠진 것이다.  
 
히스클리프를 짝사랑하는 이사벨라는 양손에 카드를 쥐고 그 무엇도 내놓으려 하지 않는 캐서린의 이기심을 간파한다. 히스클리프를 자기 남자로 만들 수도 없으면서 그를 다른 여인에게 보낼 수도 없는 캐서린의 이중적인 심리를 꿰뚫어본 것이다. 한편 히스클리프는 이사벨라의 사랑을 철저히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사벨라를 통해 캐서린의 질투와 에드거의 분노를 유발할 수 있다는 계산이 히스클리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급기야 이사벨라와 야반도주한 히스클리프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캐서린은 몸져눕고 만다.



왜 그토록 이기적인가

평생 한마을에서 살다가 한마을에서 생을 마치는 사람이 많던 그 시대에는 일생 동안 만나는 타인의 수가 많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을 조금씩 알며 살아가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소수의 사람을 깊이 알고 지냈다. 캐서린은 아름답고 총명했지만 그의 주변에는 남자가 많지 않았다. 대도시에 나갔더라면 훨씬 많은 사람의 프러포즈를 받았고, 그중에 누구를 사랑해야 할지 몰라 가슴앓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기숙학교에 다니고 도시에서 취직했더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히스클리프와 내가 결혼한다면 우리 둘 다 거지꼴이 될 거야’라는 소극적 상황 판단 때문에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학대하는 오빠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히스클리프에 대한 연민도 섞였지만 더욱 본질적인 감정은 히스클리프와 모든 행동을 함께함으로써 오빠 힌들리에게 ‘함께 저항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학대받는 히스클리프의 처지에 섬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다. 하지만 캐서린의 지극히 현실적인 결정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라는 하나의 누에고치 속에서 완벽히 밀폐된 낙원을 꿈꾸던 히스클리프의 영혼을 산산이 조각 내고 만다. 그들의 ‘완벽한 사랑’은 오직 히스클리프가 떠난 후 넬리에게 캐서린이 털어놓은, ‘사랑의 독백’에서만 가능한, 불가능한 이상이 되고 말았다. 

린턴에 대한 나의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되면 나무들의 모습이 달라지듯 세월이 흐르면 달라지리라는 걸 난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은 나무 아래 놓여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나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있어 기쁨으로서가 아니야.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그러니 다시는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워더링 하이츠’ 중에서  



신동아 2016년 5월 호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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