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호

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거리의 신비와 우수 사랑의 노래

조르조 데 키리코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입력2016-05-24 14: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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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직업의 성격상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서양 회화 사조의 하나는 초현실주의(surrealism)입니다. 초현실주의란 이성을 거부하고 인간의 의식 아래 숨은 마음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운동을 말합니다. 미술에서의 초현실주의는 추상미술과 함께 20세기 전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조이자 양식입니다. 이 코너에서도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를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심리학의 관점에서 초현실주의는 매우 흥미로운 미술 양식입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합니다. 첫째, 초현실주의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에 주목합니다. 인간의 의식 아래에 놓인 무의식을 화폭에 재현함으로써 감상자에게 뜻밖의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둘째, 감상자는 이러한 놀라움으로 자신의 무의식과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됩니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그리트의 작품들처럼 메시지가 분명히 드러난 초현실주의 그림들도 있지만, 대개는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들처럼 메시지가 모호합니다.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조차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즐겨 표현하는 재료가 꿈, 환상, 무의식인 데다 그들이 행하는 방식이 왜곡과 비논리적인 병치(竝置)이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우울

    오늘 소개하고 싶은 화가는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1888~1978)입니다. 이탈리아 화가 키리코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선구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서양 미술사에서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형이상학 화파의 대표적인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이상학 화파는 전통적 조형 질서를 존중하되 정신성을 추구하려 한 사조인데, 이런 정신성의 추구가 초현실주의 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키리코는 장수한 화가이지만 그의 작품 중 지금까지 주목받는 그림은 그가 20대인 1910년대에 그린 작품입니다.



    ‘거리의 신비와 우수’(The Mystery and Melancholy of a Street, 1914, 미국 코네티컷 주 뉴케이넌 스탠리 R. 레저 컬렉션 소장)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림입니다. 지금 한 소녀가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갑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거인이 다가옵니다. 하늘은 녹색입니다. 회랑이 이어진 고대 도시풍의 건물 끝에는 노란색 깃발이 펄럭입니다. 그리고 다른 편에는 한 마차가 문이 열어 젖혀진 채로 있습니다. 제목처럼 신비로우면서도 우수에 찬 거리를 담은 작품입니다.

    초현실적인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은 열려 있습니다. 제게 이 그림은 한 여성이 우연히 꾼 꿈에 대한 묘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린 시절 마음 깊은 곳에 놓인 불길함과 불안, 또 외로움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키리코는 꿈을 꾸는 것과도 같은 몽환적인 구도, 위태로워 보이는 과장된 원근법, 연관성 없는 사물들의 병치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의 해석일 뿐입니다. 사람마다 해석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이 완성된 해가 1914년임을 주목할 때 이 그림에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작품의 제목이 말하는 ‘우수’는 개인적 우울이라기보다는 절망과 폭력이 난무한 ‘시대의 우울’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키리코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키리코 작품의 핵심은 밖에 놓인 사물과 대상을 회화적으로 얼마나 잘 재현하느냐보다는 ‘인간 내면의식의 풍경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 ‘그리하여 감상자들에게 어떤 의미와 메시지를 안겨주느냐’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거리의 신비와 우수’라는 제목은 화가 자신이 느끼는 삶과 시대의 꿈, 그리고 우울입니다. 이 작품을 보는 감상자는 작가의 이런 마음 상태에 감정을 이입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본능의 욕구, 이성의 조절

    100년 전에 그린 것인데도 키리코의 이 작품은 그때보다도 현재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심리상담사인 제가 보기에, 현재의 삶이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전쟁 속에 있진 않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은 더 짙고 더 깊게 우리를 휘감고 있는 듯합니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24시간 내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고, 자신의 존재가 소멸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경제전쟁’이니 ‘취업전쟁’ 같은 말이 그 증거입니다. 누구든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은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잖이 앗아가고 있습니다. 그림 속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가는 소녀처럼 희망과 꿈을 가지고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지만 거리 저편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미지의 거인이 언제 찾아와 빼앗아갈지 모릅니다. 텅 빈 마차가 상징하는 것은 이러한 삶에 스며든 허무함이 아닐까요.

