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호

미디어 비평

중국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 추월하는 날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6-05-18 16: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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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후예’(태후)의 성공으로 한류(韓流)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가득하다. ‘겨울연가’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를 잇는 또 하나의 킬러 콘텐트(killer content)가 등장해 문화산업 위기론을 불식시키고 있다.  

    ‘태후’는 특히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라고 한다. 중국의 문화 콘텐츠 시장은 규모 면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다. 드라마 분야에선 이미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다. 2017년이면 영화 분야에서도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오를 전망이다. 여기에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중국 IT 기업들이 포식자처럼 문화 콘텐츠를 집어삼키고 있어 머지않아 중국판 거대 미디어 그룹도 탄생할 듯하다. 중국 시장의 이런 성장세로 볼 때 한국 드라마가 중국을 타깃으로 삼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태후’는 처음부터 중국 측 심의 기준에 맞춰 사전 제작됐다. 이것은 2014년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 TV에 방영되지 못하고 온라인에서만 소비된 문제를 보완한다. 덕분에 한국 드라마 특유의 ‘쪽 대본’과 당일치기 촬영도 사라졌다. 사전 제작 시도는 중국에서의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드라마는 중국에 특화하면 할수록 중국에 길들지 모른다. 중국 정부의 심의 기준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여기에 맞추다보면 우리 드라마의 깊이나 수준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中 스타에 열광하는 한국 팬들

    대만은 한때 콘텐츠 강국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에 인력과 기술을 빼앗겨 시장이 몰락했다. 지금 중국의 젊은 세대는 한류를 보며 성장했다. 이들이 창작의 주체가 되면서 중국 문화 콘텐츠는 한류를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중국 대중문화를 동경하는 한국 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3월 중국 웹 드라마의 젊은 스타들이 연이어 방한했다. 인천공항엔 이들을 보려는 한국 팬으로 넘쳐났다. 중국 작가의 웹툰도 한국에서 인기를 끈다. 이들의 스토리나 그림체는 한국 작가와 거의 차이가 없다. 지금처럼 중국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우리 문화 콘텐츠가 중국 문화 콘텐츠와 경쟁한다면 중국에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이런 상황을 맞지 않으려면 우리 문화 콘텐츠도 제조업 분야의 고가 스마트폰처럼 중국산과 완전히 차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진국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그러려면 ‘세련된 스토리’ 개발이 절실하다.  



    ‘기승전-로맨스’ 되는 이유

    한국 드라마는 ‘기승전-로맨스’라는 평을 듣는다. 재벌을 다룬 드라마에서도 경영 대신 연애를 하고, 군인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도 전투 대신 연애를 한다. 미국 드라마 ‘CSI’ ‘24’ ‘워킹데드’ 같은 진정한 의미의 장르 드라마를 찾아보기 어렵다. 작가와 연출진의 상상력 빈곤이 일차적 원인일 것이다. 이들은 ‘로맨스만 들어가면 고정 시청률을 보장받는다’는 데 길들어 있다.  

    또한 창작에 대한 사회적 간섭도 심한 편이다. 사전심의제도는 사라졌지만 창작자가 느끼는 압력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경고 같은 말썽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엄격하게 자기 검열을 한다. 결국 깊이와 전문성을 추구하기보단 도식화한 로맨스로 회귀하고 만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의 게임은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술, 담배, 마약과 함께 게임이 4대 중독 요인으로 지정되고 셧다운제 같은 제재가 실시되자 게임 개발자들은 한국을 탈출했다. 그 결과, 현재 중국과 생산자-소비자 관계가 뒤바뀌었다.

    지금처럼 우리 내부의 제재가 계속되면, 거기에다 중국의 제재까지 더해지면 드라마도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중국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한국의 경쟁력은 ‘민주주의’다. 그러나 창작자들은 민주주의의 과실을 충분히 향유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에겐 ‘훨씬 더 폭넓은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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