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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나홀로 시대 살아가기

떠나라, 장터에서 향하라, 바람 찬 광야로

베스트셀러 트렌드, 孤獨

  • 이주향 | 수원대 인문대 교수·철학

떠나라, 장터에서 향하라, 바람 찬 광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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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라, 장터에서  향하라, 바람 찬 광야로

[동아일보]

고독하다는 건, 현대인이 고독하다는 건 혼자 있고 싶다는 게 아니라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겠다. 촘촘하게 잘 짜여 있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굴러가지만, 생각을 허용치 않을 정도로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감옥 같은 일상에서, 그 삶을 물들이고 있는 경쟁 혹은 싸움에서, 질시 혹은 분노로 가득한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삶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위축돼 있는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해 진짜 고독이 필요하겠다. 당신은 진짜 고독의 힘을 아는가. 로드 매퀸이 읊조리듯 부른 노래 중에 ‘고독은 나의 집’이 있다. “고독은 나의 집, 그러나 나는 외롭지 않네….” 노래를 듣다 보면 고독으로 힘이 붙은 음유시인의 향기가 난다. 고독의 집에서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는 힘을 얻고, 인연을 긍정하는 힘을 얻은 자의 그리움 같은 것!

그렇게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 ‘나’를 만나는 시간으로 힘이 붙은 사람은 고독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고독하고 싶다고 투정하는 건 고독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함께 살기 싫다는 것이고, 상처받았다는 것이다.



현대인, 도망가고 싶은 未生

현대인은 상처가 많아서 의외로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나’는 내가 아는 것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 아무래도 고단한 세상살이 때문 같다. “공부 좀 해라…” “엄마 친구 딸은…” “그렇게 놀다간…” “점수가 이게 뭐냐…” 이렇게 우리는 어릴 적부터 숱하게 비교당하고, 평가당했다. 그렇게 ‘지적질’당하는 사이 상처 입은 자존감이 회복될 틈도 없이 약육강식의 세상으로 내던져져 열정만큼 다치고 꿈만큼 짓밟히고 나면, 남는 것은 후회와 체념, 쌓이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이다. 게다가 엄청난 성공을 일군 또래의 인생들을 보고 또 보다 보면 힘이 쭉 빠진다. 이름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평범한 ‘나’의 인생이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평생 고용이 사라진 시대 아닌가. 3포 세대, 7포 세대를 거쳐 마침내 n포 세대에 이른 시대의 핵심은 ‘미생(未生)’이다. 기업은 미생으로 굴러가면서 얄밉게도 미생을 완생으로 만들어주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런 시대에 미생으로 살다 보면 밟히게 돼 있다. 내가 속한 조직은 내 꿈을 실현할 장이 아니라 내 의욕을 꺾고 내 길을 막고 서 있는 장애물이다. 그러니 도망가고 싶다, 차라리 혼자 있고 싶다는 노래가 일상의 독백이 된 것이다.  

그럼 점에서 현대는 다이달로스의 미궁이다. 기술의 ‘끝판왕’이긴 하나 숨이 막히고, 스스로 완벽을 주장하는 만큼 인간적이지도 자연적이지도 않은 위압적인 구조다. 빠져나올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생존의 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미생들에게는 그만큼 위협적이어서 그렇게 목숨 부지하고 사는 것도 다행이라 믿게 만드는 이상한 틀이다.

현대의 갑은 그 미궁의 염라대왕 격인 미노타우로스며, 현대의 을은 그 미궁에 갇힌 제물이다. 그러니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사람의 고독은 고독이라기보다 두려움 혹은 막막함이고, 미노타우로스의 고독은 고립이겠다.

문제가 있는 곳엔 답이 있다. 문제에 짓눌려 답을 찾지 못할 뿐. 이 미궁을 벗어나야 하는 우리 속에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풀며 스스로 미궁으로 걸어 들어온 영웅 테세우스가 있다. 무엇이 테세우스가 쥔 아리아드네의 실일까. 나는 그 실마리가 ‘고독’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미움이라는 놈이 찾아와 분노의 불을 지피며 당신을 고통의 화택(火宅)으로 만들 때, 물이 끓듯 화가 끓고 기름이 끓듯 속이 들끓을 때 어떻게 하는가. 불편하고 역겨운 사람과 상황을 그저 꾹, 참고 견디는가, 아니면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하며 맞서 싸우는가.



내가 나를 대면할 때

나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나만의 동굴로, 침묵으로 도망간다. 사람을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만나면 만날수록 오해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불신만 부풀어 오른다. 만나서 풀리지 않을 때, 만날수록 얽히기만 할 때는 ‘대범’을 가장하고 만나는 것보다는 그릇의 작음을 인정하고 도망가는 것이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대와 평판으로부터, 윤리와 의무로부터, 사람과 소문으로부터, 심지어 사랑으로부터도. 완전히 혼자가 돼 마침내 내가 나를 대면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도달할 때까지. 그 시간을 견디기는 쉽지 않다. 그 고독의 시간은 홀로 코카서스 산 절벽을 견디는 프로메테우스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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