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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남혐은 칼날 단 부메랑

마주 선 남과 여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여혐·남혐은 칼날 단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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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이 늘수록 여성은 남성에게서 더 멀리 달아난다.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이 늘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고 싸운다 해도 상대를 자극할 뿐이다. 나는 잘한다고 생각하면서 한 행동이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남자와 여자는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지난 5월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묻지마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피의자가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는 살인 동기를 밝히면서 여성혐오(여혐) 범죄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피의자는 정신병원에 6차례 입원한 적이 있는 조현병(정신분열병) 환자로 밝혀졌다. 여성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한 말도 여성 일반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진 않았다.

조현병에 걸리면 환청이 들린다. 아무도 없는데 옆에서 누가 얘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주변 사람 목소리로 들리기도, 나를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욕하는 소리로도 들린다. 조현병은 피해망상을 동반한다.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누군가가 훼방 놓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내 앞길을 방해하는 사람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따르면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의 피해망상은 2003년 시작됐고, 2년 전부터는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해졌다고 한다.

조현병 환자는 누군가가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주위에 얘기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스스로 나를 보호해야 한다. 흉기를 안 갖고 다니면 불안하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해칠 것 같다.



시대의 불안

여혐·남혐은 칼날 단 부메랑

일러스트• 김영민

가끔은 사람들을 피해 화장실 같은 곳으로 숨어든다. 하지만 계속 환청이 들리고 공포는 더해간다. 그때 누군가가 화장실에 들어와 칼을 든 낯선 남자를 보면 깜짝 놀란다.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들린다. 놀란 피해자가 뛰쳐나가려 하면 공포에 사로잡힌 조현병 환자는 자신을 신고해 납치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다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조현병 환자는 ‘생각의 흐름’에도 장애가 발생한다.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대신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내뱉는다. 그러다 보니 ‘왜 죽였냐’는 질문에 앞뒤를 다 빼고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답한다.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다. 환자 대부분은 피해망상에 사로잡히면 집 밖에 나서는 게 두려워 꼼짝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마음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할까 봐 창문에 시커멓게 선팅 시트를 바르거나, 화장실에서도 불을 끈 채 볼일을 본다. 가족에게도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치료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도파민 수용체를 차단하는 항정신병 치료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증상의 상당 부분은 사라진다. 이번 사건 피의자는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6개월간 입원치료를 받고 증상이 호전돼 퇴원했다. 하지만 퇴원 후 복약을 중단해 재발했다.

무고한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당하자 많은 시민이 슬픔에 잠겼다.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많은 이가 추모에 동참한 것은 ‘시대의 불안’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저성장 국가로 진입하면서 기회는 줄어들고 미래는 불안하다. 그렇다 보니 내 마음속 불안을 외부에 투사하게 된다. 불안하니 세상이 위험하게 느껴진다.

심리적 불안이 심해지면 위험이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폐쇄회로(CC)TV 확산과 DNA를 활용한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강력사건은 매년 줄고 있다. 선진국 사례를 봐도 인구가 고령화하면 살인범죄도 줄어든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해지니 길거리가 위험하게 느껴진다. CCTV와 차량 블랙박스 설치가 늘면서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끔찍한 사건 영상을 보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신문 기사로나 접하던 사건·사고를 영상으로 직접 보면서 불안과 공포의 차원이 달라졌다.



‘여자라서 죽었다’

‘시대의 상실감’도 반영됐을 것이다. 과거에는 살아가면서 뭔가를 이뤄내는 것이 대부분 가능하다고 믿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수록 뭔가를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포기해야 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취직을, 연애를, 결혼을 포기한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나이만 먹는다. 그런 마당에 내 가족과 친구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끔찍한 사건·사고로 우리 사회를 떠나면 그 상실감을 공유하게 된다. 이번 사건 동영상에서 피해자 남자친구의 격한 반응을 보고 공감한 이가 많았을 것이다.

더욱이 강남역은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곳이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건물 주변엔 젊은이들 사이에 ‘명소’로 통하는 곳이 많다. 그 업소들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이들, 그 건물 화장실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이들에게 이 사건은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추모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태가 전개됐다. 피의자가 밑도 끝도 없이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하자 많은 여성이 ‘왜 늘 여자들이 범죄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공분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글이 빽빽하게 나붙었는데, ‘여자라서 죽었다’는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오면서 이를 반박하는 남자들이 등장했다. 급기야 피해 여성의 오빠가 ‘여성혐오 범죄’를 추방하자고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동생의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며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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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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