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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로 세상의 민낯 까발리다

냉소의 카타르시스, 소설가 장강명

  • 구해우 |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돌직구로 세상의 민낯 까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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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직구로 세상의 민낯 까발리다
  • 잘 다니던 신문사에 사표를 덜컥 냈다. 소설 쓰기에 파묻혀 살았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으면서 지금, 이곳의 허위와 위선을 벗겨냈다.
돌직구로 세상의 민낯 까발리다

[홍중식 기자]

장강명(41)은 ‘저널리스트면서 소설가’다. 저널리스트 아이덴티티가 소설에 녹아 있다. 잘 쓴 르포르타주가 떠오르게 하는 소설을 쓴다. 에두르지 않는다. 과장하거나 감격하거나 분노하지도 않는다. 비틀어 던지지 않는 돌직구다. 허위와 위선을 벗겨내고,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까발린다.

그는 연세대 공대를 졸업했다. 건설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신문기자로 11년 일했다.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 작가상,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댓글부대’로 제주 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이 싫어서’ ‘호모 도미난스’ ‘뤼미에르 피플’도 냈다.  

또래 작가 중 가장 뜨겁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불편한 얘기조차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쓴다. 잘 읽힌다. 상징을 억제한 도구적 문장 덕분일 것이다. 착한 척, 올바른 척하는 행태의 저변을 망치로 까부순다. 심리의 밑바닥을 꿰뚫으면서 지금, 이곳의 이야기를 쓴다. 6월 1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각에서 그를 만났다.

▼ 스스로를 저널리스트면서 소설가라고 규정하던데요.

“아직도 반쯤은 기자라고 생각해요.”

▼ 앞으로 어떤 책을 낼 건가요.

“우리가 사는 당대를 다룰 겁니다. ‘2016년 오늘, 이곳’의 이야기요. 논픽션도 쓸 거고요.”

▼ 인생을 대표할 만한 작품에서 다룰 주제로 생각해놓은 게 있습니까.  


“당대의 문제를 한 작품에 압축해 넣어보고 싶습니다. ‘레미제라블’ 같은….”

▼ 북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200자 원고지 1700매 분량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무너진 상황이 배경이에요.”



돌진하고 저항하는 청년

그가 지금껏 세상에 내놓은 소설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청년이다. ‘안드로메다급으로 노력해도 삶이 버겁다는 청년’이 그 나름의 방식으로 돌진하고 저항한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가 한국을 뜬 이유는 통쾌하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 미국이 싫다는 미국 사람이나 일본이 부끄럽다는 일본 사람한테는 ‘개념 있다’며 고개 끄덕일 사람 꽤 되지 않나?”

청년 세대는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계나’에게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홍익대를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업한 ‘계나’의 독백은 아프다.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도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 등단작 ‘표백’에서는 완성된 세계에서 무기력하게 사는 젊은이들이 등장합니다. 울분, 저항이 무의미한 상황에서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자 죽음으로 내달리는데요. ‘우리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냉소로 읽혔습니다.


“그렇게 썼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를 뿐이죠.”

‘댓글부대’는 팩트인 듯, 팩트 아닌, 팩트 같은 소설이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모티프 구실을 했다. 국정원도 까고, 진보도 까고, 보수도 깐다. ‘모두 까기’다. 여론 조작의 폐해를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인간의 사유가 얼마나 얄팍한지 드러낸다. 애국하는 척, 올바른 척하는 것의 위선을 발가벗긴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구성과 문체는 대중적이지 않다.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엇갈린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그의 소설은 이렇듯 ‘어떻게 살지’ ‘왜 사는지’에 주목한다.     



박범신, 최인호, 황석영

▼ ‘댓글부대’는 논픽션처럼 읽히더군요.

“책이 나온 후 기업에서 댓글 조작 업무를 맡았던 분이…아니,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SNS 등을 통해 신뢰도, 인지도를 높이고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방법)이라고 해야죠…소설에 묘사된 댓글 조작이 자신이 하던 일과 매우 비슷하다는 e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기업은 국정원처럼 멍청하게 하지 않는다면서요.”

▼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등을 두고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유통시키는 의류) 스타일의 문학이라는 평가가 있더군요.

“다른 인터뷰에서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쓴 소설은 유니클로 같다’고요. 문학을 어떻게 유니클로에 비유하냐는 힐난도 들었지만, 유니클로로 시작해도 샤넬이나 루이비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동차 업계에 비유하면 폴크스바겐처럼 다양한 세그먼트의 제품을 내놓겠단 생각을 가졌어요. 폴크스바겐은 대중적 자동차부터 아우디, 포르셰까지 만들죠. 한국문학이 위축된 까닭 중 하나가 유니클로 같은 소설이 적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강 작가님 소설, 의미가 대단하죠. 다만 모두가 샤넬, 루이비통만 지향하면 건강한 생태계가 아닙니다. 대중적인, 세태를 담은, 재미있는 책도 필요해요. 한국문학에 그런 작품이 별로 없습니다. 일본 소설이 한국 시장에서 그 자리를 채웠어요.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 요시다 슈이치 등의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처럼 어렵지 않아요. 대중문학이 ‘소설산업’ 중심에 자리를 딱 잡고 왼쪽에 순문학, 오른쪽에 무협지 같은 소설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저항도 없이 일본 작가들에게 중심의 자리를 내줬습니다. 예전엔 한국 소설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박범신, 최인호, 황석영 같은 작가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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