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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소련이 사랑한 재벌 러시아 미술의 등대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소련이 사랑한 재벌 러시아 미술의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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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바 붉은광장 가까이에 옛 소련 시절 부자들의 기부로 발전을 거듭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 있다. 13만여 점에 달하는 러시아 미술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1970년대 소련은 새로 발견한 별에 재벌 트레티야코프의 이름을 붙였을 만큼 예술에 대한 그의 헌신을 고마워한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 그리고 이 광장에 우뚝 선 크렘린은 한때 세계의 절반을 지배한 사회주의의 아지트다. 붉은광장의 언덕을 넘어 10여 분 남쪽으로 걸어가면 조그마한 마당을 만난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Tretyakov Gallery)이 그곳에 있다.

러시아에서도 이제 레드오션이 끝나고 블루오션이 열리기 시작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러시아 블루오션의 찬란한 등대다.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미술관으로 러시아 작가의 작품 13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러시아 유명 작가의 중요 작품은 모두 갖췄다고 볼 수 있는, 러시아 미술품의 데이터베이스인 셈이다.

러시아에는 4개의 유명 미술관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Hermitage Museum)과 러시아 미술관(Russian Museum),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푸시킨 미술관(Pushkin Museum)이다. 러시아 미술관과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러시아 작가의 작품을,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푸시킨 미술관은 유럽 및 외국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자국 작품과 외국 작품을 주로 소장한 미술관이 각각 하나씩 쌍으로 있는 셈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렇게 배치했다.



피난지 시베리아에서도 전시

소련이 사랑한 재벌 러시아 미술의 등대

크람스코이가 그린 톨스토이(왼쪽)와 트레티야코프의 초상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19세기 말 러시아 최대 재벌이던 파벨 트레티야코프(Pavel Tretyakov·1832~1898)가 수집한 미술품으로 세워졌다. 트레티야코프는 1856년 자택에서 미술관을 시작해 1892년 작품과 미술관을 모두 국가에 기증했다. 당시 기증한 작품은 회화 1362점, 드로잉 526점, 조각 9점이었다. 당대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총망라돼 있었다.

현재의 위치에 미술관이 건립된 것은 1904년. ‘요정들이 사는 집’을 형상화한 환상적인 건물이다. 당시 러시아 최고 예술가 빅터 바스네초프가 설계를 맡았는데, 그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된다. 소장품이 점점 늘어나자 그 옆에 부속 건물을 지어 오늘날의 형태가 됐다. 또 약간 떨어진 곳에 신관을 지어 컨템퍼러리 작품을 소장케 했다.

이 미술관이 러시아 미술관과 더불어 러시아 미술사를 관통하는 보고(寶庫)가 된 것은 전적으로 트레티야코프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당시 러시아 컬렉터들은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유럽 작품을 즐겨 수집했지만 트레티야코프는 러시아 미술 수집에 몰입했다. 덕분에 이 미술관은 러시아 미술의 메카로 러시아 미술 전공자에게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1917년 레닌의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서 러시아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유재산은 인정되지 않았고 모두 국유화됐다. 사회주의 정부는 트레티야코프가 혁명 전에 모스크바 시에 기증한 미술관을 1918년 국가 소유로 바꿨다. 운영 방식 등도 다 달라졌다.

사회주의 국가라고 미술관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은 국가의 지원을 업고 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1941년 독일이 모스크바에 대규모 폭격을 가하자 미술관은 ‘피난작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1942년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미술품 수송 작전이 진행됐다. 액자를 뜯어내고 안전하게 포장해 시베리아로 옮겼다. 독일의 공습으로 미술관 건물은 부서졌지만, 소장품은 모두 안전하게 시베리아로 옮겨졌다.

피난지 창고에서 작품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쥐와 같은 동물, 벌레도 문제고,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는 일이나 화재 위험 등도 문제다. 다행히 작품들에 큰 피해는 없었다. 러시아가 전쟁에 승기를 잡자 작품들은 1944년 10월부터 모스크바로 역수송됐다. 미술관 건물도 수리를 마치고 1945년 5월 다시 문을 열었다.

전쟁을 무사히 난 것은 미술관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이들은 피난지 시베리아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해 일반인이 관람하도록 했다. 1942년은 미술관이 모스크바 시에 기증된 지 50년 되는 해로, 스태프들은 시베리아에서 5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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