    ‘거리의 신비와 우수’에 담긴 이미지들은 우리 안에 잠자는 무의식과 매우 닮았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무의식의 세계가 있습니다. 무의식에는 우리가 인식하고 싶지 않은 공격성, 분노, 수치심, 죄책감, 두려움, 복수심, 심리적 상처 같은 본능적인 욕구가 내재합니다. 그런데 무의식은 매우 위험한 ‘일차적 본능’으로 이뤄졌기에 의식의 영역에선 이런 무의식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 못하도록 잘 조절해야 합니다.

    전통 정신분석학 이론에 따르면, 사람에게 일어나는 신경증적인 행동이란 이처럼 터져 나오려고 하는 본능적인 욕구와 함부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이성적인 조절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위험하기 때문에 억압될 수밖에 없지만, 무의식은 답답함과 불안, 우울과 슬픔의 원인이 됩니다.

    ‘거리의 신비와 우수’가 갖는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미술을 감상하는 까닭의 하나는 감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작품 감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상대화하고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무의식과 불안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거리의 신비와 우수’는 우리에게 불안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불안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해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듯합니다.



    낯선데도 친근하다

     ‘사랑의 노래’(Song of Love, 1914,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는 키리코의 또 다른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거리의 신비와 우수’보다 한결 난해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고대 도시 건물에 걸린 아폴로 두상과 외과의사 수술용 장갑입니다. 어두운 바닥에는 짙은 녹색 공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배경으로 펼쳐진 녹색 하늘 아래 저 멀리에는 고대 도시풍 건물이 보이고, 그 옆에는 공장에서 연기가 뿜어 나옵니다. 자세히 보면 기관차가 증기를 내뿜으며 달려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랑의 노래’는 전형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사물들을 한 화면 안에 배치하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관람자에게 낯설음을 안겨주려는 게 작품의 목적으로 보입니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에서 묘한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면 인간의 무의식 저편에 이런 무질서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겁니다.

    서양 회화에서 ‘사랑의 노래’와 같은 기법을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합니다. 사물들을 일상적 환경에서 이질적 환경으로 옮겨 대상들끼리의 기이한 만남을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데페이즈망을 잘 보여준 이는 초현실주의 예술의 선구자인 시인 로트레아몽입니다. ‘재봉틀과 우산이 해부대에서 만나듯이 아름다운’이라는 그의 시 구절은 데페이즈망 기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데페이즈망은 무의식을 일깨우고 그 무의식을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게 함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하고 새로운 감성과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사랑의 노래’를 보면서 무엇을 떠올릴 수 있는지요. 아폴로 두상, 외과수술용 장갑, 그리고 녹색 공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의 충돌은 본디 이렇게 공존 불가능한 것들을 공존하게 하는 게 사랑임을 암시하는 걸까요. 작품 내용과는 무관해 보이는 ‘사랑의 노래’라는 제목이 사실상 죽어 있는 아폴로, 끔찍한 외과수술용 장갑, 그리고 차가운 느낌의 녹색 공의 기이한 공존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은 아닐까요.



    ‘검은 거인’에 맞서는 법

    흥미로운 것은 20대에 이렇게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내놓은 뒤 키리코가 보여준 행적입니다. 1930년대에 들어와 키리코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작품들을 그리지 않고 라파엘로와 루벤스 같은 고전적인 화가의 작품들을 ‘모사’하는 평범한 화가로 전향했습니다. 이 점에 주목해 어떤 이들은 그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인 동시에 배신자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누구는 자기 삶에서 변신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키리코는 젊은 시절에 자신이 너무 혁신적이었기에 이에 대한 반항으로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초기 작품들이 20세기 회화에 미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고, 그 덕에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거리의 신비와 우수’  ‘사랑의 노래’ 도판을 보고 있습니다. 갈수록 우리 삶의 불안을 키우는 21세기 문명에서 우리는 무엇을 등불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그 등불의 하나가 바로 사랑이지 않을까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거인들이 부재한 사회나 시대는 없었습니다. 혼자 굴렁쇠를 굴리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함께 굴렁쇠를 굴리며 나아간다면 검은 거인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속 존재하는 불안이라는 거인이 사라질 수 있다고 저는 믿는 편입니다.

    박 상 희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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