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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세상에 비밀은 없다

정학비 간통사건

  • 최두헌 |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세상에 비밀은 없다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는 간통죄 위헌 판결을 했다. 그전까지 간통은 범죄였다. 지금보다 사회윤리와 관련한 사안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조선에서 간통은 최고 형벌인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였다. 간통은 단순히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기강과 관련된 공적인 문제였고, 때로는 왕과 대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다. 성종 20년(1489) 7월 25일, 사헌부는 분대감찰(分臺監察) 안당의 보고 내용을 바탕으로 성종에게 보고를 올린다.

“진주 사람 정은부의 아내 정학비가 남편의 친척 동생 하치성과 간통한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다 실토했습니다. 다만 정은부의 장모 공씨가 남편의 친조카 정윤례와 간통한 일은, 이웃 사람이 ‘공씨가 남편 정미가 죽은 뒤에 정윤례를 불러 자기 집에 재워서 사람들이 모두 의심한다’라고 말한 것 말고는 별다른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선 친속(親屬)이 죄를 지었을 때 숨겨준 경우는 죄를 논하지 않는다는 법에 구애받지 말고 노비와 일족들을 형장(刑杖)을 치며 신문하게 하소서.”(성종실록 20년 7월 25일)



母女 간통 의혹

세상에 비밀은 없다

혜원 신윤복의 애정풍속화 ‘월하정인(月下情人)’. 은근한 암시로 남녀상열지사를 표현한 걸작이다. [동아일보]

2개의 사건, 그것도 엄마와 딸이 각각 간통한 사건에 대한 보고다. 딸인 정학비는 남편의 친척 동생과, 어미인 공씨는 남편의 조카와 간통했다는 것이다. 정학비는 간통 사실을 시인했지만, 공씨의 경우는 소문만 무성할 뿐 별다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사헌부는 공씨를 추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죄인의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노비 등이 죄인의 범행을 숨기고 말하지 않아도 처벌하지 않도록 한 법에 얽매이지 말고 노비와 일족을 신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증거가 부족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법에 구애하지 않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할 만큼 중대한 사건이라고 인식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성종은 사헌부와 생각이 달랐다.

“민간의 평범한 백성은 원래 누군가 그럴싸한 말을 한마디 하면 여러 사람이 그대로 호응하여 똑같은 말을 하는 법이다. 권덕영의 아내(양녕대군과 첩에서 난 이구지가 노비와 간통한 사건)는 진상이 이미 드러났기에 형장을 치며 신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10여 년 동안 밝히기 어려웠던 일인데, 친속이 죄를 지었을 때 숨겨준 경우 죄를 논하지 않는다는 법을 따르지 않고 대뜸 형장을 친다면, 진술에 이름이 언급돼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자가 분명 많아 화기(和氣)를 해칠 듯하다. 내 생각에는 신문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성종실록 20년 7월 25일)

풍속을 바로잡을 책임을 맡은 사헌부의 강경론, 그리고 현실 상황을 고려한 성종의 견해가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사헌부 장령 안윤손이 절충안을 제시했다. 공씨가 간통했다는 소문이 파다한데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사회윤리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으니 조사는 계속하되, 마을 사람들이나 상례(喪禮)를 도운 일족들만으로 그 대상을 한정해 법을 어기지 않고도 조사가 가능하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성종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이날의 논의는 여기서 일단 마무리됐다.

8월 1일, 성종은 이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정학비는 이미 자신의 죄를 인정했으니 법률에 따라 처벌해야겠지만, 공씨는 1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 내버려두는 것이 어떻겠는가.”(성종실록 20년 8월 1일)

성종은 여전히 공씨의 일을 덮어두자며 전·현직 최고위 관료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때 논의된 내용을 보면, 성종의 의견에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있었지만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견해는 나오지 않았다. 성종은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밀어붙여 조사를 중지하라고 명했다.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다시 승정원에서 반대 의견을 제기했다.

“공씨의 일은 풍속에 관련된 중대한 사건인 데다 간통한 자가 남편의 조카이니 행실이 더욱 추악합니다. 보통 양반 가문에 이런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일이 쉽게 들통나지 않는 법입니다. 들통이 났는데도 신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악행을 징계할 수 있겠습니까.”(성종실록 20년 8월 1일)

앞서 다른 신하들의 의견과 별 차이가 없는데, 이때는 무슨 연유인지 성종은 마음을 돌려 조사를 계속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후 8월 17일에 ‘공씨가 이미 죽었으니 조사를 중지하라’는 성종의 전교가 기록된 것을 끝으로 ‘성종실록’에서는 관련 기록이 더 보이지 않는다.

이 사건은 모녀가 각각 친인척과 간통을 했거나, 했다고 의심되는 ‘막장 드라마’라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간략한 사실 기록만으로는 허전한 구석이 많아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공씨는 과연 간통을 했을까. 정학비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안윤손은 왜 상례를 도운 친족들을 조사하라고 했을까. 친절한 사관은 8월 1일 기사 끝에 두 사건의 전말을 꽤 상세하게 기록해뒀다. 이를 통해 우리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사건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게 얽힌 치정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관이 밝힌 전말

세상에 비밀은 없다

혜원 신윤복의 ‘월야밀회(月夜密會)’. 밀회하는 남녀를 위해 여인이 망을 봐주고 있다. [사진제공·간송미술관]

전에 공씨가 남편의 상을 치를 때 무당을 불러들여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실무를 주관하던 남편의 조카 정윤례가 밤을 기다려 그 무당과 음란한 짓을 했다. 공씨가 밖에서 이를 엿보다가 자못 마음이 동하여, 결국 정윤례와 남몰래 정을 통한 것이다. 한편 공씨의 사위 정은부가 변방에 수자리(국경 경비) 살러 가서 그의 처 정씨가 홀로 살고 있었는데, 공씨가 정은부의 조카 하치성을 정씨의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말했다. “젊은 여자가 혼자 자니 가위에 눌리지 않겠느냐?”

이즈음 정은부가 변방에서 돌아와 자신의 부모를 찾아뵙고 나서 처를 그리워하며 “먹고 자는 것은 어떠하려나” 하니, 동생이 곁에서 슬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형 혼자만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확인해보면 잘 있을 겁니다.” 정은부가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려서 다그쳐 물어봤지만, 동생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보라고만 할 뿐이었다. 정은부는 그날 밤 즉시 집으로 돌아가서 침실로 곧장 들어갔다가 자기 처가 하치성과 함께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칼을 뽑아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공씨가 이를 듣고 말했다. “젊은 남녀가 장난을 좀 쳤을 뿐인데, 어찌 무턱대고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는가.”

이후 사건이 들통나고 조사가 이뤄져 정은부의 처는 강계부로 유배됐다. 뒤에 정은부가 종군(從軍)하여 강계부에서 수자리를 살게 되자, 정씨가 명주 적삼을 보내며 만나자고 부탁했지만 정은부는 거절했다.

-성종실록 20년 8월 1일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사정을 대체 어디서 듣고 기록한 것일까. 한참 뒤에야 밝혀졌을 사건의 전말을 이렇듯 상세하게 기록한 사관의 성실한 조사와 기록 정신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시청자들이 욕을 하면서도 막장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처럼, 사관이 혀를 끌끌 차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붓을 휘두르는 모습을 장난스럽게 상상해본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 문제는 참 치열한 사건이다.  



신동아 2016년 8월 호

최두헌 |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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